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해인사 사찰 그 자체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한없이 순진하기만 하다.
꾸밈없이 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며 벗겨지고 금 가더라도
어느 하나 숨기지 않고, 위풍당당이 서있는 사찰은 참으로 아름답다.
수천 년 동안의 세월 속에 자라난 그 안의 마음과 경건함은 보는 이에게 하나의 생명으로서 태동하여 다가온다.
두 번째 세계는 오늘도 수행 중이신 스님들의 세계이다. 가끔씩 사찰 안에 들려오는 스님의 목탁소리는 천지를 흔들고 속세를 몰아내는 하나의 신령이 되어 나의 속된 정신을 몰아내고 참 된 진리를 채우고 간다. 특별한 날 들을 수 있는 북소리는 하나의 정적인 방향으로 다가와 윤해의 속박을 부수어 하나의 정신적 득도, 필멸적 성취를 이루게 한다. 스님의 행동과 표정은 정적이지만 북소리와 열정과 마음은 세상을 뒤흔들고 우리로 하여금 속세의 방향과 정신적 쾌감을 느끼게 한다.
세 번째 세계는 중생들의 세속된 세계이다. 사찰에 조금만 나가면 마을이 보인다. 여기에 놀러온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등바등 살아가며 오늘도 돈과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일하는 현대인들을 볼 수가 있다. 이들은 마음의 안식과 정신의 참된 소리를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득과 쾌락에만 주력되어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래도 세 번째 세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나 역시 부귀영화와 쾌락에 더 관심이 가고 나만을 위해 죄지은 적 또한 있다. 이전 나에겐 이곳은 너무나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마음속 안식을 주며 이해해주는 것이 있다. 목탁소리도 아니고 스님의 기도 소리도 아니다. 이곳에는 나뿐만아니라 이곳 모든 이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한쪽 처마에 조그만 방울과 함께 달린 물고기이다. 외관상 잘 안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약간 녹까지 슬고 별 볼일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억세지도 못하고 바람에 휘날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결코 나약하거나 별 볼일 없지 않다. 처마 끝의 물고기는 우리가 사찰과 장경판전에 눈길이 팔려있을 때나 화장실 갈 때나 기도 드릴 때도 언제나 한쪽처마에서 은은한 소리로 우리의 마음을 달래어준다.
거센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는 아랑곳 않고 계속 바람과 싸워나간다. 산과 들로 둘러싸인 이 사찰에 홀로 남아서 허전한 처마 끝을 보기 좋게 메워 법당과 조화를 이루는 것도 물고기이다.
우리가 사는 속세도 이와 같다. 사람들은 언제나 신문과 tv에 나온 사람들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우리주변에는 처마 끝 물고기와 같이 tv와 신문에 나오진 않아도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도우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고기의 은은한 소리처럼 한쪽에서 은은히 봉사하며 이 세상을 조화롭게 하는 사람들, 댓가도 명예도 없지만 미소 짓는 이 웃음을 위해 오늘도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커다란 사찰과 장경판전 보다는 오늘도 한쪽에서 해인사를 채워주는 은은히 헤엄치는 처마 끝 물고기에게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