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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진불선원 선원장 설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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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1년 10월 356호

도무지 멈출 것 같지 않던 여름의 장마도 어김없이 때가 되면 가을바람에 몸을 숨긴다. 모르는 바 아니지만 늘 가는 시간과 오는 시간 사이에서 더우면 더워서 문제, 추우면 추워서 문제다. 그렇게 한 계절을 보내고 한 해를 보내고 한 인생을 보내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절 마당에 서서 가을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고난은 밀물과 썰물처럼 계속해서 오고 가지요. 허나 부처님의 정법으로써 내 마음에 속지 않으면 어떤 역경이 와도 그것을 내가 부릴 수 있어요.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면 영원한 행복을 갖는 것이지요.”
설우 스님은 찾아온 객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씀을 꺼내신다. 허덕이며 사느라 가을이 온 줄도 모르는 중생의 마음을 아시는 걸까. 스님은 가을이 온 창밖을 한번 내다보시더니 초가을 날씨에 참 감사한 해가 있었다며 진불선원 초기의 이야기를 꺼내놓으신다.
“젊은 날에 공부하면서 정견이 바로 서 있지 못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출가해서 수행하는 스님도 이렇게 힘든데 바른 안목 없이 공부하는 마을의 재가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더군요. 그게 안타까워서 포교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러던 중 2008년, 창원의 북적이는 시장의 한 골목을 지날 때였다. 문득 4층 건물이 눈에 들었는데 지하엔 노래방, 1층엔 생선구이집, 2층엔 세놓은 생고기집, 3층엔 사무실이 있었다. 그 건물의 세놓은 2층을 바라보며 문득 그곳에 선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에 대한 견해가 열리면 저잣거리에 나가 바른 정법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준비는 없던 때였다. 그런데 순간 문득 한 생각이 일어서 그곳에 들어가 앉았다. 날짐승도 둥지를 트려면 자리를 고르기 위해 이 나뭇가지 저 나뭇가지에 앉아본다는데 스님은 아무런 연고도 없고 인연도 없는 창원의 한 시장통에 둥지를 튼 것이다. 게다가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50평되는 공간을 도배만 하고 부처님을 모시고 식당을 만들고 한쪽엔 스님이 거처할 공간까지도 마련해야 했다. 작은 책상을 하나 놓고 옷만 걸어두고 살았다. 30년 동안 산중 선방에서 여름에도 자연을 벗 삼아 시원하고 고요히 지내다가 시장의 시멘트 집에서 났던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찌는 듯이 더웠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스님은 장삼을 벗은 적이 없다. 물론 정신을 굳건히 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장삼은 저잣거리에서의 스님을 반듯하게 지켜주는 너울이기도 했다. 게다가 자려고 누우면 지하 노래방에선 밤새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끼니때마다는 1층 생선구이 집에서 늘 생선 굽는 비린내가 올라왔고 옆의 세차장에선 수돗물 내뿜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과일장수의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시 새벽이면 옆 건물의 보신탕 집에서 고기 삶는 누린내가 환풍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래도 스님은 꿋꿋하게 그곳에서 1년 6개월 동안 법문을 했다.
“한국 불교가 위기에 놓인 이유는 재가자들을 교육시키지 못 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법에 대한 정견이 서 있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불교적인 세계관, 연기관, 수행관을 갖춰서 공부하는 사람이 드물다. 불자의 대부분이 자기 나름의 불법을 정립해서 공부하는데, 때로는 불교와 전혀 상관없는 사고로 공부를 한다. 그래서 스님은 저잣거리에서 간화선 수행법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이 점점 늘어나더니 강의를 하는 날은 하루에 3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공간은 좁고 더위는 기승을 부리니 108참회를 하고 법회를 하고나면 모두가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너무 좁아서 점심 공양은 상도 놓지 못하고 모두가 양은 사발 하나씩 땅에 놓고 등을 맞대고 먹었다.
“환경은 어려웠지만 모두가 의미 있고 보람되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초가을이 되니 그해 가을 날씨가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렇게 진불선원이 차려졌다. 지금은 신도들의 도움으로 근처의 7층 건물에 좋은 둥우리를 마련해서 더 많은 신도들이 찾아오고 있으니 공간에 대한 걱정은 없다.
“물질적인 불사는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지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그 사람이 스승에 대한 믿음을 갖게끔 하는 것은 참 힘들어요. 자기 나름의 불법에 집착하는 신도들을 가르치는 게 가장 힘들더군요. 그것을 부처님의 정법으로 교체시키는 것. 이것은 항상 불교를 가르치는 리더의 힘든 작업이라고, 언제든지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나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수많은 종교 중에서도 유독 불교를 선택하게 되는 데에는 자기의 입지立志가 뚜렷해야 한단다. 그러기 위해선 바른 정견, 믿음, 바른 수행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부처님 말씀 중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연기관입니다. 이 생명 세계에선 어떠한 생명도 상호간의 관계성을 유지하지 않고 독단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어요.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질 때 이 생명 세계는 불국토가 되고 정토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연기관을 바로 알면 타인이 존재함으로써 내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함으로써 타인도 존재한다는 사고를 갖게 되고, 그러 할 때에 자비심이 일어나며 진정한 불교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모든 신도들에게 첫 번째로 가르치는 것이 연기관이다.
“우리는 부처님과 같은 자비심으로 살려는 것이지 에고를 충족시키기 위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부처님은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했어요.”
스님은 믿음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본래 부처님과 똑같은 반야 지혜, 자비를 갖고 있다는 것, 즉 우리가 부처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스스로가 부처라는 확신이 있을 때 수행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에 이어 세 번째로 말씀하시는 게 바른 수행이다.
“수행하는 데에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정견으로 우리가 부처라는 걸 알았지만 현실적으로 반조해 볼 때 나는 부처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는 데에 대해서 고백할 필요가 있어요.”
시기하고 질투하고 차별하고 욕심내고 분별하고 애착하는 중생 덩어리로 살고 있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자에겐 발전이 있단다. 그러면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겨나는 것, 즉 발심을 하기 때문이다.
“무상정등각 無上正等覺, 최상의 올바른 깨달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상대적으로 저울질하는
세계를 벗어난 사람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요.”
무상정등각의 정신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첫째로 무소유無所有를 알아야 한단다. 내가 본래 부처의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밖으로부터 구할 것이 없다. 본래 불심 속엔 중생이 애지중지하는 욕심이나 분별심 같은 것들이 설 자리가 없기에 무소유라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무염無染을 말씀하시는데, 본래 청정한 자성의 자리는 허공과 같기에 물드는 자리가 아니란 것이다.
“이러한 바른 불법을 모르고 나의 업보를 없애려고만 수행하면 그건 정법에 의지한 수행이 아니지요. 우린 일시적인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에 이어 설우 스님은 우리의 불교가 현대화, 그리고 일상생활에 맞는 응용 불교, 맞춤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기 위해선 부처님의 교법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기 수행 체험이 있어야만 재가자들에게 충분한 맞춤 포교를 할 수 있단다. 자기 수행 없이 책에서 본 교리만 있을 때에는 전달자 역할을 할 뿐이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없어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머리로 하는 불교가 아닌 수행을 통한 체험을 전해 들었을 때 신도들도 바른 수행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말씀이다.
“교리적으로 아무리 많이 알아도 심성에 변화가 없으면 그 사람은 자기 마음의 안락을 성취할 수 없어요.”
설우 스님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기 위해 늘 바쁘게 움직여 다니신다. 창원 진불선원에서 매주 특강을 하고 스님 손으로 설립한지 15년을 훌쩍 넘긴 청주의 법인정사의 교양대학에서도 강의를 한다. 그리고 종단의 고시 위원이며 기본 선원에 강의도 나가야 한다. 진불선원에선 매일 아침 지역의 독거노인들을 위해서 150개의 도시락을 무료로 급식한다. 정부의 보조금 전혀 없이 진불선원 자체에서 교양대학 신도들의 봉사로 함께 한다. 신도들은 교양대학에서 학문 공부를 하고 그것을 이해해 재가에서 대승보살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스님께 여쭙는다. 걸음이 가는 대로 걷다가 어느 시장 골목에서 진불선원을 세웠듯 또 언젠가 어느 길에 멈춰 서서 또 다른 선원을 만드시진 않을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전세 놓습니다’라고 써 붙인 것을 보면 또 진불선원과 같은 선불교를 시작할 지도 모르지요. 많이 바쁘긴 하지만 불법을 펼 수 있는 인연이 되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스님에게 있어 앞으로의 바람은, 아직은 힘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사회구조사업을 할 수 있는 법인 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에 맞는 보살행의 모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원력이 있으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불교는 원력이 참 중요한 거예요.”
아무 것도 없던 나뭇가지에 가을이 찾아오면 열매가 맺히는 일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허나 그것의 시간을 가만가만 더듬어보면 그것은 그토록 신기한 일이 아닌 엄숙하고도 경건한 일이 된다. 흙에서 자란 한 그루 나무가 색색의 꽃을 피워내고 꽃 진 자리에 튼실한 열매를 맺는 것이니 얼마나 많은 고행이 있었을 것인가. 아무 것도 없던 자리에 진불선원을 세운 설우 스님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다시 아무도 없는 허공의 길을 가는 하나의 씨앗과도 수행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