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 들이 전제되어야 할까?
세계가 부러워하는 북구의 복지제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결국 세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 많게는 월급의 70%까지 세금으로 낸다니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 만만찮다. 그래도 세금많이 낸 사람이 연금을 많이 받게 되고 워낙에 혜택을 많이 받고들 지내고 있으니 세금은 잘 낸단다. 스웨덴의 경우는 시 업무 자체를 세무서에서 본다고 하니 가히 복지란 곧 세금이란 등식이 떠오를 정도였다.
거기다가 관료주의적 관행이 적은 것이 특징 이다.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시의원들이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모습에서부터 청렴함을 기본으로 하는 청치 인들의 인기는 아이돌 이상 이란다. 그만큼 사회적인 파워가 한곳에 치우쳐 있기보다 공공을 위해 곳곳에 고루 나누어 져 있다는 얘기다
이런 면에서 고수의 나라가 영국이라고 생각 한다. 영국은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일찌감치 경험한나라답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적 요소가 적지 않다. 칼 막스의 무덤도 런던 가운데 있다.
우리나라에 간간이 데모가 일어나던 1996년쯤으로 기억된다. 나이 지긋한 영국인 노인 한분이 연구실 청소를 하다 말고는 나에게 물었다 ‘너희 나라는 하고 한날 왜 그렇게 데모를 하느냐’ 물었다. 복잡하게 대답 하려니 영어실력도 모자라고 해서 간단히 ‘당신은 저 롤스로이스 같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 보면 불만이 안 생기냐?’ 하고 대답하니 정색를 하고는 ‘ 나처럼 못 배우고 못 버는 사람이 저런 사람들 세금 내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는데 왜 불만을 갖겠느냐’ 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표정을 짓고는 자기 이름이 day 인데 앞으로 What a wonderful day 로 불러 달란다.
위트 있는 한마디를 던지고는 휘바람을 불면서 방을 나가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물론 영국의 세금제도 역시 탈세자는 무덤까지 파헤쳐 세금을 징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day가 말하는 소위 ‘배우고 가진 자’ 들이 원망을 받지 않고 오히려 존경받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 했던 것일까? 이들 사회가 지닌 삶의 여유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때 잘나갔던 이들의 정신적 풍요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집사람이 처녀시절 항상 짜장면 곱베기를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덩치가 작고 식사량이 적었던 나는 집사람이 밥을 많이 먹고, 또 잘 먹는 것이 처음에는 보기에 좋았다. 그래서 ‘당신이 밥을 많이 먹어 우리 집 가세가 기운다’ 고 농을 하곤 했다. 그런데 30년 정도 살다보니 마냥 좋아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사람은 소화기 계통으로 항상 탈이 자주 났고 장내시경도 여러 번 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식사량은 줄이지 않는 듯 했고 지금도 한 끼를 굶으면 죽는 줄 안다. 어느 날 장인어른께서 문득 ‘에미가 어릴 때 젖이 부족 했네. 그래서 식탐이 많을 껄세’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 무언가에 대한 결핍에서 온 쇼크는 한번 각인되면 지워지거나 극복하기가 쉽지 않듯이 우리사회도 그런 모양세가 아닌가 한다.
아무리 가지고 누려도, 배우고 가진 자들조차 정신적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려웠던 지난날의 트라우마를 아직은 벗어나지 못한 것이 우리사회의 수준이 아닌가 한다.
요즘 기득권층이 일반인들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적 의무를 지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함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에 대한 책임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잘 나가 본 시절이 별로 없었던 우리로서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나의 트라우마는 솔직히 무엇인가? 나부터 극복하고 변해야 할 일이다.
동의대학교 건축학과 우 동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