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로 처서가 지나고 나니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까실 까실한 바람이 이마를 쓰다듬는다. 이런 계절이 시작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나의 거울이고, 스승인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어려서는 봄날이 그렇게 좋더니 이제는 가을의 풍경이 더 마음에 와서 감긴다. 초여름 화려한 장미에 눈이 쏠리고, 초파일 즈음에 향기를 무성하게 날리는 모란에 정신이 아득하였지만 벌써 언젠가 가을바람이 부는 어느 날, 좁은 산길에 작은 국화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벌써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할 나이가 되었는가. 내가 그동안 걸어온 거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가까운 곳에서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보다는 누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부쩍 많이 들려오는 것도 요즈음의 일이다. 그런 이야기를 한 지인에게 한탄 섞어 했더니만, 돌아온 대답은 ‘이제 너도 나이가 들었구나’였다.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말이 울려 내 귀를 통해 입으로 전달되어 다시 소리 내어 되뇌어보았다.‘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세월이 흐르면서 더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이 그런 슬픔을 감수해야겠지 생각하니 쓸쓸한 생각도 많이 든다. 그러한 심정적 부인否認에 대해 내게 타이르고 가르치는 것은 시간이고 자연이다.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애도哀悼와 슬픔은 남아 있지만 실은 그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에 대한 슬픔이나 추억 같은 것도 떠나간 이의 몫이 아니라 순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대숲에 지나간 바람처럼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대숲에 이는 바람의 촉감과 그 소리만을 내가 곱씹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쓸쓸한 시절엔 남송대의 훌륭한 화가인 마원馬遠의 그림이 제격이다. 마원을 이야기 하자면, 마씨 집안은 마원을 비롯하여 그의 아버지 마분馬賁, 그의 아들 마린馬麟 등 남송대 7인의 화가를 낸 화단의 명가였다. 남송대의 화풍이 대부분 그러하긴 하지만 그림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하였다. 강한 먹을 사용하여 나무와 돌을 그려 내었고, 암석은 붓을 뉘여서 깍아 내듯 그린 부벽준법(斧劈皴:산과 돌의 모양을 표현하는데 사용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가까운 곳의 산을 강하게 그리고 먼 곳의 산을 낮고 아련하게 그리는 구도를 즐기기도 하였다. 마치 꺾어 놓은 듯한 예각銳角의 나무 가지가 마원 산수화의 트레이드 마크이긴 하지만 내가 중국 강남 지역을 여행해 보니 그것은 이상화된 세계가 아니라 사실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안개 낀 풍광에 무성한 나무들과 바위 사이에 각이 예리한 소나무 한 그루는 강남의 물기어린 정취를 잘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양자강 남쪽으로 쫒겨간 송宋이 도읍을 정한 것은 임안(臨安 현재의 항조우(抗州))이었으므로 남송대 화가들의 그림은 당연히 북송의 화가들의 화풍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그런 것을 보면 중국의 산수화가 이상화된 자연만을 읊는 것은 아니다. 그림 역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지리적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마원이나 그의 아들 마린의 그림은 어느 부분에서는 정치(精緻; 정교하고 치밀함)하다. 하지만 자신의 강조하는 부분 이외에는 과감하게 생략을 하거나 혹은 안개와 구름과 같은 것들을 동원하여 그 안에 감춘다. 선택과 집중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고 하겠다. 마원의 화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적절히 생략하고 과감히 포기한 묘사를 통해 그림 속은 물기 어린 풍광이 되고, 은유적인 표현이 넘실거리게 되는 것이다. 은유적이면서도 간결한 묘사는 마원 이후 남송대 화단의 화풍을 규정하는 하나의 특징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남송대의 그림은 작가의 신분을 불문하고 매우 선禪에 가까이 가 있다. 선화라고 꼽을 만한 그림에는 특별히 남송대 그림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작가 개개인의 개성이 아닌 남송이라고 하는 시대적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