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에 들면 어떤 기운이 좋은지? 그리고 해인사에서 느끼고 얻을 수 있는 예술적 영감이 있다면?
“여러 문화인들이 그렇듯 저도 가야산에 접어들면서부터 맑아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가야산의 산세는 제가 그리는 산수화부분과 일치되고 사찰의 오랜 역사가 제 작품의 훌륭한 원동력이 되죠. 아침잠을 깨우는 부드러운 새소리와 여름 숲을 보고 있으면 이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일어납니다. 또 한 가지는 산처럼 바위처럼 늘 그 자리에 계시면서 우리자매를 품어 주시는 도영스님요.”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멋진 풍광을 만나도 나로서는 아! 시인이었으면 좋겠다. 화가였으면 좋겠다...라는 마음뿐이지만 화가인 그이는 작품으로 이야기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자분자분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도영스님이 우려내시는 찻잔 속에는 스님의 넉넉한 마음이 가득 담긴다.
-단편적일 수도 있겠지만 오순이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서 다정하고 따듯한 느낌이었어요. 백지 앞에 서면 어떤 마음인가요?
“거의 같은 마음이에요. 한 점 한 점, 또는 한 획 한 획, 그어 나가는 것이 저의 예술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니까요. 작품대상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시작에서 완성이 될 때까지 제대로 그려내야지 하는 첫 마음 그대로에요.”
화선지 앞에 서면 언제나 치열해진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림은 안락의자이거나 바늘방석이라더니 우리는 오순이 선생의 작품을 통해서 안락의자에 앉은 것처럼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을까? 아니면 철퍼덕 주저앉았다 화들짝 놀라서 일어서는 바늘방석처럼 나태해진 일상을 깨우는 각성의 효과를 얻을까?
그녀,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오순이 선생은 단국대학교 동양화과 교수이며 화가다. 경남 마산이 고향인 그이는 세 살 때 집 앞 철길에서 놀다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그래서 그녀는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이며 장애인이라 불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장애를 겪지 않은 인생이란 없는 것 아닌가? 다만 장애를 몸에 지니고 있는지 마음에 품고 있는지의 차이와 이를 극복했는지의 여부가 있을 것이다.
-장애인으로 대학교수직까지 이르는 동안 걸림돌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했는지요?
“아주 어렸을 적 사고를 당해서 그런지 팔이 있었던 기억이 없어요. 성장하면서 다르다는 것을 알았는데 다섯 살 무렵부터 모든 것을 발로 배우고 익혔죠. 글씨를 쓰면 삐뚤빼뚤해지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동양화 그리는 붓은 너무 부드러워서 힘이 없거든요. 발로 중심을 잡고 화선지에 물이 번지는 것을 조절해야하니 그저 연습했던 기억뿐이에요. 그 기나긴 세월동안 연습과 가족들의 보살핌과 사랑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거지요.”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는 그이의 말은 장애를 가진 작디작은 여자의 존재감을 대단하게 만들었다. 발로 숟가락을 쥐고 밥을 먹고, 발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워 글을 쓰고, 발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익숙해지기까지 얼굴에 묻은 밥은 얼마나 될 것이며, 연습종이는 또 얼마나 쌓여갔을까? 추사를 만든 것은 닳아버린 붓 천 자루와 구멍 난 벼루 열 개라더니 화가 오순이가 내뿜는 온화한 기운속의 강인함은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이겨낸 인고의 나날들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 같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마산 중앙초등학교 4학년 때 미술교사였던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한 그림은 그이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지금은 살아갈 이유다.
“제게 그림은 항상 같이 따라다니는 동반자에요. 남들은 제 삶을 특별하게 보지만 저는 평범하다 생각합니다. 다만 삶의 방식이 보통사람과 조금 다를 뿐이죠. 그래서 몸이 좀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저로 인하여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조금이라도 엷어지고, 제 그림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이 치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것들이 제가 나눌 수 있는 작은 일이죠.”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전국규모의 미술대회에서 입상을 거듭하고 단국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한 그이는 한 학기도 쉬지 않고 수석졸업까지 해냈다. 그리고는 또 수묵화의 본 고장 중국 항저우에 있는 중국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유학 11년 만에 받은 학위다. 우리를 가슴 뭉클하게 하는 휴먼스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학위 받고 유학을 끝내자마자 우리나라 구족화가로는 처음으로 모교인 단국대학교 초빙교수가 된 오순이 선생은 곧 전임교수로 임용되었다.
-좋은 작가, 좋은 선생의 조건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지?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겠지요. 예술세계에서 어떤 기준을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끊임없이 추구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지요. 제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배운 만큼 나누는 일이고 아는 만큼 함께 하는 건데요. 좋아하는 일을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연구하고 공유한다는 것은 축복이고 제겐 큰 기쁨이자 보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무언가 나눌 수 있다는 자체가 특권이고 기쁨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그이에게서 생의 유연함이 전해진다.
-부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 본적이 있는지요?
“때로 몸이 힘들 때가 있지요. 마음이 나약해질 때도 있구요. 제대로 살아왔다 싶었는데도 지나고 나면 부족하고 걸리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때마다 참회기도를 하면서 발원도 하지요.”
-불교가 작품이나 삶에 영향을 끼친 적이 있나요?
“삶에 대해 말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구요. 작품에 있어서는 어떤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아도 수묵담채화를 통해 선적인 느낌이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소나무는 묵묵히 수행하는 스님들의 수행하는 모습과 닮지 않았나요?”
장애인이라는 차별도 주목도 받고 싶지 않아
해인사를 참배하고 돌아가는 짧은 여행이 긴 여운으로 일상을 맑혀준다는 그이는 장애로 인한 차별도 주목도 받고 싶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도덕 교과서에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소개되었고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을 수상했다. 교수가 될 때도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고 여전히 인터뷰요청이 있지만 그 때마다 그녀는 말한다.
“제가 장애가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에요. 그 얘기보다는 제가 후배들을 가르치는 행복과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화가라는 사실이 더 신선할 것 같은데요‘”라고. 인터뷰를 끝내고 그이와 함께 용탑선원 앞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계곡의 청정한 서늘함이 마음을 씻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