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치열하게 들끓던 시간을 건너온 바람이 홍류동 계곡에 이르러 한풀 꺾였다. 폭염으로 지친 육신에는 신선한 바람만한 보약도 드물다. 9월이 부르는 산, 가야산 이 건네는 바람의 손을 잡아 보자. 익숙함이 낯섦을 보듬어 안는, 낯섦이 익숙함에 젖어들 특별한 만남을 주선해줄 것이니. 선방수좌스님들의 하안거가 끝난 해인사에 또 다른 치열함으로 9월을 준비하는 한 사람, 그이는 해인아트프로젝터 큐레이터 김유연이다. 찻집에 앉아 전통불교와 현대미술을 어울림으로 조합해 낼 김유연을 상상한다.
우선 한 걸음 나서보기
물소리 바람소리, 사람소리가 섞이는 산중다실에 눈빛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해인아트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작가들을 이야기하는 그이의 목소리는 데시벨이 낮았지만 친절하고 진지하다. 그리하여 현대미술은 좀 부담스럽지… 라고 생각해온 우리 모두에게 큐레이터 김유연은 인로왕보살이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2011 대장경 천년세계문화축전’의 특별행사로 해인사가 주최하는 해인아트프로젝트 국제현대미술전이 9월 23일부터 11월6일까지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불자들에게 프로젝트 기획배경을 설명하신다면?
“세계물질자본주의 중심과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현대인의 사고와 삶의 변화는 급속도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근거한 소비자주의의 진행과정은 우리 생활환경을 위협하고 경제적 이득에 대한 근시안적 집착으로 인해, 다른 한편의 지구를 지탱해주는 환경보호단체들이 사라지고 상호 연관되어 있는 자연환경마저 파괴되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슬람과 크리스천의 마찰과 같은 각기 다른 종교의 마찰로 인해 믿음의 방식이 우리 사회에 종말적인 최악의 경우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란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니라 진화되고 서로 충돌하며, 역으로 진행되는가 하면 궁극적으로 혼돈과 희비극으로 얽힌 접점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적 가치라는 것은 국가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번 첫 해인아트프로젝트의 기획배경은 이러한 서로 다른 종교, 역사, 문화, 사회 정치의 차별성에서 벗어나 문화적 예술을 통해 자아의 성찰, 인간의 상호관계, 나아가 세계전반의 자연환경에 대해 통찰해볼 융합의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즉 불교와 현대미술의 만남으로서, 예술을 통해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입니다.”
그이의 말에 집중하다보니 나를 우선 한 걸음 나서게 만든다. 그림은, 특히나 현대미술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생각해온 우리에게 사실 중요한 것은 작품을 직접 만나보는 것이 아닐까?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주제는 ‘통通’이다
‘통’은 소통 외에 교류 상통하는 의미도 들어있다. 우주와 만물의 변화가 순환 속에서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자연과 나, 타인과 나 우리 모두가 공동체임을 인식하면 예술 또한 개인과 우주와의 확장과 결합이다. 천년세월의 해인사가 지니는 전통가운데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작가들이 저마다의 소통을 이야기 할 것이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팝 비올라부터 한국의 신진작가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만날 수 있는데 이 또한 ‘통’의 흐름이겠다.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면 차별과 편견을 낳게 됩니다. 국가나 나이같은 것 보다 사회문화적, 인문학적 접근으로 작가 선정을 했습니다. 인간본질적인 문제에 의문을 가지는 작품과 작가의 예술적 표출능력과 확장된 시각에 중점을 두었죠.”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독립큐레이터로 일하는 김유연은 전시기획을 할 때마다 작가들과의 만남을 즐긴다. 작품과 작가를 마주하는 동안 의도한 작품을 찾아낼 수 있었다니 이번 해인아트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그이의 면모를 볼 수 있으리‘
-해인사는 불자들과 관광객들에게 존재자체만으로도 장엄하고 경건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장소에 예술작품이 어우러진다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감상해야할까요?
“가야산과 해인사주변을 거닐면서 작품을 발견하는 동안 개개인만의 사유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구광루에서는 회화를 통해 인종 문제, 종교문제, 사회정치적 이슈관련 간접적인 경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핵심전시라고 한다면 해인사성보박물관으로 많은 작가가 참여,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어 문화 종교가 다른 예술세계와 만날 기회가 있습니다. 또한 전시전체의 흐름을 자세히 보면 작품 하나하나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성찰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고 싶다면 세 곳 모두 추천합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의 광명이 가득한 해인사에서 예술과 종교의 깊고 넓은 그 오묘한 세계에서 노닐고 싶어진다. 며칠 남지 않았다, 오는 23일이면 가능한 일이다.
클로징 벨은 없을 것 같은 큐레이터 김유연의 삶
지루하고 싫증나는 일상이 아닌 지구촌을 돌며 마음과 가슴을 한껏 펼치고 채우는 김유연, 오늘이 삶의 클라이맥스라 여기는 그이 인생에 클로징 벨은 없을 것 같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인이 가져야할 자질과 덕목은 무엇일까?
“지속적인 열정입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욕망과 호기심이 있어야하지요. 그리고 시각적인 훈련이 필요하구요. 작가와의 유기적인 관계 또한 필요합니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이는 건축공부를 위해 떠난 유학길에서 큐레이터가 될 자양분을 만들었다.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던 내성적인 그이가 커뮤니케이션의 딜레마를 극복한 것도, 300여개의 기획안들이 접수되는 뉴욕 미술계의 기획전시에서 그녀의 것이 채택이 될 수 있었음도 아이디어가 글을 통한 상상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 유럽,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다양한 국제전을 기획하셨고 무엇보다 쿠바에서의 한국현대사진미디어전은 정치적 외교를 맺고 있지 않은 나라라 그 의미가 큽니다. 한국에서 DMZ_2005 전도 기획하셨는데 예술의 ‘미학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아요, 이번 해인아트프로젝트도 ‘불교문화와 현대예술’, ‘승려와 예술가’, ‘사찰과 예술적 공간(작품)’이라 도전적이고 실험적으로 보입니다. 예술의 가치는 무엇이며 실험적인 기획을 하는 이유는?
“우리는 사회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의 나를 비추어볼 때 나란 존재는 현존하는 사회로부터의 영향을 받고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 그리고 타인,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 새로운 창조력은 이러한 상호관계의 원동력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나아가 삶 주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새로운 사고가 생성됩니다. 역사와 사회정치적 무게가 느껴지는 DMZ라는 또 다른 문화적 공간에서 작가들과 동참, 장소성에 대해 함께 질문해보고 시도해봄으로서 나와 국가란 존재,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실험적이고 시적 경험을 탐구해볼 수 있었습니다. 기획자로서의 예술의 가치란,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창조적 도전이며 세계문화, 역사, 사회정치가 다른 배경의 작가들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실험적인 예술적 도전을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것은 결국, Humanity를 알아가는 과정이겠지요.”
세계예술의 중심이며 경제중심인 뉴욕, 자본주의로 움직여지는 그곳에서 해인사로 오던 첫날, 김유연은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움에 매료당했다. 새벽이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던 아버지를 떠올렸고 일이 주는 스트레스가 있을법했지만 해인사가 주는 향기와 신선함에 다 잘될 것이라는 그이에게 국제비엔날레 규모의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성공예감을 물었다.
“개척자(Pioneer)란 프론티어(Frontier)에서 새로운 도전을 의미하지만 이전의 과정이나 경험 없이 새롭게 개척해야한다는 어려움은 외로운 수행자이기도 합니다. 짧은 준비기간 속에서도 이번 전시가 가능하게된 것은 서로 다른 전공의 팀원들인데도 불구하고 팀원들의 열정과 팀웍, 그리고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는 작가의 예술적 능력과 신속성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첫 국제전은 보다 확장된 세계적 인식의 변화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공유하리라 믿습니다.”
현대미술가 앤디 워홀은 예술이 선택받은 자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해인사라는 수행처를 현대미술의 전시공간으로 발상한 것 역시 고정관념의 탈피로 보인다. 9월22일 ‘신체, 언어, 그리고 정신’을 주제로 한 포럼을 시작으로 해인아트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가을이 오는 가야산으로 길 떠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