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서
1 . 율 (律)
2. 반야 (般若)
3. 화엄 (華嚴)
4. 보적 (寶積)
5. 제경 (諸經)
6. 비밀 (秘密, 탄트라)
7. 열반 (涅槃)
논서
1 . 찬송 (讚頌)
2. 비밀
3. 반야
4. 중관 (中觀)
5. 경소 (經疏)
6. 유식 (唯講)
7. 구사(俱舍)
8. 율
9. 불전 (佛傳, 本生)
10. 서한 (書翰)
11. 인명 (因明)
12. 성명 (聲名)
13. 의명 (醫明)
14. 공교명 (工巧明)
15. 잡부(雜部)
티벳 대장경은 ‘팔리어장경(남전대장경)’ 및 한역장경과 함께 인류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장경을 면밀히 연구하고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은 매우 추상적인 한자(漢字)로만 불교를 이해할 것이 아니라 원전을 통하여 불교를 살펴 본다는 뜻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6. 서장 불교의 특징
불교가 일반적으로 갖는 특성은 어느 곳, 어느 때에도 환경을 널리 포용하고 그에 적응하는 데 있다. 불교의 이러한 특성은 자연히 그 지역의 역사와 사회 풍토에 어울리는 불교 형태를 형성시켰다. 티벳 불교도 마찬가지로 티벳의 토양을 배경으로 성립되어 온 만큼, 그 나름대로 특징이 있기 마련이다.
티벳 불교의 특정으로는, 첫째로, 티벳 본래의 민속 신앙인 ‘본교’에 인도 대승불교의 한 파인 밀교가 영합되어 점차 라마교로 발전한 것을 들 수 있다.
본교는 매우 주술적인, 악마 퇴치의 기능을 지녔기 때문에 티벳 불교는 밀교의 지나치게 현실화된 종교성과 함께 얽힘으로써 종교와 정치가 둘로 나뉠 수 없이 긴밀한 관계를 갖는 법왕재(法王制, 달라이 라마제)로 제도화되었다. 이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티벳의 자연 풍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험준한 자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인간의 염원은 영적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반드시 일상의 현실에서도 극복될 수 있도록 하는 ‘다스림’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둘째로, 티벳 불교는 재생(再生)의 활불(活佛) 사상과 절대적 카리스마의 힘을 신비화시켜 우위에 두고 있다. 개조(開祖)의 인격과 정신적 위력을 원시불(原始佛)의 그것으로 숭상하며, 따라서 특별한 명상 체계나 신비한 영감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 점차 다수의 민중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신성한 주문과 부적의 성행, 의식과 장식의 복잡한 집행과 같은 보기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세째로, 티벳 불교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신정적(神政的) 구조를 가진 관계로 정치의 영향 아래에서 비호되거나 사회 특권층에게 퍼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한때는 국민의 삼분의 일이 넘는 인구가 출가함으로써 노동 인구의 절대 감소로 인해 농촌 경제가 피폐되고 국가의 경제와 정치가 흔들리기도 했다. 다음의 수치에서 그 때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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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승려 일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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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티벳 302,500명 602,19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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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티벳 13,700명 33,76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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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16,200명 635,95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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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연적인 죽음이나, 전쟁에 의한 사망도 그 원인이 되었지만 지나친 사원 팽창주의와 그 무위도식이 큰 이유였고, 거기에 전통적인 일처다부제가 그러한 인구 감소와 국가, 사회적 위기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불교의 기능이 역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는 것이며, 국기에 법란(法難)을 일으킬 소지를 갖고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티벳 불교의 활발한 문화 수용과 발전을 들수 있다. 티벳인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자연의 재해와 질병으로부터 벗어나서 복을 부르는 것이 삶의 관건이었으므로, 그들은 고급 문화, 특히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려고 애썼다.
이 수용 태도가 때로는 사막인의 극단적 언동으로도 나타났으나, 그만큼 긍정적인 발전도 있었다. 아마 이 요소는 그들의 지리, 문화적 폐쇄성에서 오는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상승 욕구라고 생각된다. 지역적인 고립에서 오는 단점을 최대한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은 인류의 보편적인 심상(心像)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본원적 염원을 구체적으로 수용한 곳이 사원이었으므로, 특히 세상이 어지러울 때 민심은 곳곳의 사원이나 종파를 중심으로 모였다. 티벳 사원이 사회 안정의 기능까지 수행하게 되면서, 각지의 제후들이 사원의 힘을 빌어 외세와 맞섰던 기록도 티벳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종교의 기능이 온전하게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이상으로 티벳 불교의 대강을 살펴보았다. 마무리를 짓기에 앞세, 우리는 냉정한 시각에서 티벳의 불교 사상(事象)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능동적인 발전을 거듭한 티벳 불교는, 그러나, 과대한 종교 우위 내지는 주술적인 현세지향주의 위에 안착된 교정(敎政)의 권력 구조가 일회적 전성만을 가져다준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반성의 여지를 갖고 있다. 종교가 정치와 특수하게 밀착된 만큼, 역으로 당한 법란이 상대적인 함수로 작용하였으리라는 점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모든 문화와 문명이 그러하듯, 티벳 불교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영고성쇠를 밟아왔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서역(西域) 지방이 지니는 동서문화적 가치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 한때 번영했던 서역의 나라들을 중국에선 흔히 ‘서역 삼십육국(國)’이라 칭했듯이, 서역은 변화무쌍한 특정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불교는 넓은 가슴과 적용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불교가 동양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일찌기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왜 그 흔적마저 찾을 수 없는가 하는 반성은 재고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경제학자 그레샴의 법칙처럼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 내쫓는’ 힘의 논리가 종교에도 해당된 점은 반드시 반성해야 할 점이다. 이것은 유목민의 생활양식과 정착 농경민의 생존 체계 사이의 비교 우위를 굳이 논하여보자는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불교의 사회적인 제 나름의 기능’을 현실 위에 표현하고 또 구현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과거 역사에 나타난 티벳 불교의 영광과 쇠망의 교훈은 우리에게 많은 감명을 준다. 불교의 동점사(東漸史)나 불교의 서구 전파와 그 연멸사(湮滅史)를 거듭 조명할 필요도 있다. 이의 한 시도로서, 앞으로 동서 문화 교류의 중심지인 이란Iran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종교의 실상을 정확히 밝혀야 할 것도 우리의 과제라는 말을 덧붙이며 끝을 맺는다.
마지막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