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전의 편액과 주련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대장경이야기 - 성안┃팔만대장경 보존국장
2011년 09월 355호
법보전法寶殿의 편액은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湖, 1810~1888)의 작품이다. 법보전의 필적에 대하여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서 나온 가야산 해인사지(1163p)에는 박의도朴義度로 하였고, 경북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팔만대장경과 해인사(144p)에서 서수생 선생은 박도의朴道義라고 하였으나, 해인사 승가대학 학인들이 교지인 수다라 5호(388p)에 해인사 서예명품 배관기를 기고한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최완수 선생은 법보전과 수다라장의 두 현판의 글씨는 현존하는 신위당 글씨 중의 백미로 과연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다운 필법임을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하였다. 법보전에서 법보는 불교에서 삼보三寶의 하나를 뜻한다. 삼보는 깨우친 사람인 부처(佛) · 깨우친 사람의 가르침인 법(法) · 깨우친 사람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이들인 승가(僧)를 통칭하는 불교 용어이다. 이들을 각각 불보佛寶 · 법보法寶 · 승보僧寶 또는 간단히 불 · 법 · 승이라고 한다. 보寶는 귀중하다는 뜻으로, \"삼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세 가지 귀중한 것\" 또는 \"세 가지 보석\"이다. 법보전이란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경판에 세겨 모셔 놓은 전각을 의미한다. 법보전 주련의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뜻은 ‘원각도량은 어느 곳인가? 지금 생사가 있는 바로 이 자리’라는 의미이다. 즉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도량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생활현장이 바로 그 도량임을 가르쳐 주는 내용의 게송이다. 이 주련은 조선 고종때의 남전 한규(南泉 翰奎 1868~1936)스님의 작품이다. 스님은 1868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12년 동안 인동仁東 서송재徐松齋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시문과 글씨 모두가 뛰어 났다고 한다.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한 후, 18세에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하며 당시의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삼천 대천 세계에 한줄기 빛살이 하늘에 가득 찼고 소나무에 걸린 달과 숲속의 바람도 스님과 함께 잠들었네.\" 신해信海 스님을 은사로 1885년 사미계를 받은 후 청암사 혼원混元 스님, 동화사 회응晦應 스님 등으로부터 교학을 배웠고, 범어사, 오대산 상원사, 해인사, 통도사 등에서 선리禪理를 참구하였으며, 1904년에는 해인사 주지 소임을 보았다. 장경藏經에 능통하고 선필禪筆로 후학들을 제도하며 선풍禪風을 일으켰던 스님이 1908년 해인사에서 한 대중설법인 \"원각도량은 어느 곳인가? 지금 생사가 있는 바로 이 자리\" 가 법보전에 주련으로 세겨지게 되었다. 1908년 해인사 제산霽山스님으로부터 구족계와 보살계를 받은 후, 범어사 동래포교소 포교사(1911년), 범어사 임제종 중앙포교소 포교사(1912년), 석왕사 경성포교당 포교사(1917년), 범어사 경성포교당 포교사(1918년)로 활동했다. 1921년에는 왜색불교를 막고 전통불교의 계승을 위해 도봉·석두 스님과 선학원禪學院을 설립하여 선풍 진작에 노력한 후, 선학원 선우공제회 평의원(1922년), 직지사 조실(1924년),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초대 이사(1934년)를 역임하셨다. 스님의 제자로는 서울 칠보사에 주석하였던 석주(昔珠 1909∼2004)스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