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승’이라구 자처하는 불교에서 오히려 그 사상에는 걸맞지 않게 “여자는 성불할 수 없다”거나 “여자는 소견이 좁다”하는 편협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 비구니의 존재가 한국보다 더 미미한 스리랑카의 한 비구스님이 쓴 이 글에서 우리는 불교와 부처님의 참 모습을 알 수 있다. ‘여자’라는 성(性)은 ‘남자’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여성’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때, 여성 자신은 물론 남성 자신도 불성의 참 모습을 더 가까이 느끼고 나아가서는 사부대중의 화합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는 결코 여자와 남자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열려진 종교로서 불교가 그 가능성의 영역을 확대해가는 작업의 한 시도로 마련된 것이다. 원만구족한 부처님 가르침 위에 우리가 씌워놓은 편견을 이제는 서서히 벗겨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피야다시 스님은 지금 스리랑카의 바지라마 사원에서 정진하고 있으며, 한편 국제불교포교사로서 유럽과 남미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순방하며 불법을 널리 펴고 있다.
그리이스의 유명한 극작가 유리피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악한 여인보다 더 나쁜 것은 없으며, 착한 여인보다 더 좋은 것은 일찌기 생겨나지 않았다.”
석가는 여자에게 인류 발전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였기에, 의붓어머니인 파자파티 고타미의 끈질긴 간청을 받아들여, 비구니교단의 설립을 허락하셨다. 석가의 이 승락은 인류의 종교사에서 처음 있었던 일이니, 이로써 여자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석가 이천이나 석가 당시에 성행되던 많은 종교 체제와 철학 학파 가운데에서 일찌기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미증유의 사건으로, 그때의 종교 및 사회 지도자들은 전혀 예기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 경이로운 개혁으로 여자는 강하고 굳센 도의심, 남자와 동등한 날카로운 통찰력 등 타고난 고귀한 성품을 부여받게 되었다. 여자가 사회적으로 열등하고 비천한 존재로서 신임받지 못하던 그때에 여자 수행자 집단인 비구니교단을 설립한 일은,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인도에서 번창한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새롭고 특별하게 길이 기억될 일이다.
비구니교단이 설립되자 각계각층의 많은 여자들이 승단에 들어왔으며, 그들의 생활과 이야기가 불교문학의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절대자유에 이르고자 노력한 그들의 헌신적인 삶,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한 적지 않은 수의 성취자들이 읊은 기쁨의 찬가들이 테리가타-비구니들의 찬가-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비구니교단의 설립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이야기할 파자파티 고타미의 일화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문학은 수행의 단계에 어느 정도 도달한 여자 수행자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갖고 있다. 앙구타라 니카야 같은 경전에는 단순한 법의 추종자가 아니라 나아가 가르침을 펴며 깨달음에 이른 여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들이 들어 있는데, 비구니(출가한 여자 신도)뿐만 아니라 우바이(우파시카스 ; 출가하지 않은 여자 신도)도 한몫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소마 비구니는 성의 구별이 깨달음을 얻는 데에 장애물이 될 수 없으며, 여자는 지적으로 영적으로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그 당시의 사회통념이 그릇된 것임을 명료한 표현으로 드러내주었다.
“어찌 여자를 열등하다 하겠는가. 마음을 정(定)히 하고 뚜렷한 생각과 통찰력을 지니고 지혜를 가진 여자는 무지를 덮고 있는 베일을 뚫고 법을 알아서 적나라한 삶의 실상을 본다.”
석가가 여자의 잠재력과 성취력을 이해하였다고 해서 여자의 특유한 성향에서 비롯되는 단점과 연약함을 그냥 지나친 것은 아니다. 석가는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저마다 지닌 취약점을 조심하라고 경계하셨다.
석가는 여자의 단점을 지적하면서 “쉽게 동요하며 도덕관념이 희박한 것이 여자에게 치명적인 독이 된다”고 하셨지만, 그 말씀은 여자의 그런 성향이 운명지워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고양된 삶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여자라면, 스스로 경계하고 노력해야 함을 뜻하는 말씀이다. 여자의 약점을 지적함으로써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낮추어 보려한 것이 아니라, 다만, 노력을 방해하는 어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바로 보여주고자 하였으며 부질없는 열정과 유혹
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경고하신 것이다.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함정에 빠뜨리기 쉬운 다섯 가지 감각-형상의 아름다움, 냄새, 맛, 촉감-은 모두 여자의 모습으로 구체화되고 두드러진다. 이 매혹적인 힘으로 여자는 오만하게 남자를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다.
눈짓과 미소로 애정을 표현하고, 세심한 마음씀으로 보살펴주고, 상냥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여자는 부주의 한 남자를 유혹한다.
앙구타라 니카야에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비구들이여,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 하나의 형태로 여자보다 더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른 어떤 소리도 아니며
다른 어떤 냄새도 아니며
다른 어떤 풍미도
다른 어떤 촉감도 아니다…
이것으로 남자의 가슴은 매혹되고 갇혀버리니, 이것은 바로 여자의 소리, 냄새, 풍미, 촉감이다. 여자의 목소리와 냄새와 향그러움과 감촉은 남자의 마음을 그득하게 채운다.
비구들이여,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 하나의 형태로 남자보다 더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하나니, 이것은 남자의 모습과 소리와 냄새와 풍미와 그 촉감이다. 여자의 마음은 이런 것에 격앙되고 매력을 느껴 사로잡히니라.
여기에서 성과 성의 거의 억제할 수 없는 힘을, 사고를 바로하는 사람이면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이렇듯 간단하고 명백하게 설법하고 있다. 석가는 성을 남자의 가장 강한 충동이며 가장 지배적인 본능으로 보았다. 일단 성욕과 열정의 노예가 되고 그 욕정의 마술이 만든 함정에 빠져 올가미에 묶이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사람도 무력한 벌레가 되어 버리고, 성스러운 현자도 바보처럼 행동하게 되고, 높은 경지에 도달한 요기(요가수행자)도 세속의 비참한 고통에 깊이 떨어질 수 있다.
“성욕처럼 강한 불은 없다. 열정은 죽지않고 타오른다.”
석가는 이렇게 성에 대한 흥분(격앙)을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석가가 여자를 경멸하거나 그 명예를 더럽히거나 얕보지 않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석가는 여자로 하여금 그들 자신을 조절하고 절제하게 함으로써 남자에게 위안과 힘의 원천을 불어넣고 뿌리박게 하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
석가는 여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무절제하고 부도덕한 행동이 여자의 오점”이라고 언급하면서도, 다시 “아내 가운데에서도 으뜸은 그 남편을 기쁘게 해주는 여자이다”라고 단언하셨다. 그리고 덧붙여 “그런 아내는 최상의 벗”이라고 하셨다. 골드스미스는 그의 작품에서 석가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되풀이하고 있다.
“완전한 아내는 으시대는 철학자나 거들먹거리는 영웅이나 표독스러운 여왕보다도 삶에 훨씬 더 좋은 도움을 준다. 남편과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여자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큐피드의 화살을 쏘아 인류를 망치는 일이나 하는 연애소설의 여주인공들보다 훨씬 더 위대한 품성을 지닌다.”
이것이 결국은 불교에서의 여자의 위치라고 하겠다.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게 존중될 권리를 부여 받았으며, 열반이라는 목표를 성취할 능력과 재능 면에서 결코 남자보다 열등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간이 힘쓰는 모든 분야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뛰어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석가는 여자의 타고난 허약성과 동요되기 쉬운 성질, 삿된 길로 빠지기 쉬운 기질의 경향, 도덕적이지 못한 행위에 쉽게 이끌리고 농락당할 수 있는 점을 인식시켰다. 인류의 위대한 도덕 교사이신 이 분은 여성의 진보를 에워싼 위험 신호들을 낭랑한 소리로 경고해 주신 것이다.
석가의 으뜸가는 관심은, 인류 모두의 영적 재생으로서, 끝없는 윤회의 사슬로부터 열반의 영원한 피안으로 걸어들어가게 하는 것에 있었다. 석가는 사회 개혁이니 정치 발전이니 하는 세속적인 일에 지나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합법적으로 부여 받은 통치자, 왕, 군주, 권력자의 자리를 스스로 떠났다. 그 생애를 통하여 한번도 정치적인 사건에 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가는 그가 역설한 인류 자유의 영원한 교훈으로써, 그 고귀하고 수승한 가르침을 폄으로써, 세계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사회 발전과 정치 계몽을 모든 인류에게 가져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