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사는 높이 솟은 황금빛 탑과 절 마당의 꽃들이 어우러져 마치 남방의 사원에 들어선 듯하다. 성오스님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절 마당에 서서 법당 외부 보수 공사를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마치 남방의 한 수행자가 저물어가는 오후를 조용히 바라보는 것처럼.
스님은 근 십년의 세월을 외국에서 보냈다.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내소사, 통도사, 송광사 등지의 선방에서 간화선 수행을 하며 노스님 시봉을 10년 하고 나서, 두 번째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역 경전만 공부하다보니 누군가 초기 불교에 대해 물으면 대답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불교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유학을 마음먹고 있을 때 마침 남방불교를 공부해보라는 권유가 있었다.
“88년도에 스리랑카에 가서 보니 지금까지 내가 알던 불교는 대승불교였고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면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에 비해 초기불교는 부처님 말씀이 인간적이면서도 체계적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좋게 다가왔어요.”
강원을 졸업하고 선방에 다닐 때만 해도 성오스님은 부처님이 돈오견성법으로 깨달은 줄 알았다. 남방에 가서야 부처님이 위빠사나 수행으로 깨달으셨다는 것을 알았고 스님은 스리랑카에서 다시 인도로 가서 푸나 대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마침 지도교수님이 위빠사나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이론적으로만 공부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공부,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수행도량인 고행카센터에서 수행을 하다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얀마로 가서 위파사나 수행을 본격적으로 했다.
“위빠사나 수행을 잘 할 수 있었던 저변적인 힘은 아마도 어려서 했던 간화선 수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크게 보면 수행이 간화선, 위빠사나, 티벳불교 세 개인데, 대승불교에서 내려오는 간화선과 남방불교에서 이어오는 위빠사나를 접해본 스님은 언젠가는 티벳불교도 접해보고 싶은 마음이란다.
스님은 2003년도엔 미국 뉴저지에 원적사를 개원했다. 그곳에서 스님은 5년간 주지로 머물다가 은사 스님이 홍원사를 개원하게 되면서 한국에 돌아왔다. 그래서 원적사에는 현재 스님의 제자가 머물고 있고 스님은 일 년에 한두 번 나가서 수행 지도를 한다. 그리고 미얀마 수행 중에 만난 스님과의 인연으로 부산의 백련사도 맡고 있다. 그곳은 위빠사나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수행 도량이다. 서울과 부산에도 절이 있고 지구 반대편에도 절이 있으니 동부서주하실 것만 같은데 스님은 되레 야젓하시다.
성오스님은 세 개의 사찰에서 단지 초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고 후에 주지를 할 능력을 갖춘 스님에게 맡길 생각이란다. 그리고 스님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위빠사나 수도원에 머물 생각이다.
“미얀마에서 수행을 마치고 오니 큰 스님이 ‘자네가 숲 속에서 은자로 살기를 원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귀국해서 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의 신세를 진 거예요. 사람들이 위빠사나 수행을 가르쳐 달라고 성화를 하니 혼돈이 왔어요. 수도원을 만들어 법을 펴야겠구나 싶고, 미약하나마 누군가는 위빠사나 수행도량을 만들어야겠구나 싶어서 내가 그 일을 감당하기로 했어요.”
수도원 이름은 ‘보리동산 SMC\'라고 지었다. 산티스콰 메디테이션 센터,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수행 센터라는 뜻이다. 주로 스님들이 살고 철에 따라서는 재가불자들도 수행할 수 있는 공간, 내국인만이 아니라 외국인도 와서 같이 공부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도량으로 만들 생각이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며 빨리어 초기 경전도 같이 공부하고 남방의 교수들도 초빙할 것이란다.
“원전에 바탕을 둔 부처님의 원형적인 수행법을 한국에 뿌리내리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부처님의 위빠사나 수행법은 점진적이에요. 마치 바다에 들어갈 때 해변으로부터 깊은 수면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처럼 점점 법의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간화선은 직지인신 견성성불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다. 그러니 점차적인 것이 아니라 순간적이다. 그러나 성오스님은 점수가 없이는 돈오가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과법에도 맞지 않으니 설득력이 없단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깨달음이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오겠지 하는 기다림 자체가 헛된 마음이기에 수행자의 바른 모습이 아니지요.”
성오스님은 미얀마 큰 스님들이 주신 경책어 가운데 ‘방일은 우리를 죽음의 문으로 안내하고 자각은 우리를 열반의 문으로 인도한다’는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의 깨어있는 삶을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오로지 성실히 갈 뿐이다.
위빠사나 수행법은 젊은 지성인들에게 호소력이 있고 반응이 좋단다. 스님은 홍원사에서만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는 게 아니라 천안의 호두마을의 지도 법사로 있으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단다.
간화선은 마음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화두라는 명제를 통해서 화두가 타파될 때에 우리의 본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위빠사나는 내 몸과 마음을 직접 대상으로 삼아서 추구한다. 그러니 위빠사나는 직접적이고 간화선은 간접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수행을 하면서 수행이 잘 되나 안 되나를 본인 스스로가 알지만 간화선 수행자들은 미로에 빠져 방황하곤 한단다. 서양인들도 처음엔 간화선에 매력을 느끼지만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찾는 공부인 위빠사나 수행법을 하게 된단다.
사실 ‘수행’이라는 말 자체가 꾀나 형이상학적이어서 스님이 아닌 일반인들은 다가갈 수 없는 특별한 범주의 것으로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간화선 수행은 화두를 들고 있으니 그것이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은 내 몸과 마음을 통한 수행이기에 보편적이고 현실적이다.
“수행이란, 빨리어로 ‘바와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와나’는 ‘…가 되게 하다’라는 추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닦아나가는 길이 수행의 길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불교란 탐진치 삼독을 끊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시와 자비와 지혜를 닦는 종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했을 때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종교일 수 있다는 말씀이다.
“살아가는 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인데 탐진치 삼독이 끊어집니까? 안 되는 걸 하라고 하고, 그래서 못 끊으면 수행이 부족한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게 만들지요.”
끊는 것보다 실천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탐심을 끊으려하기보다 보시하는 마음을 더 내도록 하고 성내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으니 자비와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더 갖게 되면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은 점점 작아질 것이란 말씀이다. 이러할 때에 불교가 더욱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종교가 될 것이란다.
“파도가 밀려 왔을 때 타고 나갈 수 있는 배를 마련하는 것처럼 탄진치 삼독이라는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에요. 그러니 수행을 통해 보시와 봉사와 자비와 지혜로써 무장된 배를 사바세계에 띄워놓아야지요.”
스님은 늘 신도들에게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자비희사慈悲喜捨 네 가지의 무량심으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신다. 자무량심은 어머니가 외아들을 사랑하듯 중생을 사랑하는 것, 비무량심은 근심과 번뇌로 괴로워하는 중생을 연민하고 동정하는 것, 희무량심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것, 사무량심은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을 말한다.
“혼탁하고 어두운 사바세계에서 살더라도 사무량심을 실천하고 살면 범천의 삶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스님이 마당의 나무들을 둘러보신다. 스님과 얘기하는 내내 들려오던 새소리가 그 나무 위에 올라앉은 새들이었나. 잘 가꾸어 놓은 마음에 행복이 찾아들듯 잘 가꾸어 놓은 정원에 새와 나비가 날아드는 법이다. 그러니 홍원사 보살님들은 앵두나무 앞에 모여 하얗게 웃으며 빨갛게 익은 앵두를 수확한다. 이것이 범천의 삶이 아닐 것인가. 스님이 풀밭에 걸터앉아 슬몃 웃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