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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사회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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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우동주 2011년 10월 356호

내일 이면 넘어가기로 되어 있는 오슬로에서 총기사고가 났단다 뉴스를 보고 약간 겁을 먹었지만 동양인 여행자와는 무관한 듯 한 상황이라 넘어가기로 했다. 사건이라곤 없던 나라에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부서진 창문 주변에는 많은 꽃들이 놓여있었다. 엄청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조용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북구 유럽나라들 특유의 내면으로 감정을 머금는 문화적 특성마저 느끼게 했다. 기나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는 날씨에서 단련이 된 것인지 겨울에 햇빛이 귀하고 비가 많이 오는 영국인들과도 기질 면에서 비슷한 것도 같기도 하다.

노르웨이 국민소득 9만 불이라니 어디다 그 돈 다 쓰는지 궁금했는데 주로 요트사서 별장 짓고 낚시하고 휴가를 재미있게 보내는데 돈을 쓴다고 한다. 자식 땜에 돈 모우는 경우는 드물고 휴가 땜에 다들 돈 모운 단다. 소득이 높은 만큼 물가가 가히 살인적이다 보니 정작 일반 생활수준은 검소하게 까지 여겨진다. 800원정도 할 생수 한 병에 5000원을 받는 것이나 샌드위치 점심이 3만 원가량 하는 것을 보니 국민소득 높은 나라를 마냥 부러워 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복지제도야 이 동네가 세계에서도 최고 아닌가? 아이를 낳게 되면 출산 휴가가 애기 엄마 아빠 합쳐서 480일이 나온 단다. 1년 반을 부모가 함께 돌보는 셈이다. 그 기간 동안은 월급의 80%가 나온다니 출산율이 최저인 우리로서도 흉내 낼만한 제도가 아닌가 싶다. 부모가 무직일 경우에는 보조금이 나온다고 한다.
86명의 젊은이 목숨을 앗아간 이번 사건에는 이민자들이 아이만 낳고 복지 보조금을 받는것에 대한 불만이 원인중의 하나로 작용 했다니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 들이 전제되어야 할까?
세계가 부러워하는 북구의 복지제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결국 세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 많게는 월급의 70%까지 세금으로 낸다니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 만만찮다. 그래도 세금많이 낸 사람이 연금을 많이 받게 되고 워낙에 혜택을 많이 받고들 지내고 있으니 세금은 잘 낸단다. 스웨덴의 경우는 시 업무 자체를 세무서에서 본다고 하니 가히 복지란 곧 세금이란 등식이 떠오를 정도였다.
거기다가 관료주의적 관행이 적은 것이 특징 이다.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시의원들이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모습에서부터 청렴함을 기본으로 하는 청치 인들의 인기는 아이돌 이상 이란다. 그만큼 사회적인 파워가 한곳에 치우쳐 있기보다 공공을 위해 곳곳에 고루 나누어 져 있다는 얘기다

이런 면에서 고수의 나라가 영국이라고 생각 한다. 영국은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일찌감치 경험한나라답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적 요소가 적지 않다. 칼 막스의 무덤도 런던 가운데 있다.
우리나라에 간간이 데모가 일어나던 1996년쯤으로 기억된다. 나이 지긋한 영국인 노인 한분이 연구실 청소를 하다 말고는 나에게 물었다 ‘너희 나라는 하고 한날 왜 그렇게 데모를 하느냐’ 물었다. 복잡하게 대답 하려니 영어실력도 모자라고 해서 간단히 ‘당신은 저 롤스로이스 같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 보면 불만이 안 생기냐?’ 하고 대답하니 정색를 하고는 ‘ 나처럼 못 배우고 못 버는 사람이 저런 사람들 세금 내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는데 왜 불만을 갖겠느냐’ 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표정을 짓고는 자기 이름이 day 인데 앞으로 What a wonderful day 로 불러 달란다.
위트 있는 한마디를 던지고는 휘바람을 불면서 방을 나가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물론 영국의 세금제도 역시 탈세자는 무덤까지 파헤쳐 세금을 징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day가 말하는 소위 ‘배우고 가진 자’ 들이 원망을 받지 않고 오히려 존경받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 했던 것일까? 이들 사회가 지닌 삶의 여유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때 잘나갔던 이들의 정신적 풍요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집사람이 처녀시절 항상 짜장면 곱베기를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덩치가 작고 식사량이 적었던 나는 집사람이 밥을 많이 먹고, 또 잘 먹는 것이 처음에는 보기에 좋았다. 그래서 ‘당신이 밥을 많이 먹어 우리 집 가세가 기운다’ 고 농을 하곤 했다. 그런데 30년 정도 살다보니 마냥 좋아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사람은 소화기 계통으로 항상 탈이 자주 났고 장내시경도 여러 번 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식사량은 줄이지 않는 듯 했고 지금도 한 끼를 굶으면 죽는 줄 안다. 어느 날 장인어른께서 문득 ‘에미가 어릴 때 젖이 부족 했네. 그래서 식탐이 많을 껄세’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 무언가에 대한 결핍에서 온 쇼크는 한번 각인되면 지워지거나 극복하기가 쉽지 않듯이 우리사회도 그런 모양세가 아닌가 한다.
아무리 가지고 누려도, 배우고 가진 자들조차 정신적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려웠던 지난날의 트라우마를 아직은 벗어나지 못한 것이 우리사회의 수준이 아닌가 한다.
요즘 기득권층이 일반인들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적 의무를 지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함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에 대한 책임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잘 나가 본 시절이 별로 없었던 우리로서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나의 트라우마는 솔직히 무엇인가? 나부터 극복하고 변해야 할 일이다.

동의대학교 건축학과 우 동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