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동안에 논의되어 온 교계의 문제점들은 몇 가지 형태로 분류해 보면, 첫째로, 승단 내의 제도적인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해방 뒤로 계속된, 종권을 둘러싼 비구와 대처의 분쟁과 이권 추구는 오늘날 종단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한 분쟁과 분규가 거듭되는 과정에서 종단의 위신이 크게 실추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를 타개하기 위하 제도 정비로써 교계의 활성화를 꾀하기는 커녕, 종권 및 이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강화하게 되니 불교의 자주성이 심각한 침해를 받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즈음 청년 불자와 소장 승려를 중심으로 교단 개혁과 불교 자주화의 외침이 드높아진 것은 바로 이러한 교계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함에 비롯된 것이다.
둘째로, 불교의 사상이론의 정립에 대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다변화하는 사회에서 불교의 사상과 이론의 중심을 확립하는 문제는 불교 수행, 불교의 대사회적 관계, 그리고 불교의 발전 방향의 문제들을 가능하기 위한 주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1,600년 동안을 이어 오면서 축적된 한국불교의 심오한 사상이론은 마땅히 오늘의 현실에 맞추어 올바르게 변용되어야 할 터이나, 학계에서의 무성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국불교가 여전히 고답적인 선정주의나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상이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불교 개혁의 정신적 토대를
마련한다는 면에서도 참으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와 관련하여, 최근에 이르러, 보조사상연구소나 한국불교연구원과 같은 학술 불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은 그나마 퍽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셋째로, 대중 포교의 문제가 있다. 얼마 전에 발표된 경제기획원의 종교 인구 조사에 의하면 종교 인구의 46.7 퍼센트가 불교 인구이며 그 가운데 60 퍼센트 이상이 30대 이하의 젊은 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도 타종교에 견주어 교세가 우위에 있다거나 젊은 층이 두터우니 불교의 장래는 밝다고 낙관할 수 없음은, 청장년층까지 포함한 우리 불교도의 신앙의 내용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올바른 대중 포교가 강조된다. 이제 불교 포교는 더 이상 양적 확산만을 꾀할 것이 아니라 신앙의 질을 발전시키고 아울러 불심을 바탕으로 한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소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에 이르렀다. 이 즈음에 몇몇 사찰과 포교당들이 대중 포교 방식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은 주목할 일이다.
이상에서 개괄하여 본 분제점들이 현재 불교 운동이 짊어지고 해결해 나가야 할 주요 과제들이다. 그런데, 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립적인 논의보다는 총체적으로 현실을 현상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그를 위한 일련의 집단적 움직임이 그동안 있어 왔으니, 불교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종단 개혁운동’과 ‘민중 불교 운동’의 두 가지 흐름으로 파악된다.
종단 개혁 운동을 통하여 불교계의 제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노력은 교계 내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상대적 진보 세력에 의해서 꾸준히 진전되어 왔다. 그리하여 ‘83년 한 때에는 청년 불교도 대회를 거쳐 비상종단이 형성됨으로써 일시적이나마 종단 개혁의 실천을 눈앞에 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주체 세력의 역량의 미비함과 사상이론적 기반의 취약성 및 정치권력의 개입 따위로 말미암아 무산되어 버리자 또 다시 종단 개혁은 더할 나위없이 어려운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하여 개혁의 주체 세력은 조계종단을 둘러싼 정치권력의 이해 관계를 새삼 인식하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예속으로부터 자주성을 획득하는 것이 종단개혁 운동에서 선행되어야 할 주요한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86년 9월에 있었던 해인사 승려대회에서 주창된 불교재산관리법 폐지 운동은 그러한 불교 자주화에 대한 성숙된 요구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불교 운동의 또 하나의 큰 흐름인 민중 불교 운동은 대학생 불자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민중불교운동연합, 정토구현 전국승가회와 같은 주로 청년 불자들과 소장 승려들의 모임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 이 민중 불교 운동은 어느 정도 정치적 흐름에 편중되는 가운데서 제 나름대로의 자기발전을 이루어내고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보수 성향이 짙은 불교계의 풍토 속에서 이들이 내세우는 민주화가 갖는 강한 정치적 편향이 교계 내에서 이단시되어 온 것은 사실이나, 최근에 이르러 자기 반성을 거치는 가운데 불교 개혁의 대중적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음에서 민중 불교 운동이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과 같은 집단적 노력과 더불어, 개별적인 차원에서 고립적으로 행하여 온 자기 혁신의 몸부림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불교 운동의 성과이다. 그동안 여러 연구단체와 몇몇 사찰과 포교당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 온 실천적인 혁신의 노력이야말로 오히려 더 탄탄한 대중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보조사상연구회, 한국불교연구원, 민족불교연구소, 포교연구회, 그리고 그밖의 학생단체와 승려단체 들이 불교의 사상이론적 측면을 비롯하여 대중 포교의 문제, 종교 개혁의 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를 전개해오고 있는 한편, 몇몇 모범적인 사찰이나 포교당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포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의 불교 운동이 드러낸 한계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앞서의 민중 불교 운동이나 종교 개혁 운동들은 대체로 그들의 문제 제기 방식이 원칙론과 일반론에 머물고 말아 개혁을 선도해 나갈 구체적인 대안의 제시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특히 불교 개혁이 대중의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미흡하였다. 한편, 개별 단위에서 진행된 개혁 운동도 그 인식에서 총체성을 얻지 못하여 고립되고 분산된 노력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불교 운동을 조직하고 전개할 것인가를 주체의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불교 대중의 구체적 요구가 아닌, 몇몇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만 근거한 불교 운동의 실패를 되돌아볼 때에, 무엇보다도 먼저 불교 대중을 그 운동의 주인으로 앉히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곧, 소수의 주관이 주도하는 운동이 아닌, 진정한 불교 대중의 운동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 운동을 선도하는 주체에게 높은 신앙심에 기초한 도덕적 자질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의 신앙적 체험에서 출발한 자기 확신과 각오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그 어렵고 험난한 과제를 해결하려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막연한 불평과 불만에서 출발한 운동이나 엘리트주의 따위는 불교 운동의 막중한 사명을 그르치는 불순한 요소밖에 되지 않는다.
대중의 요구를 바탕으로 한 올바른 운동의 풍토를 이룩하고 모든 지보적 세력들이 서로 단결 통일되어 나아갈 때에야 비로소 올바른 주체 형성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 불교 운동이 뚜렷한 성과를 얻으며 발전해 나가는 데에서 사회역사적 안목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함을 알아야 한다. 불교 운동에서 그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얻어낸 커다란 교훈은 불교 개혁, 불교 자주화, 그리고 사회 민주화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동시적 과제임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불교 개혁이라는 대명제를 향한 종단의 제도적인 개혁, 사상이론의 재정립, 대중 포교의 문제들은 반드시 운동의 주체가 사회역사적 안목을 갖추어야만 해결될 수 있음이 전제된다.
우리 불교계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 새로운 전환 국면의 질적인 성장은 오로지 불교 대중의 자발성에 기초하여야만 이룩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교계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불교 대중 운동에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