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종교宗敎’라는 말 그대로 으뜸의 가르침을 추구하는 집단이니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데서 어른 또는 중재자의 지위가 부여된다. 또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중요한 고비에서 우리는 종교를 통해 위안과 에너지를 얻는다.
불교는 안락을 추구하는 종교다. 전도선언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오, 비구들이여! 나는 신들이나 인간들이 얽혀 있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오, 비구들이여! 그대들 역시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앞으로 가라! 비구들이여, 많은 이들의 선을 위해서,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신과 인간들의 선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마라. 오,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을, 형식과 내용이 모두 좋은 법을 설하라. 완벽하고도 순수한 성스러운 삶을 선포하라. 눈에 먼지가 덜 낀 중생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은 법을 듣지 못하면 타락할 것이다. 법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오,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가르치기 위해
세나니가마에 있는 우루웰라로 갈 것이다. 지혜로운 자의 깃발을 올려라. 숭고한 법을 설하라! 다른 사람들의 선을 위해 일하라. 자신의 의무를 완수한 자들이여.\"
불교는 이 전도선언으로부터 세상 한가운데의 종교가 되었다. 모든 것이 연기緣起이니 당연히 안팎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이 혼탁할수록 상식이 흔들릴 때일수록 불교의 역할은 커진다. 세상이 사바이니 편한 날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그러므로 안락한 세상을 향한 염원은 꺼지지 않는다. 지금도 삶은 팍팍하다. 지금 풀어야 할 과제들이 주어져 있다.
반값등록금으로 논란이 뜨겁다. 등록금 부담으로 학생이 범죄까지 저지르는 상황이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생활고와 사회적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다. 가계부채 800조 원이라며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800조 원이면, 가구당 평균 부채가 4611만 원이다. 빚지고는 발 뻗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에 577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프다. 빚더미 위에 앉았으니 열심히 일한들 빚 갚는 인생이라는 자조감이 밀려올 것이다. 4대강 사업에 수십조원의 나랏돈을 쏟아붓고 있다. 공직사회는 뇌물로 얼룩져있다. 남북의 대결은 긴장의 일상화를 구조화시켰다. 사회 전체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사회 전체에 미친다. 국민들의 일상적 삶을 규정할 정도로 영향력의 폭이 매우 넓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들의 삶을 안락하게 이끌지 못한다. 4, 5년 후의 선거에서 선택받아 권력을 잡는 것이 정치인들의 1차 목표다. 긴 안목으로 사회를 이끄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교육이 100년대계라면, 한국의 정치는 5년소계다. 종교宗敎는 말 그대로 으뜸의 가르침이니 시간을 초월한다. 그래서 종교가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 직접 권력투쟁의 장인 정치에 뛰어들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들의 짧은 안목을 바로잡아 안락을 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종교지도자들은 이 대통령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대통령에게 임기 내에 템플스테이나 처치스테이, 향교스테이와 같은 각 종교별 문화를 직접 체험할 것을 제안했다. 또 근대유산을 포함한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보전과 발전에 노력하여 줄 것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위에서 인용한 칼럼은 \"종교간 경쟁의 냄새가 더 짙게 풍긴다. 정부의 템플스테이 예산 지원이 특정종교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개신교계의 주장이 있었던 터였다. 템플스테이, 처치스테이, 향교스테이 체험을 제안한 것에는 정부 예산을 골고루 지원해달라는 속내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이 골고루 \'스테이\' 체험을 함으로써 종교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종교간 갈등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종교 갈등의 문제를 진정 염려하고 있다면, 종교지도자들이 먼저 이웃종교 스테이를 하면 되지 대통령을 앞세울 일은 아니다. 오늘 청와대에서 오찬을 한 종교지도자들은 자기 종교의 대표라는 점을 너무 크게 드러냈다. 오늘이 힘겹고 내일이 불안한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어른으로서의 모습은 너무 작았다\"고 꼬집고는 \"씁쓸하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중생의 안락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긴 안목으로 세상을 맑힐 종교인의 모습이 간절한 이 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