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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지키며 닦고 길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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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석선혜 1988년 02월 72호
지난 정묘년 한해는 호헌 강행, 박 종철 이 한열의 죽음과 6월 민주항쟁, 6.29선언, 설전(舌戰) 금전(金戰)으로 맞선 선거전으로 내내 이어지는 가운데 온 나라가 마치 불땐 가마솥 안 열기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던 한해였다.
특히 앞으로 5년 동안 정부를 맡게 될 대통령을 뽑는 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어느 때의 선거보다도 치열하고 혼란스러웠으며 예측하기 어려웠다. 또 지역별로, 종교별로, 이익 따라 전국이 남북 동서로 나뉜 형국은 삼국시대를 방불케 하였다.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며 시위를 하고, 시민들이 그 시위에 가세를 하고, 노동자들은 연쇄 파업을 하여 마비 상태에 이르고 대학 교수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종교의 성직자들까지 단식 투쟁을 하고, 유세장은 인파의 홍수를 이루는 등, 소란하고 혼돈스러운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합법적인 민주적 방법에 의하여 200만표 차이로 한 후보가 당선되어 그 모든 것이 일단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12월 달력 한장마저도 거두어지고 해가 바뀌었다.

버릴 것과 지켜야 할 것
사람들 사이에는 이제는 모두 끝났다. 그러하니 묵은 감정들을 훨훨 털어버리고 30%건 40%건간에 우리가 뽑아서 새롭게 대권을 이양받을 일꾼이니 믿고 밀어주자는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또 올 시월에 있을 인류 평화의 대제전-일부에서는 올림픽을 거부하는 의견도 있으나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을 멋지게 치루어내어 우리의 저력을 과시하고 우리의 문화와 상품들을 널리 소개하여 수출을 많이 하여서 빚도 갚고 살림도 윤택하게 해보자고들 한다. 좋은 의견들이다. 그렇게 되어야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이 어려운 고비를 무난하게 넘기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지난 해의 일과 요즘 오고가는 이야기들을 거론하는 것은, 다만 한번 상기해 보고 말자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일이라고 하여 망각 속에 묻어 버리지 말고 모두가 민중의 파수꾼이 되어 지키고 관찰하여 새겨 보자는 뜻에서이다. 당선자가 선거 전의 공약대로 실천하는가! 고급 공무원이 지나치게 공권을 남용하는 일은 없는가! 까닭없이 민폐를 끼치는 일은 없는가! 등등의 일을 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활짝 열어 놓고 묵묵히 지켜보다가 잘하는 일에는 찬사와 박수를 보내 주고 잘못하는 일에는 강력한 질타와 함께 시정을 요구할 권리가 우리 민중에게 있음을 알자는 것이다.
맹자의 경제 철학에 “민중을 하늘처럼 받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민중의 뜻은 곧 하늘임을 뜻한다.
옛날 당나라 태종이 왕세자를 데리고 어느 항구에서 군선들의 사열을 받게 되었다. 태종이 말했다. ‘태자야, 저 바다 위의 수많은 군선들의 위세가 굉장하지 않으냐?” “예! 대단합니다.” 왕세자가 대답하자 태종은 다시 “저 군선들의 위세는 황제의 권력과 같고 바닷물은 백성의 힘과 같으니라”고 하여 교훈을 준 고사가 있다. 군주 시대의 황제의 위세가 제 아무리 당당할지라도 백성의 힘인 바닷물의 순리를 저버리면 침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또 민주주의 사회에 비추어 본다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표가 모여서 대통령이 선출되고 국민들의 세금이 나라의 힘이 되니, 군선의 위세와 바닷물의 햄은 바로 국민의 것으로서 국민이 선주가 되고, 대통령은 선장, 고급 공무원들은 선원 같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항해를 할 때에 본래의 약속(공약)과 규칙(민주주의)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고 힐책할 수 있으며 도중에 하선도 시킬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카터 대통령 시절에 미국을 방문하여 택시를 타고 가면서 운전기사에게 카터 대통령이 나라 살림을 잘 이끌어가냐고 물으니 카터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 까닭은 선거 공약대로 실천하지 않아서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선거 후 1,2년쯤 지나서 “대통령이 공약대로 하고 있읍니까?” 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공약 내용을 거의 잊어버렸기가 십상이며, 또 선거 때 내세운 공약이야 으례 그런 것이고 그것을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다른 만주주의 나라에서는 후보가 내세운 공약은 반드시 지킬 것으로 믿고 지지하며, 당선되어 임기를 끝낼 때까지 잊지 않고 지켜보다가 공약을 어기면 언론이나 시위를 통하여 그 책임을 물을 뿐더러 그것은 또한 다음 선거에서의 당-락을 좌우한다. 이렇듯 국민이 상과 벌을 엄중히 하면 위정자들은 그 힘을 두려워하여 그릇된 정치를 삼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민주사회를 지키는 길인 것이다.

닦고 길러야 할 것
국가에만 책임을 크게 지우고 우리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 앞에 놓인, 닦고 길러야할 일을 작은 것일지라도 소홀히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의 불교계의 행적을 돌이켜보며 앞날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지난 해 우리는 강력한 민주화에의 의지 표명으로 6.29선언의 성과를 얻어냈다. 그 역사의 대열에 일부 젊은 승려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불교는 역사 속에서 외면당하지 않고 한 몫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6월의 시위 과정에서 ‘승려는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는 전례를 남긴 사실이 뒷맛을 씁쓸하게 한다. 또 한편으로는 공개적으로나 음성적으로 꽤 많은 중견 승려들이 특정한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일도 있었다.
우리는 확실한 깨달음이 없이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긴 역사의 흐름을 거부하거나 벗어날 수 없다. 역사의 장강(長江)을 우리는 민중과 한 물줄기를 이루어 흘러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하거늘, 특정한 후보를 지지하였을 때에 그 나름의 명분과 이유가 과연 역사의 흐름에 부합한지, 또는 그 후보에게 오류가 있는줄 알면서도 자기 쪽의 사람이라 하여 아전인수격으로 지지한 것이나 아닌지 한번 따져볼 일이다. 우리는 불교의 성직자로서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른 사명을 갖고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하라고 설파한 부처님의 말씀을 빌어서 불자들을 가르쳐 왔다. 그럴진대 그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앞서의 행동이 과연 떳떳한 것인지를 묻고 싶다. 결국, 그 일로 말미암아 중견 승려들에 의한 지지대회를 반대하여 시위를 벌이던 젊은 승려들이 많은 수가 부상을 당하고 입건되었다. 시위를 강력한 요구의 한 형태라고 분석할 때에, 그것은 결과적으로 종단 행정의 일선에 있는 기성세대의 승려들이 원만한 타협을 이루지 못한 데에 기인하며, 그리하여 6월항쟁에서 어렵게 일구어 놓은 명예에 흙칠만 하는 셈이 되었다. 위-아래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영속성과 유연성이 없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지난 세월 동안 우리 불교가 인재 교육과 집단 체제의 강화에 소홀하였던 점이 지적된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 교환교수로 다녀온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퍽 인상적이다. 처음 하버드 대학에 갈 때에는 시설이나 건물이 대단한 학교를 연상하였는데, 막상 가서보니 대표적인 건물을 제외하고는 건물들이 대부분이 너무 낡아서 비가 새고 틈새가 벌어진 곳마다 수리하여 마치 누더기 같이 된 것을 보고 자못 의아했다고 한다. 뒤에 학교의 예산편성에 대해서 듣고는 그에 대해 수긍이 갔는데, 곧, 한국의 대학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일년 예산에서 가장 먼저 교수의 연구비를 충분히 책정한 뒤에 학생들의 장학금, 연구실습비, 필요한 부대시설비의 순으로 예산을 정하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건물 신축비를 책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 불교의 현실은 어떠한가 겉으로는 도재 양성, 포교 사업, 팔만대장경 번역 사업을 3대 사업으로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건물을 짓는 데에만 치중하고 그 3대 사업은 뒷전으로 멀어놓고 있지 않은가. 굳이 이유를 대자면 그럴만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이것은 지도급의 행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아무리 낡은 집이라도 그곳에 훌륭한 인물이 살게 되면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는 명예로운 건물이 되겠지만, 건물만 훌륭하고 사람은 보잘 것이 없다면 무슨 명예가 따르겠는가!
이제는 안일과 무명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의식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버릴 것은 미련없이 버리고 지킬 것은 끝까지 지키고 고칠 것은 과감하게 개조해야 할 것이다. 미래가 있는 사업 계획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능히 해낼 인재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다. 외세의 종교에 위축되지 말고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 진정으로 민중의 고뇌를 덜어줄 수 있는 터전을 닦고 키워야 할 때이다.
답답한 고뇌를 안고 찾아오는 중생들은 많고 낙향하는 젊은 승려들의 발길은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