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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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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향기 - 경성┃ 희랑대 감원·중앙승가대 2011년 07월 353호

부처님의 몸은 법계에 충만하시다, 우리가 불교적인 관심을 기울일 때에 언제 어디에나 부처님의 가르침, 불법佛法이 활발발活潑潑하게 존재하며 펼쳐질 것이며, 바로 그것으로 부처님이 법계에 가득하게 존재하고 계시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으로, 부처님을 그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견문見聞하고 부처님을 수순隨順하는 행동을 실수實修, 실천하며 수행하고 있는지에 부처님의 몸이 나타나고, 나타난 부처님을 친견親見할 수 있는지가 가늠되는 것이다.
절에 있거나 법당에 앉아서 법회에 참석하고 있더라도 잡다雜多한 생각만이 머리에 맴돈다면 수미단須彌壇에 정좌正坐하신 부처님과 대면對面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불가피한 상황으로 절에 오지 못하고 법회에 동참하지 못하였더라도, 법당을 머릿속에 그리며 보리좌菩提座에 오르신 부처님을 간절히 생각하면서 염불하고 기도한다면 바로 자신이 머물고 있는 그 자리가 사찰이며 법당이며 염불당念佛堂이며 깨달음을 성취한 바로 그 장소인 도량道場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기도와 염불의 참된 실천이다. 머리와 마음으로 그리고 생각하면서 입으로 외우고 몸으로 합장하고 예배하는 것이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통틀어서 올리는 기도며 염불이다. 마음이나 머리와 입과 몸을 동시에 실행한다는 것은 신심身心의 각 부분으로 퍼져서 존재하는 모든 세포가 일향一向으로 기도하며 염불하는 것으로 간절하고 지극하다는 것과 상통相通된다.
부처가 옆에 있더라도 재물이나 명예나 이득만을 생각한다면 영원히 부처를 볼 수 없다. 천千분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단 한 분의 부처님도 볼 수 없으며,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구제된다는 것을 기약할 수 없고 만다. 부처의 옆에 있거나, 혹은 부처님과의 거리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가늠할 수 없는 머나먼 곳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과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이미 법계에 충분히 가득 차게 자리를 잡고 나타나 있는 불신佛身을 친견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달려 있는 것이다.
매순간 순간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염불念佛하며 수순하는 사람이라면 마침내 모든 생명과 모든 존재가 부처의 현현顯現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목격하게 된다. 마음을 강조하여, 마음이 곧 부처며, 부처가 곧 마음이며, 마음이 곧 중생이며, 중생이 곧 마음이어서 결국에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다는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 《화엄경華嚴經》의 설명도 이것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이 부처라는 것을 깨달아서 부처님이 법계에 충만하시다는 의미를 확연히 인식하게 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을 최측근最側近에서 친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매일 매일 부처와 함께 잠에 들고, 깨어나고, 생활한다고 깨달음의 경지境地를 표현한 게송偈頌 역시 모든 존재와 생명이 부처여서 온천지에 불신에 가득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마하승지율摩訶僧祗律〉에는 부처님을 친견하고자 두 명의 수행자가 도반道伴으로 의지하며 순례의 길에 나선 이야기가 실려 있다. 먼 길을 가는 도중에 몹시 갈증이 나게 된 수행자들은 가까스로 우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물 속에는 많은 벌레들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벌레들이 다치고 상傷하게 될 것을 걱정하면서 물을 마시지 못하였고 그리하여 결국에는 죽고 말았으며, 다른 한 사람은 물을 마시고 무사히 살아나서 부처님을 뵙고 예배드렸다. 예배를 받으신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사정을 모두 아시면서도 짐짓 어떻게 도반도 없이 홀로 먼 길을 왔느냐고 물으셨고, 이에 대답하여 이러저러한 경위經緯와 함께 물을 마시지 않은 도반은 갈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지만 자신은 물을 마시고 기력을 되찾아 이렇게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었노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꾸짖으시면서 네가 여래如來를 보았다고 하지만 보지 못한 것이며, 죽은 사람은 이미 여래를 본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부처님과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을 부처로 섬기는 마음이 없다면 부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어서 설령 부처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부처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며, 부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을 부처로 보고 섬기는 마음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를 친근히 하는 것이어서 여래가 항상 그를 보고 그러한 사람도 역시 부처님을 항상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불신佛身, 부처님의 몸은 그처럼 온 세상과 모든 천지에 가득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모든 생명과 모든 존재가 여여如如하게 부처라는 깨닫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탓에 충만充滿되어 있는 불신을 바라보지 못할 뿐인 것이다.
미천微賤한 복력福力과 소작所作의 선근善根이 미미微微한 탓에 부처님 가신 지 이미 오래인 아득한 말세末世의 끄트머리에 태어나 제除하기 힘든 숙업宿業으로 고해苦海에 허덕이지만 부처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속으로 새겨서 명심하고 부처님의 행동에 수순하고자 하는 간절한 일념一念으로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들에게 한량없는 자비慈悲로 이익을 주기 위해 실천하고 수행한다면 항상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며, 부처님도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어서 불신이 법계에 충만하시다는 불신충만어법계의 경구警句를 몸소 실천하고 증명할 수 있으리라 다짐하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