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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m I, Where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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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도무지道無知┃ 해인사 승가대학 2011년 07월 353호

무릇 출가자라면 목숨을 걸고,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수행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스님이라는 호칭보다 수행자라는 호칭을 더 좋아하는 것도
스님이라는 단어는 뭔가 완결完結된 느낌이 드는 데 반하여,
수행자라는 단어는 뭔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출가하여 수행의 길을 나선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바쁜 강원생활에 함몰되어 초발심은 희미해지고 출가의 목표는 흐릿해졌습니다.
하지만 항상 스스로 출가수행자라는 사실을 되뇌고,
마조스님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말씀처럼
강원생활이 곧 수행의 연속이라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강원생활만큼
공부거리가 많은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들과 부대끼며 바쁘게 지내는 일상 속에서
항상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행은 그 방법이 천차만별이기에
간혹 나 자신이 제대로 된 수행의 길을 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예불, 절, 간경, 참선, 울력 등을 통해서
나 자신이 얼마나 참나의 발견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반문하고는 합니다.

나침반과 지도가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한다면 참으로 막막할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목표한 지점과 반대로 방향을 설정하였다면
노력하면 할수록 목표와의 거리는 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수행자는 항상 “나는 무엇인가(What am I)”라는 나침반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Where am I)”라는 지도를 갖추고
머나먼 수행의 여정旅程에 올라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행의 방향과 깊이를 가늠할 만한
기준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저는 그 해답을 불교 가르침 자체에서 찾곤 합니다.

첫째, 수행의 깊이는 불도佛道의 실천과 정비례합니다.
사찰의 일주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귀가 있습니다.
입차문내入此門內 막존지해莫存知解
무해공기無解空器 대도충만大道充滿
\"이 문안에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갖지 말라,
알음알이가 없는 빈그릇에 큰도가 충만하리라\"라는 뜻입니다.

불가에서 알음알이를 경계하는 것은
그것이 시비분별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알음알이에 빠진 자는 석가세존의 말씀에도 시비와 분별을 내니,
세존께서 다시 이 세상에 나오셔도 제도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바른 수행을 위해서는 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바른 이해가 많은 지식을 뜻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둘을 알고 하나를 행하는 자보다는
하나를 알더라도 둘을 행하는 자가 더욱 수승殊勝합니다.
이는 불교가 철학이기 이전에 종교이며, 종교의 핵심은 바로 실천에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 대해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더라도
그 사람에게 지혜와 자비의 실천이 없다면 그는 불법을 훼손하는 것이요,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지혜와 자비가 충만하다면 그는 불법을 수호하는 것입니다.

불법이 불교라는 테두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안으로 찾는 순간 기독교는 기독불교, 천주교는 천주불교가 되는 것입니다.
천탑千塔과 만불萬佛을 세우고 스스로 불자임을 자처하여도
그에게 지혜와 자비의 실천이 없다면 그는 불법을 훼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수행의 깊이는 세상과의 갈등에 반비례합니다.
불교가 타종교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자기 안에서 진리를 찾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하여 여타의 종교는
주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지만,
불교는 끊임없는 수행을 통한 주인공, 즉 참나의 발견을 강조합니다.

불법의 요체는 무아無我의 도리를 증득하여,
나와 남의 벽을 허무는 것에 있습니다.
요컨대 수행이란 나라는 고집을 없애고,
나와 남의 벽을 허물어 세상과의 갈등을 줄이는 부단한 작업인 것입니다.

흔히 세속사람들은
\'남을 높이면 내가 낮아지고,
남을 낮추면 내가 높아진다\'는 전도몽상顚倒夢想에 빠져 있습니다.
나와 남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된 수행자라면
\'남을 높이는 것이 나를 높이는 길이요,
남을 낮추는 것이 나를 낮추는 길이다\'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수행을 하면서도
타인과의 다툼과 불화가 잦아진다면,
그 수행은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방증傍證이 되는 것입니다.


강원생활 이제 3개월여.
‘나에게 지혜의 냉철함과 자비의 따뜻함은 증장增長되고 있는가.
나의 모난 부분이 탁마되어 도반들과의 갈등은 줄어들고 있는가.’
저는 항상 저 자신을 점검하려 노력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점검이 없는 수행은 제대로 된 수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저는 스스로에게 되뇝니다.
What am I, 나는 무엇인가.
Where am I. 나는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