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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내원정사 주지 정련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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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1년 09월 355호

도심에 이리도 울울한 숲이 있나 싶다. 오롯한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널찍한 터에 묵직하고도 겸허히 자리 잡고 있는 내원정사가 마음을 갸륵히 한다. 날씨가 물쿤 여름 오후, 정련 스님은 갑작비가 내려 서둘러 덧문을 닫는 중이었다. 그 풍경은 마치 여염집 촌부의 여름 망중한인 듯도 싶고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자를 기다리는 노부 같기도 하다.
“주중엔 동국대에 머물고 주말엔 이곳에서 지내지요.”
바쁘신지 여쭈니 갑작비가 뭐 대수롭냐는 듯 비를 맞는 나무처럼 스스럼없는 대답이다. 내원정사 주지이며 동국대학교 이사장이니 스님의 걸음에 맞춰 바투 걸어야 할 것만 같았는데 걸음도 말씀도 여낙낙하다.
대가람인 내원정사는 1972년에 정련스님이 천막 법당에서부터 시작해 이룬 것이다. 스님은 나무가 없던 곳에 매년 수천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게 하고 황무지였던 천 평의 땅에 10년 계획으로 불사를 시작했다. 누가 큰 시주를 한 것이 아니고 신도들의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지어오면서 처음 계획했던 모습의 가람이 천천히 형성되었다. 그야말로 포교와 교육과 복지에 뜻을 둔 정련스님의 원력과 기도로 이루어진 절이다.
“부처님도 중생의 소리를 듣고 문제 해결을 위해 탁발을 하셨어요. 그 자체가 수행인데 왜 우린 앉아서 갖다 주는 밥 먹고 참선만 해야 하나 싶더군요. 내가 수행을 많이 해서 대 선지식이 되어 많은 후학들에게 길을 인도할 수 있는 법력을 못 얻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생각하니 답답하대요. 그래서 받는 불교가 아닌 주는 불교를 할 방법이 없겠나 생각하게 되면서 포교와 교육과 복지에 뜻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님은 기도를 시작했다.
“발심수행장에 보면 절하는 무릎이 얼음 같아도 불을 생각지 말며 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 같아도 밥을 생각지 말라고 했어요. 원력과 기도만 있으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찰도 지어지고 신도도 생겨났다. 그렇게 한발 한발 걷다보니 어느덧 39년 전에 스님이 걸망 하나 지고와 풀어놓은 이곳이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사찰이 됐다. 정련스님도 상상치 못 했던 일이라며 말씀하신다.
“내가 누구에게 감동을 줄 처지도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수행자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살았을 뿐입니다. 내 속에 든 것이 없는데 부처님 말씀이나 조사스님 말씀을 내 뼈아픈 인고인 것처럼 떠들면 그걸 누가 믿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어요. 얼마 안 가서 제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신도들도 떠나기 마련이지요.”

절이 다 지어지고 나서는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스님은 1985년도에 절 옆에 유치원을 지었다. 모두가 산 속 유치원에 누가 오겠냐고 했지만 스님은 못을 파 놓으면 물이 생기고 물이 생기면 고기가 모이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님은 자연의 터에 널찍한 못을 파고 좋은 커리큘럼이란 맑은 물이 고이게 하고 싱싱한 고기들이 모일 수 있도록 유치원을 개설했다. 스님은 그런 유치원을 만들기 위해서 직접 유아교육을 배우고 원장 자격증을 취득하고 5년간 유아교육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다.
“교육의 밑바탕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인성, 생태, 전통 교육 세 가지를 접목해서 커리큘럼을 만들었어요.”
옛날엔 집안에서 전통과 인성 교육을 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것을 유치원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책으로 인한 지식의 습득이 아닌 체험이야말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란 생각으로 생태 교육을 했다.
“어린 나무를 구부려 놓으면 평생 그렇게 자라요. 그러니 그 시기의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유치원을 개원했던 80년도엔 내원정사 유치원의 커리큘럼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내원정사의 유치원에 들어오기 위해서 추첨을 해야만 하고, 각 지역의 유치원 원장들이 1년에 50회 정도의 견학을 오고, 교과부에서 내원정사 유치원의 커리큘럼을 교과목에 올릴 정도가 되었다. 스님의 교육 방향이 미래를 위한 교육법으로 적합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왜 영어를 안 가르치느냐는 학부모한테는 다른 유치원에 데려가라고 해요. 우린 3천 평 땅에 아이들이 직접 감자도 심고 호박도 심고 콩도 심어요. 매실도 따고 된장도 담그고 두부도 만들고 팥죽도 쒀 먹어요. 엄마들은 감자 눈 따서 심는 거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다 알아요.”
스님은 학부모들에게 한창 클 나이의 아이들에게 숙제를 주고 학원을 보내기보다 실컷 재우라고 한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들도 이젠 스님의 흔들림 없는 교육법에 힘을 싣는다. 그리고 아이들도 스님에게 매달려 함께 뒹군다.
“아이들 교육은 마음을 꺼내주고 마음을 심어주는 일이에요. 마음을 같이 하는 일.”
배려하고 나누고 더불어 사는 걸 가르친다. 불교적인 색채는 두지 않으나 그 내용이 바로 부처님의 말씀이다. 그렇기에 내원정사 유치원에서 일 년을 보낸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있다.
“똑같은 길을 걸어도 아침에 걷는 것과 저녁에 걷는 것이 다르고 비가 올 때와 바람이 불 때 걷는 것이 다르고 신발을 신고 걷는 것과 맨발로 걷는 것이 다르다는 걸 우리 아이들은 알아요. 이 아이들로 인해 국민성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리고 복지를 하기 위해 스님은 또 동국대학교 대학원 복지과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다. 복지 1급 자격증을 따고 복지 법인과 청소년 법인을 만들었다. 그래서 현재 거제도에 사회복지법인 중증 장애인 요양시설과 장애인 재활병원을 개원해 운영 중이고 복지관 열 곳과 청소년 수련관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걸어가다가 대소변을 보고 콧물을 흘리니 처음엔 다가서질 못 하겠어서 제 자신이 부끄럽더라고요. 그런데 그 콧물도 대소변도 다 내 안에 있는 거잖아요. 이젠 흘린 밥 같이 주워 먹고 그래요. 그분들 모두 얼마나 천진난만한지 다 부처님이고 보살님이에요.”
가실 곳도 많고 하실 일도 많아 어찌 이 모든 곳에 손을 뻗을 수 있을까 싶은데 스님은 손 안에 들 수 없는 일을 욕심 낸 적은 없단다. 역량 이상의 욕심을 부리면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정련스님의 손은 작지만 웅숭깊어 보인다.
“세상에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못 할 게 뭐 있어요. 원력을 갖고 신심으로 하면 되는 것이지요. 부처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하다보면 다 되는 것이겠죠.”

동국대학교 이사장인 정련스님은 앞으로 동국대와 한국 불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동국대학교가 불교 대학으로써의 위상을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여느 명문대학교도 따라오지 못하는 불교 대학이 되어 한국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동국대를 찾아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랬을 때 동국대는 세계적인 명문 사학이 될 것이며 한국 불교는 더 발전할 것이란 말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능한 교수진이 필요하고 종단의 뒷받침이 필요할 것이란다. 그러나 그것이 단숨에 이루어질 일은 아닐 것이기에 스님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중이다.
“동국대학교를 설립할 때의 취지가 불교를 연구하고 포교해서 인류사회에 이바지하자는 것이니 종단과 함께 해나가야 할 일입니다. 종단에서 못 하는 것은 학교에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학교에서 연구한 것은 종단에 기여하고 종단에서는 경제적인 지원을 해줘야지요. 서로 협력하면 잘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정련스님은 총무원장스님과 뜻을 맞춰 학교 발전이 종단 발전이 되고 종단 발전이 학교 발전이 될 수 있도록 호흡을 맞춰가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그런 관계를 유지하며 협력할 것이라며 스님은 뜻을 더 단단히 하신다. 햇빛이 짱짱하던 절 마당에 또 갑작비가 쏟아진다. 마당에 나와 비를 보다 처마 밑에 앉았던 스님이 말씀하신다.
“좋고 나쁜 것 없는 평등심. 부처님 말씀에 그 외의 어떤 말을 갖다 붙이겠습니까. 우린 그런 보물이 가득 찬 창고를 안고 있지요. 사바세계를 다 덮고도 남을 보물, 우리 모두를 부처로 만들 수 있는 보물. 그런데 이 보물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하느냐가 문제네요. 수행력도 있어야 하고 덕도 쌓고 끊임없이 공부도 해야지요.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햇살이 짱짱하대도 소낙비가 쏟아진대도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그러니 삶이 좋을 것도 죽음이 나쁠 것도 없다고 물웅덩이에 빠져 다리를 늘어뜨린 벌레가 내게 말한다. 스님은 다시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신다. 해가 잠시 먹장구름에서 벗어났을 때 스님이 인사를 건네신다. 언제 한번 만나 냉면이나 한 그릇 먹자고. 스님의 인사에 마음 더위가 싹 가셔버린 오후 숲길에서 만난 것은 보살과도 유년의 나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현재 나의 오탁이 물웅덩이를 뿌옇게 흐려놓고 있었다. 갈 길이 험하고도 멀다. 허나 정련스님이 말씀하셨잖는가. 부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하면 다 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