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통·通·Tong> 국제 현대미술 작품을 만나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해인아트프로젝트 전시기획부 2011년 10월 356호

가을의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야산 기슭에서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한 낮의 태양이 그리 선선하지 않았던 9월, 대장경 축전과 함께 해인아트프로젝트가 45일의간의 전시를 알리며 정적 속 가야산과 해인사를 깨운다.

국제포럼은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전시 주제인 ‘통通’ 이론을 주제로 개최되었다. 국내외 기자들을 비롯해 전시 참여 작가 20여명, 예술관련 관계자등 100여명이 포럼에 참석했다. 해인아트프로젝트 사무국장 향록스님의 사회로 시작된 포럼에는 주지스님의 축사를 시작으로 해인사 강원 학장 해월스님의 ‘통通 이론’ 강연이 이어졌고 ‘만다라(Mandala)’로 1997년 세계종교출판 베스트 20에 선정된 마틴 브라운 (Martin Brauen) 박사의 만다라 필름이 상영되었다.

김유연 총기획자와 중앙대 김백균 교수의 진행으로, ‘장소 특정적 현대미술 :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개입’이라는 주제로, 전시 참여 작가인 조덕현 교수의 발굴 프로젝트 관련 소개, 칠레 작가 마그달레나 아트리아 (Magdalena Atria)의 작품 소개와 토론이 이뤄졌다. 2011년 해인아트프로젝트 국제자문을 맡은 헤라도 모스케라 (Gerardo Mosquera)의 전시평을 끝으로 보경당에서의 포럼은 끝이 나고 국내외 기자들과 개막전의 전시장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9월 23일, 축전보다 한 시간 앞선 12시 ‘해인아트프로젝트 : 국제현대미술전’의 개막식이 펼쳐졌다. 45일간의 대장정을 알린 개막식에서는 김아타의 얼음불상에 노전스님의 점안식이 거행되었고 간소한 개막식 행사를 끝내고 경남 합천군 가야면 주행사장에 참석해 11월 6일까지 이어질 대장경 축제의 서막을 함께했다.

다음 날인 9월 24일은 1200년만의 선원개방이라는 역사적인 행사가 오전 6시부터 진행되었고 저녁 6시 30분부터는 ‘해인아트데이’가 열려, 가을 저녁 정적인 대적광전에 동적인 축제가 어우러졌다. 법고대회와 블레이크 캐링턴(Blake Carrington)의 연주, 무용등, 사찰 문화행사로는 이례적인 것으로 한국 불교문화의 개방 가능성과 세계로의 소통 가능성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개막일 전후로 치러졌던 행사들을 뒤로 하고 전시장 곳곳을 돌며 자연 속에 동화된 작품들을 만나보자.

주전시장인 성보 박물관 2층을 가득 메운 수빙(Xu Bing)의 ‘누에시리즈-해인사 (Silkworm series – Haeinsa)는 작가적 감각이 빛나는 작품으로 대장경 1000년을 기념하는 이 번 전시 취지와 가장 잘 맞는 작품이다. 경판 제작 과정을 재현하고 그 위에 살아 있는 누에를 올려 둬, 45일간 누에들이 실을 뽑아 경판 제작 과정을 비단으로 덮어 나갈 것이다.
수빙의 이전 작업들을 보면, 문명과 시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번 작품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미국 맥아더 재단 최고의 예술 천재상을 받았던 작가의 작업은 경전을 추앙하는 중국의 문화적 현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특정 사상이 집약된 경전에 대한 지나친 경외감을 비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과거의 경판제작 과정을 재현하고 거기에 누에가 실을 짜서 덮음으로써 과거의 노동집약적 작업에 대한 낭만적 회상인 동시에 새로운 노동에 일생을 보내는 현대인의 모습을 누에로 표현한 것이다.

수빙의 작품이 공간을 메웠다면 정수진 작가의 ‘100 seconds’은 벽면을 가득 메웠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 세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계이며 가시적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느끼는 모든 체험은 여기서 이루어진다. 현재,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형태로건 물질성과 함께 체험된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이나 사물의 물질적 환경 안에서 경험하는 것. 그런데 그 장소나 인물, 사물이 가진 물질성은 얼마만큼의 지속성을 가진 견고함일까?’라는 의문을 표현하고 있다.

일주문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마그달레나 아트리아(Magdalena Atria)의 ‘Kalachakra’는 어린아이들의 놀이처럼 화려하다. 경쾌한 어감의 ‘칼라차크라’라는 티벳 불교의 영적 수행 원리로써 시간(Kala)과 수레바퀴(Chakra)의 합성어이다. time-wheel,time-cycles이라는 의미를 지닌 만다라의 하나로써 원 (circle)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영원한 시간의 수레바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대승불교의 정신을 담고 있는 해인사 행주行舟모양의 첫 번째 문인 일주문에 수놓아진 티벳 불교정신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불교정신문화를 만다라의 화려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찰내 구광루에 전시된 작품 중, 탈북 작가로 알려진 선무의 ‘림진강’이 시선을 끈다. 40개의 나무판에 쓰여진 붉은 글자들과 책상의 조화. 아무렇게나 나열된 글자가 아닌 표현하고자 하는 글의 맥락을 갖고 번호를 써 순서대로 나열하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임진강을 따라 남과 북으로 갈라진 나라, 신라백제고구려의 물리적 분쟁지였던 임진강이라는 고유명사를 현대적 분쟁지인 회담장으로 표현했다. 탁상공론 화되는 현실문제, 남북대화, 6자 회담 등 그리고 순순예술과 그 외것들의 경계를 제시하여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측면까지 확장 시킨다.

전시장을 꼼꼼히 한 바퀴 돌았는데, 찾지 못한 작품이 있다면 바로 조덕현 작가의 ‘해인삼매 (Just like figures of whole things appeared on the quiet sea)’일 것이다. 해인사 인근 야영장에 위치한 전시장을 가득 메운 작품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이 쉽지 않지만 꼭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거목이 거꾸로 물속에 서 있는 모습은, 줄기인지 뿌리인지 착각을 일으킴과 동시에 기괴한 모습이 ‘자연’의 나무와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검은 바닥을 가득 메운 물, 그 물위로 솟아 있는 하얀색의 나무와 뿌리, 그 모습이 그대로 물에 반사되어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위, 아래’의 질서를 뒤집는 듯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해인삼매’는 해인사의 이름이 유래된 말이며 화엄경의 핵심사상이다. 바다의 바람이 잔잔해지면 삼라만상이 그대로 바닷물에 비쳐 보인다는 뜻으로, 모든 번뇌가 사라진 부처의 마음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업이 그대로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장을 둘러보신 주지스님께서 이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셨다고 한다.

해인사의 역사와 전통이 자연스럽게 녹아나고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져, 전시기간 동안 가야산, 매화산을 찾는 등산객은 물론 해인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감동이 더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