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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민간신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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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진철승 1988년 02월 72호
이 기획연재의 첫번째 글에서 민중불교는 민속이나 민간신앙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민중불교의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종합적 시도의 한 부분이다. 곧, 민간신앙 속에 스며든 불교적 내용과 불교신앙 속에 스며든 민간신앙적 요소를 판별해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이 양자를 모두 다 밝혀내는 데는 역량 부족과 지면 제약과 같은 한계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먼저 민간신앙을 집안 및 마을을 중심으로 살펴본 뒤에 불교 신앙속의 민간신앙적 요소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민간신앙은 기층 신앙이다. 곧, 민간신앙은 역사를 통한 제 사회구성 속에서 생산의 주체였던 기층 대중이 생산과 노동을 중심으로 하여 신앙하고 실천하던 신앙이다. 따라서 민간신앙은 특별히 체계화된 교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통일된 전승 체계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민간신앙은 어느면으로는 대단히 비과학적이고 정태적이며 ‘미신적’인 신앙으로 무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민간신앙의 이러한 한계는 거꾸로 민간신앙의 동태성, 실천성, 공동체성을 보장해 주는 긍정적인 기능도 갖게 해 준다. 다시 말해, 민간신앙은 제도 종교의 교리처럼 도그마화되지 않고 항상 생산 노동의 변화 과정에 따라 변신하는 동태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진보의 흐름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또 민간신앙은 집안 및 마을 단위의 공동체 속에서 생산 대중을 공동의 틀로 연대하게 해 주며, 그것은 역사적 변동기에 그들을 하나의
전투 단위로 엮어내는 기초적 토대의 구실까지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총체적인 시각에서의 분석에 의하지 않고, 오늘날처럼 현대인의 시각에 의하거나 단순한 기능주의적, 합리주의적 시각에만 의한 분석으로는 민간신앙이 역사적 변동 과정에서 지녔던 기능을 전혀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러한 분석 시각이야말로 비과학적이며 정태적일 뿐이다.
본디 종교나 신앙은 관념체계와 실천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관념체계는 자연과 세계의 구성을 설명하는 세계관이라 할 수 있으며 실천체계란 그러한 세계관을 기초로 하여 좀더 건강하고 더 복된 삶을 꾸려가려는 의례체계를 말한다. 민간신앙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관념체계와 실천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민간신앙의 관념체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실천체계는 뒤에 ‘불교의식과 민중의례’에서 다루기로 한다.
만간신앙의 관념체계 곧 세계관은 무척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나, ‘자연’과 ‘사회’라는 기초 단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민간신앙은 ‘자연’과의 관계 및 ‘사회’와의 관련을 중심으로 한 민중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은 하늘(하느님sky-god, 구름, 비, 바람 따위)과 땅(흙, 물, 나무, 돌, 광물, 곡식 들과 풍수지리에서의 지중생기地中生氣 따위)이며, 사회는 바로 인간(人間,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이것은 곧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라고 할 수 있다.
전통시대의 민중들은 이 자연과 사회에 관한 관념을 ‘집’과 ‘마을’을 중심으로 가꾸어 나갔다. 마을은 그냥 아무 곳에서나 형성되지 않는다. 산이 있고 물이 있고 농사지을 만한 땅이 있고 집지을 만한 공간이 있어야 마을이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풍수지리의 기초다. 풍수 사장은 본래부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지리학 이론이다. 이것이 점차 사회 관계와 계급 관계의 변화에 따라 묘자리 싸움등으로 오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왕권 교체의 이데올로기적 합리화의 기능을 하거나 변혁 사상의 이념적 기초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을이든 절이든 한 나라의 서울이든, 현대의 지리학 이론으로 보아도, ‘살 만한 땅’이었다는 점에서 풍수사상의 과학성과 현대적 계승의 단초를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와 같이 형성된 ‘마을’을 중심으로 어떠한 민중적 세계관이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마을에는 당산(堂山, 그림 1-②)이 있다. 이는 마을을 그 기슭에 안고 있는 뒷산이거나 앞산(南山)으로, 마을에서 신성시되고 절대 부정을 금한다. 이는 마을을 홍수나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 주고, 산의 황폐화를 방지하는 실질적 기능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마을에서 신성시하는 산에는 국수당(그림 1-①)이 있다. 국수당은 국시당, 구시당으로 불려지기도하며 대개의 경우 국수당 신앙을 상징하는 국수봉(峯)에 위치해 있다. 이는 하늘과 인간 및 땅을 연결시켜 주는 상징적 역할을 하며 고대로부터 하느님 신앙 및 단군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l
우리나라에는 거의 어느 마을이든 산신각(그림 1-③)이 있다. 이 산신은 도교적 칠성(七星)과 더불어 민중의 중심적 신앙 대상이었으며, 산이 유달리 많은 우리나라의 산악숭배의 전통이 승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호랑이 등에 앉아동자의 시중을 받는 산신령으로 구체화된 이 산신은 고대로부터 마을의 수호와 강우(降雨), 기자(祈子), 구병(救病), 호환(虎患)과 같은 재난의 방지를 기원하는 산신제로 이어져 왔다.
마을 뒷산이나 앞산에 모셔져 있는 당집(그림 1-④)에는 마을의 수호신이 모셔져 있다. 이 수호신은 그 마을에 맨 처음 들어온 입향시조(入鄕始祖)나 임 경업 등의 인격신, 또는 불교나 도교의 제반 신격들로 마을마다 달리 모셔져 있다. 이곳에서는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고 마을의 각 집안이나 개인의 안녕 및 재수발복을 비는 굿이 치뤄진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역사적 인물을 신격으로 모신 민중의식이다. 이는 마의태자, 공민왕, 최영 장군, 임 경업 장군, 남 이 장군 등의 억울한 죽음과 자신들의 억압과 굴종의 삶을 동일시하면서 그러한 신장의 도움으로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거나, 외세나 지배세력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한 민중의식의 발현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민중의식은 녹두 장군이나 전 태일 신장, 이 한렬 열사등 자신들을 억누르는 세력에 항거하다 산화한 역사적 인물을 기리는 민중의례로 그 전통을 맥맥히 이어가고 있다.
당목(堂木, 그림 1-⑤)은 신목(神木), 정자나무 등으로도 불리우는데 전통적인 마을굿이 치뤄지는 공간이다. 이 당목 또한 하늘과의 교통(交通)이 이뤄지는 신성 공간이지만, 평상시에는 시원한 그늘 아래 노인이나 아아들이 휴식을 취하며 노는 공간이 되거나 마을의 대소사가 논의되는 여론 형성의 장소이기도 했다.
장승(그림 1-⑥)은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 질병, 재앙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며 솟대신앙과 공존하기도 한다. 서낭당(그림1-⑦)은 돌무더기로 이루어지거나 서낭목으로 모셔지기도 하며, 마을의 안녕과 집안 ‘ 개인의 소망을 비는 서낭굿이 열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마을’을 중심으로 한 민중적 세계관을 살펴본대로, 이러한 공간이나 신격이 외부적으로는 수호신적 기능을, 내부적으로는 공동체의 결속과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거나 마을 단위의 여론이 형성되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집’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신격의 위상과 그 내용을 살펴보자. 집안 신격은 일상적 생활 공간인 집안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바, 이를 단순히 비과학적인 자연신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봉건제 하의 주거 공간의 구조, 민간위생적인 기능, 억울한 죽음의 해원 등의 총체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여 그 당시의 민중의 의식구조, 생활 수준, 생산 노동과의 관련을 총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집안 신격으로는 인간에게 집짓는 법을 알려 주었다고 하며 대청 양주(楳柱)에 모셔 집안의 부귀를 기원하는 성주신(그림 2-①), 안방 웃목에 모시는 조상신(그림 2-②), 출산에 관계되며 아낙들이 안방 아랫목에 그 삼신바가지로 모시는 삼신(그림 2-③), 밥을 해서 솥에 주걱을 꽂고 부뚜막에 모시는 조왕신(그림 2-④), 재복과 행운을 주재하는 곳간의 업신 (그림 2-⑤), 가택수호신인 문신(그림 2-⑥), 농경에 긴요한 외양간의 우마신(그림 2-⑦), 횡사(橫死)방지와 위생을 위한 측간신(厠間神, 그림 2-⑧), 마당신으로 명과 복을 비는 지신(그림 2-⑨), 마실 물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우물신(그림2-⑩), 장독에 모셔 두고 장맛을 비는 철륭신(그림 2-⑪), 육아 및 수명 장수에 관계된 칠성신(그림 2-⑫), 처녀로 죽어서 한이 많고 잘 달래지 않으면 무서운 재액을 주는 대청 부근의 왕신(그림 2-⑬), 총각 귀신으로 집 안팎을 떠도는 몽달귀신(그림 2-⑭) 등이 있다.
이상 ‘집’과 ‘마을’을 중심으로 민중의 세계관을 살펴보았는 바, 집마다 분산되어 있는 집안 신격은 마을 신격에 의해 횡적으로 유래, 결속되어 마을의 공동체 의식의 주축을 이루게 된다. 이밖에도 불교, 도교 등의 여러 신격이 민중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으나, 그 어떤 것이든 민중은 자신의 삶, 노동, 계급 갈등과의 관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신앙하며 살아 왔음을 지적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