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오토바이 별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사랑할 땐, 별이 되어 - 정인경┃철학박사 2011년 07월 353호

“행복한 작은 파랑새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간다면, 왜...왜 나라고 날아갈 수 없을까?\"
(Over The Rainbow)

이십대 때부터 운전을 한 내 친구는 운전을 할 때, 교통경찰만이 무섭고, 아무것도 겁나는 게 없단다. 삼십이 넘어서 운전을 한 나는 아직도 교통경찰만 빼고 여전히 다 조마조마하다. 깜빡이를 키면 폭발하는 차를 모는지 무작정 끼어드는 차에는 간이 썰렁하다. 인간의 발이 차보다 강하고 빠르다고 생각하는지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에 심장이 쪼그라든다. 큰 등치를 들이대며 가로 본능을 행하는 버스의 행패에는 치가 떨린다. 하지만 제일 무서운 것은 배달 또는 택배 오토바이이다. 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곡예운전을 하면서 휑하니 내빼는 오토바이의 꽁무니를 바라보면 사람 목숨이 하나가 아니지 싶다. 더구나 예전에 차와 오토바이가 부딪쳤을 때의 처참한 장면을 본 적이 있어서 오토바이에게서는 길을 내주고, 심지어 오토바이의 주행을 고려해서 차선까지 바꿔가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서 운전을 한다. 그래서 나는 보행자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며칠 전 도저히 화해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오토바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때 이른 폭염에 한여름에나 볼 수 있는 아스팔트의 아지랑이는 거리가 무너질 듯이 흔들려 보이게 했다. 그런 날 나는 2시간도 넘게 운전을 해 오후 6시쯤, 집이 있는 서울에 들어 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유로운 시간에서 나는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만나는 첫 신호등에 차를 세웠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Over The Rainbow\"의 노래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낮의 정념도 사그라진 이른 저녁, 잃어버린 꿈과 희망에 관한 노래는 마음을 이순하게 만들었다. 나는 볼륨을 올렸다. 저녁노을이 내가 사는 도시를 물들이듯이, 아름다운 노래가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셨으면 했다.

한참 노래에 빠져 있는데 택배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차 옆에 섰다. 통상 오토바이는 정지선 쪽으로 비집고 나가, 전투 대열의 선발대처럼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신호가 바뀌자마자 쏜살같이 나가지 않는가. ‘뭐야?’ 싶었다. 오토바이에서 떨어지려고 앞쪽으로 차를 움직였다. 그러자 오토바이 역시 나를 따라 나오더니 아까보다도 더 바짝 옆으로 붙었다. ‘저게 돌았나.’했다. 아니게 아니라 그 폭염에 헬멧을 쓰고,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장갑까지 끼고 있으니 안 미친 것이 더 이상하다 싶었다. 다시 앞차에 바짝 붙여 세웠다. 그런데 이 미친 오토바이가 다시 내 옆에 서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화가 났다. 오후의 느긋한 여유를 그 오토바이가 깨뜨린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로 채우려는 내 마음을 다치게 한 것이다. 오토바이를 무시하고 나에게 집중하려고 볼륨을 더 높였다. 그래도 나는 화가 가라앉지 않아서 노래를 듣는 둥 마는 둥하다가 어느덧 노래는 끝났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자마자 오토바이는 노래를 잘 들었다는 듯이 내 차에서 떨어져, 앞 쪽으로 쭉 나가 다른 오토바이들 틈에 섰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오토바이의 택배 아저씨는 나와 함께 “Over The Rainbow\"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노래를 혼자서가 아니라, 내 가족, 내 친구, 내가 아는 사람,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의 사람들과 같이 듣고 싶었다. 우리가 모진 하루를 견디고 이겨낸 것을 서로 어울려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와 함께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오토바이를 탄 그가 왔다. 오토바이 위의 그도 “Over The Rainbow\"라는 노래를 좋아한 사람이었다. 초대에 응한 손님에게 두 번이나 야박하게 굴었어도 괜찮다고 두 번이나 해 주었을 정도 나보다도 노래를 더 좋아했다. 오토바이를 탄 그는 나보다도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내가 괜한 짜증을 내어 노래를 흘려들었을 때, 그는 땀으로 완전히 젖은 헬멧 안에서 귀에 마음을 집중해서 노래를 붙잡았다. 무엇이든 절실하게 필요한 자가 갖게 마련이다. 내 차에서 흐른 “Over The Rainbow”는 정작 그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크게 튼 노래가 그의 귀를 잡았듯이 그의 뒷모습은 내 눈을 붙잡았다. 그의 뒷모습은 내 선입견을 깼다. 무지막지한 택배 오토바이가 동화와도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 경이였다. 그의 뒷모습이 노래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그와 나 사이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낭만적인 기분이 끼어들었다. 나는 뜻하지 않게 그를 위로해 주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졌다. 그 또한 시끄럽고 번잡한 도로에서나마 꿈과도 같은 노래를 들은 것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 때 그의 등은 왜 그가 내가 튼 “Over The Rainbow”에 응하게 되었는지를, 왜 그가 나처럼 그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어린 시절 그와 나는 슬픔이 밀려들 때나 위로가 필요할 때,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검은 하늘에 하얗게 피어난 별들 중에서 유독 밝은 주황색으로 빛나던 별자리를 찾았다. 여름 한밤, 장맛비 때문에 보기 힘들었던 고귀한 별을 찾아내었다. 그러면 먼 하늘 깊은 곳의 별은 다정한 소리가 되어 우리가 얼마나 작고 시시한 일로 속상해 하는지를 반짝반짝 속삭여주었다. 우리 앞에 놓인 기나긴 인생에서 언제나 함께해 줄 ‘나’의 별을 우리는 그 때 같이 갖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별로 이어진 인연이었다. 나는 무지개 너머 영원한 행복의 나라를 빌었던 소녀처럼 ‘나’의 별에 다다르고 싶은 심정으로 “Over The Rainbow”를 준비했고, 그는 나를 찾아와 어린 날의 희망이 담긴 그 노래를 같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장년의 그가 얼마나 “Over The Rainbow” 노랫말처럼 살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세상에 탄생한 노래에는 삶의 향기를 주는 진정한 주인들이 있는데, 오토바이 위의 그는 “Over The Rainbow”의 진정한 주인들 중의 한 명이었다.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그의 등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밥을 걱정하는 변변하지 못한 남자라고 이야기 했다. 간혹 농담 삼아 로또복권을 사지만, 그는 세상의 사람들이 부당하게라도 한번쯤은 가지고 싶어 하는 부는 꿈꾸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는 비록 정당하지 못하게 가난해도 부당하게 벗어나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주변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도 주변머리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밥을 걱정하는, 밥 한 공기에 담긴 삶의 크기를 아는 착한 남편이라고 했다.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등은 그가 어린 시절 자장가에서 들었던 나라가 어디엔가 있는 꿈을 매일 밤 꾼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가 감히 꿈꾸었던 일들이 이루어지는 그곳에서 잠을 깨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는 차마 가질 수 없는 꿈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꿈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속으로 모험을 떠나려는 어린 자식들에게 젊은 날의 꿈을 나누어 주기 위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위대한 아버지라고 했다.
높은 굴뚝처럼 강인한 그의 등은 그가 매일 매일 오토바이 위에서 흘리는 땀과 삼키는 눈물이 쓰디쓴 걱정을 달콤한 레몬방울처럼 녹아내리게 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승리나 정복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파랑새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 것 자체가 행복이듯, 그의 행복은 꿈을 넘어 사는 것 자체였다. 그의 반듯한 등은 그에게서 삶이 역작이 되어가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답례로 알려준 무지개 너머 행복에 이르는 비밀이었다.

나는 안다. 그렇게 그를 만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래도 가슴 속에서 한낮의 햇빛과도 같은 빛깔의 별이 반짝일 때마다, 함께 별을 보았던 소년이 그립다. 같이 노래를 들었던 ‘오토바이’ 남자가 보고 싶다. 그 이후 나는 거리의 오토바이들이 모두 그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오토바이가 무섭지 않다. 아니 사랑하게 되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오토바이 별.”


----------------------------------------------------------------
정인경 님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과정과 독일 베를린 홈볼트 대학교에서 고대서양 철학박사 과정을 마쳤다. 귀국 후 수원대, 대전대, 숭실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 에세이 <여우 아이>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