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간을 숨어 지낸 가야산의 마지막 절경, 그 숨겨진 보물이 팔만대장경 조성 천년을 맞이하여 긴 침묵을 깨고 수려한 자태의 속살을 드러낸다.
홍류동 계곡은 2011년 9월23일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개막과 함께 ‘소리蘇利길’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탄생을 시작한다. 소리란 우주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를 의미한다. 소리길은 가족과 사회, 민족이 화합하고 소통하여 완성된 세계를 향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가야산 입구에서 해인사 통제소까지 6km 거리에 2시간 코스로 이어지는 소리길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한 친환경적 테마로드로 조성된 명품길이다. 논두렁을 낀 들길을 시작으로 황토길, 호젓한 오솔길, 노송으로 우거진 숲길과 기암괴석의 바위 사이를 데크로 설치하였다. 또한 곳곳에 전망대와 구름다리를 마련하여 천년의 역사와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낸 아름다운 가야산 품속으로 안내한다.
축전 행사기간 중, 소리길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자연과 호흡하며 역사의 숨결을 따라 걷는 명상의 길, 침묵의 길, 돌아보는 길, 맨발로 걷기, 마음 전하기, 마음 씻기, 돌탑 쌓기 등으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수려한 풍광의 가을 정취를 느끼며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진 : 가야산 19명소 1.2
대장경에 담긴 천년의 혼이 세계와 소통하고 가족과 사회의 소통을 염원하며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소리길을 걸어 명소를 둘러 보았다.
무릉도원을 상상하며 가야산을 바라보는 멱도원, 축화천으로 흘러내리는 꽃잎을 따라 올라 무릉교와 칠성대의 구름다리 위에서 마음 한 점 덜어낸다.
학처럼 살다가 홀연히 사라진 최치원의 흔적이 흥건한 홍류동과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농산정에는 노송의 향기가 가득하다. 취적봉에서 들려오는 신선의 피리소리와 옥을 뿜어내며 쏟아지는 분옥폭의 폭포수가 가야산의 하모니를 선사한다.
달빛이 잠긴 제월담에 세속의 시름을 담아 옥류에 흘러 보낸다. 이끼 낀 반석위로 천년세월의 무게가 하얀 포말을 그리며 낙화담으로 떨어진다. 바위가 층층이 겹쳐 쌓인 첩석대에 올라 자연과 전설의 조화가 이룬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회선대에 모인 신선들의 놀이에 끼어들어 어느새 나도 신선이 된 기분이다.
900년경 신라 학사 최치원이 이름붙인 홍류동의 각 명소를 1918년 제영시구題詠詩句를 붙인 연작시 형태의 예운 최동식 거사의 작품을 소개한다.
1. 멱도원覓桃源
蕭蕭款段訪林邱소소관단방림구 亂石喧豗萬壑流란석훤회만학류
花落鳥啼人跡少화락조제인적소 雲深不辨舊時遊운심불변구시유
호젓이 더딘 걸음으로 숲언덕을 찾아드니
돌무더기 어지러운 구비마다 물결이 부딪히네.
꽂은 지고 새는 우는데 인적은 드물고
구름까지 깊어 예놀던 곳 알 수 없어라.
2.축화천逐花川
角巾蠟屐撥雲迴각건랍극발운회 畿疊嵒屛鬱未開기첩암병울미개
磵路委蛇蒼蘚合간로위사창선합 淙淙綠水泛花來종종녹수범화래
두건에 나막신으로 구름헤쳐 돌아드니
겹겹히 선 병풍바위가 눈앞을 가리네.
굽어도는 계곡길엔 푸른 이끼 끼었는데
졸졸졸 푸른 물에 꽃잎이 떠내려오네.
3. 무릉교武陵橋
架壑飛紅枕澗身가학비홍침간신 如今不見避秦人여금불견피진인
紅霞隔水聞鷄犬홍하격수문계견 始覺桃源咫尺隣시각도원지척린
건너지른 붉은 다리가 개울을 베고 누웠는데
지금 진의 화를 피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구나.
붉은 노을은 물을 비껴나고 개.닭소리 들려오니
비로소 무릉도원이 가까워짐을 알겠구나.
4. 칠성대七星臺
戌削穹窿老石臺술삭궁륭노석대 焚香禮斗步虛迴분향예두보허회
縱知仁壽非求得종지인수비구득 猶乞瓊醬捧玉盃유걸경장봉옥배
깍은듯이 만든 활모양의 노석대老石臺에서
북두에게 예향하고 빈걸음으로 서성거리도다.
비록 산수 즐기지 못할 줄 알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술 옥잔에다가 받들길 바라노라.
5. 홍류동紅流洞
春風躑躅發層蠻춘풍척촉발층만 膩漲臙脂水鏡間니창연지수경간
若使重移楓葉景약사중이풍엽경 溶溶錦浪半函山용용금랑반함산
봄바람에 철쭉이 온 산봉우리에 피어나니
거울 같은 물 속에 붉은 연지 가득하구나.
만약에 단풍 붉은 빛을 다시금 옮긴다면
크고 넓은 비단물결에 반쯤은 잠기리라.
6. 농산정籠山亭
何日文昌入此蠻하일문창입차만 白雲黃鶴渺然間백운황학묘연간
已將流水紅塵洗이장유수홍진세 不必重聾萬疊山불필중농만첩산
최치원께서 언제 이 산에 들어왔던가?
흰구름과 황학이 아득히 어우러진 때 였도다.
이미 흐르는 물로서 세상의 때를 씻었으니
만겹 산으로 다시 귀 막을 필요는 없으리라.
7. 취적봉翠積峰
春山春雨染靑螺춘산춘우염청라 石氣涳濛樹影多석기공몽수영다
玉笛數聲雲不捲옥적수성운불권 也知峰月浴銀河야지봉월욕은하
산봉우리 봄비 내리니 푸른 빛 물들고
돌엔 서기가 가득하고 나무그림자 짙어지네.
옥피리 몇가락에도 구름은 걷히지 않으니
봉우리의 달이 또 은하수에 목욕함을 알겠도다.
8. 체필암泚筆嵒
月斧磨礱墮蔚藍월부마롱타울람 瀼瀼玉氣碧毿양양옥기벽남삼
何年鐵筆題蒼壁하년철필제창벽 猶見玄雲出紫潭유견현운출자담
신선의 도끼로 다듬어 푸른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양양히 맑은 기운이 길게길게 푸르구나.
언제 푸른 절벽에다 새겨 써 놓았길래
현운玄雲에서 자담紫潭이 나옴을 오히려 보겠구나.
9. 음풍뢰吟風瀨
溪聲山色朅來中계성산색걸래중 如羾寒門累始輕여공한문누시경
陶令臨流何足較도령임류하족교 浪吟明月與淸風랑음명월여청풍
물소리와 산빛 사이로 오가는 가운데
寒門에 오른 듯해 세속累가 비로소 가벼워지는구나.
陶淵明이 시냇물의 곁함에 어찌 족히 비기겠는가.
나도 明月과 淸風을 낭랑하게 읊조리네.
10. 광풍뢰光風瀨
明月三分水二分명월삼분수이분 松篁瑟瑟響飛雲송황슬슬향비운
箇中淸意誰知否개중청의수지부 我向山中一問君아향산중일문군
밝은 달은 세 조각이요, 물은 두 갈래로 갈라지니
송죽의 바람은 메아리 되어 구름위로 오르는구나.
이 속의 고요함을 뉘라서 알겠는가.
내가 산을 향하여 그대에게 한번 묻노라.
11. 완재암宛在嵓
皤腹酡容石丈人파복타용석장인 底事無言晉代春저사무언진대춘
先生袍笏重來拜선생포홀중래배 靜氣依然蓄素眞정기의연축소진
불룩한 배와 붉은 얼굴의 석장인이여.
무슨 일로 진대晉代의 봄을 말하지 않는가?
선생이 도포에 홀笏을 꼽고 거듭 절하니
정기가 예전처럼 소진素眞을 쌓아 두었네.
12. 분옥폭噴玉瀑
飛虹撞石噴瓊瑤비홍당석분경요 萬顆玲瓏映碧綃만과영롱영벽초
箇是仙家眞寶藏개시선가진보장 莫敎流出武陵橋막교유출무릉교
하늘의 무지개가 바위에 걸려 고운 옥 뿜어내니
갖가지 영롱한 구슬이 푸른 비단에 비치네.
이것이 신선세계의 진보배창고인지라
흐르는 물도 무릉교를 벗어나지 않는구나.
13. 제월담霽月潭
金波瀲灩躍浮光금파렴염약부광 夜靜山空桂葉香야정산공계엽향
潭上何人吹碧玉담상하인취벽옥 飛來飛去曳霞裳비래비거예하상
금빛 파도 반짝이니 달그림자 일렁이고
고요한 밤 빈산에 계수잎만 향기롭구나.
그 누가 못 위에서 옥피리를 불길래
날아가며 드리우는 붉은 치마여!
14. 낙화담落花潭
風雨前霄鬪澗阿풍우전소투간아 滿潭流水落花多만담유수낙화다
道人猶有情根在도인유유정근재 雙淚涓涓添綠波쌍루연연첨록파
어젯밤 풍우에 골짜기가 요란하더니
못 가득히 흐르는 물에 낙화가 많아라.
도인도 오히려 정의 뿌리가 남아있어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이 푸른 물결에 더해지네.
15. 첩석대疊石臺
重重石級似堆盤중중석급사퇴반 造物緣何巧削來조물연하교삭래
正眼開時方始見정안개시방시견 縹箱金笈錯雲罍표상금급착운뢰
거듭 포갠 돌무더기 쟁반처럼 쌓였으니
조물주가 무슨 까닭에 그 솜씨로 다듬었나.
바른 눈이 열릴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니
옥빛 금빛 상자에 구름무늬 잔이 섞여있네.
16. 회선대會仙臺
鸞笙瓊珮二千年난생경패이천년 猶見層臺纈紫煙유견층대힐자연
休道仙人消息斷휴도선인소식단 一雙靑鶴下芝田일쌍청학하지전
난생鸞笙과 경패瓊珮의 이천년에
층대層臺에는 보랏빛 연기가 맺혀있네.
선인의 소식이 끊어졌다고 말하지 말라.
한쌍의 청학이 지전芝田에 앉는구나.
참고문헌
이지관 《가야산 해인사지》 1992
해인사승가대학 수다라 《“가야십구명소제영伽倻十九名所題詠”에 대한 역주해譯註解》원철
#가야산 19명소중 가야산에 있는 학사대, 봉천대, 우비정은 제하였으며 음풍뢰와 완제암은 그 장소를 찾지 못하여 현명한 분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