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와 빈 마음”을 가르쳐주신 법정 스님이 생각난다. 머리로는 대강 알아듣겠는데 행하기엔 너무 어렵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일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 것이 들어설 수 없다(《버리고 떠나기》중에서)” 가슴 찡한 말씀이다. “참 지혜”로 받아들이면서도 얼핏 얼핏 행하려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언제나 “도로 아미타불”이었다. 버리고 비우면 여유로워지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사람은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뿐이라, 바람을 잡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전도서 5장 15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라는 것이리라.
생각해보면, 사람은 두 주먹 불끈 움켜쥐고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욕심과 욕망으로 마음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차고 넘쳐 버거워하면서도 그칠 줄을 모른다. 사람의 욕심과 욕망은 한도 끝도 없다. 나날이 더해지어 거식증환자처럼 쟁취하고 거머쥐어도 늘 허전하다. 아무리 채워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허기증으로 언제나 욕구불만이다. 하나를 가지면 둘이 갖고 싶고, 둘을 가지면 열, 백, 천, 만이 갖고 싶어진다. 스스로 쓸 수 있는 양은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쓰지도 못하고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무한정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욕심이다.
모으고 이루는 재미가 있기는 하다. 성취감이다. 성취감은 수고한 보람이요 희망의 원동력이다. 가슴에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의지력이 강한 사람일수록 살아가는 이유이다. 궁벽 한촌 촌부의 아들로 태어나 도시로 진학하고 사법고시라는 피 말리는 시험을 거치면서 “의지가 능력에 선행한다.”고 다그치고 자위하며 위와 앞만 보고 달렸다. 비지땀 흘리며 고산준령도 마다지 않고 오르는 산행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목표달성 그리고 승리감. 사람은 참 묘해서 이기고 빼앗고 차지하려는 동물적인 본성이 있다. 이러한 본성이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발전을 가져오기는 한다. 가득 채우거나 꼭대기에 올라서면 흐뭇하다. 그러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곱씹어보면 불안하고 때로는 허무하다.
행복이 가진 것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인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다 갖춘 온전한 정상인보다 더 행복해 하는 중증장애자는 허다하다. 가진 것 없고 초라하고 불운하게 태어난 장애자일수록 작고 사소한 것에 감격하고 감사해 한다. 아무리 큰 불행이 닥쳐도 더 큰 불운이 오지 아니함을 감사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작은 불행을 당해도 불운을 탓하며 저주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사 마음먹기이다. 행복은 남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가꾸는 것이다.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돈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전도서 5장 10절) 하기는 “아흔 아홉 섬 가진 놈이 한 섬 가진 놈보고 백 섬 채우게 마저 달라”는 것이 사람이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그랬다. 이다음 가난만 벗어나면 봉사나 기부도 하고 여유롭게 살겠다고. 그런데 그게 안 되었다. 가진 것에 비례하여 쓸 곳도 많아지고 반비례로 마음은 가난해지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나누어 줄 줄 모르는 사람은 가난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남에게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풍요롭다. 부자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무소유”를 강조하신 법정 스님은 정의하셨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산에는 꽃이 피네》중에서)” 궁핍이 무소유는 아니다.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되어야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 가진 게 많은 것이 문제는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과욕이 문제이다. 아무리 움켜쥐려 해도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 다 놓고 빈손으로 가야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전도서 1장 2절)”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그 빈 공간에 밝고 맑고 긍정적인 생각, 감사하는 마음과 연민의 정, 사랑이나 아름다운 꿈으로 채울 수가 있다.
마음을 비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비우고 버리면 홀가분하고 편안해진다. 법정 스님은 말한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無心이라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물소리 바람 소리》중에서)” 버리고 비우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밝고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탓”이나 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덕분에”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매사가 만족스럽다. 배려하는 마음과 연민의 정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 마음을 비우면 자족自足할 수가 있다. 행복은 만족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잣대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주관적인 잣대로 재는 것이다. 행복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특권이다.
유재복님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판사와 변호사를 지냈다. 현재 공증인가대전합동법률사무소 구성원변호사로 있다. 저서로는 수필집《 늦깎이 시골판사의 세상보기》, 《더불어 행복을 찾는 지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