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성보(聖寶)들-해인사의 서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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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향기 - 시명
1988년 02월 72호
지난 호까지 해인사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금속 공예품을 중심으로 해인사의 성보를 소개하였다. 이번 호에는 해인사에 보관된, 불화(佛畵)나 탱화가 아닌, 일반의 회화(繪畫)와 글씨를 소개할까 한다.
보편적으로 사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은 인물화이다. 왜냐하면 해인사와 같은 큰 절에서는 해인사에 살았던 스님들의 초상화가 많이 있기 마련이다. 흔히 이러한 인물화를 도석인물화(道釋 人物物畵)로 일컬어 왔거니와 이 도석인물화와 함께 산수화(山水畵), 화조화(花鳥畵) 등이 동양화의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역사가 오랜 큰 절에는 조사각(祖師閣), 조사전(祖師殿)과 같은 건물이 있어서 역대 조사 스님네의 영정(影幀)을 모시거나 그 절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통도사의 자장율사를 모신 개산조당(開山祖堂)과 영각 송광사의 보조국사(普照國師)를 모신 조사전 그리고 쌍계사의 중국의 육조(六祖) 스님을 모신 조사전 들이 대표적이다.
해인사에도 조사전이 있으며, 또 옛날 선원 건물이던 선열당(禪悅堂)에는 해인사의 역대 큰 스님들의 영정을 모셔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정들은, 불교 회화가 대체로 그러하듯이, 작품은 우수하지만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설사 그 이름은 밝혀져 있다고 하더라도 화공의 이름만 가지고는 어느 때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해인사에 보관된 스님들의 영정을 체계적으로 그 연대를 찾는 일마저도 크게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만약 그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다면, 해인사의 역사적인 내력과 불교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은 물론 불교 회화사에서도 큰 성과를 얻으리라고 믿는다.
이러한 스님들의 영정말고도 해인사에는 병풍 몇틀이 있으며 이러한 병풍들은 대부분 왕실에서 해인사에 하사한 것들로서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더러는 사대부 집안의 평안을 위해 절에 시주한 것들도 있다. 그런 종류의 것처럼, 목숨 수(壽) 자와 복(福) 자와 같은 길한 뜻의 글자를 궁녀들의 손으로 한올 한올 수를 놓아서 우선 보기에도 극히 현세적(現世的)이고 기복적(祈福的)인 병풍이 있는가 하면, 부처님의 일생을 나타낸 팔상성도(八相聖道)를 묘사한 병풍과 현재 해인지에 매달 연재하고 있는 33 조사들을 그린 병풍과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 ?)의 그림이라고 전해 오는 화조(花鳥) 병풍 같은 것들도 있다.
이 가운데에는 그림을 그린 수법으로 보나 그 격으로 보나 상당한 수준에 이르는 것이 많은데도 아직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특히 33 조사를 그린 병풍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묘사된 각 조사들의 생애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 단조로운 듯한 구도와 은은한 색채가 두드러지며 대담한 생략에서 오는 소박함과 맑고 높은 그 격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할 뿐만이 아니라 민화에서 느낄 수 있는 정취를 느끼게 하는, 매우 빼어난 작품이다. 이 병풍 그림은 조선 시대에서도 가장 문화가 융성했던 영조 15년인 서기 1739년에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김 홍도가 그렸다고 전해 오는 10곡(曲) 화조병풍은, 이미 ‘87년도 해인사 달력으로 일반에게 소개된 바 있거니와, 그 미려한 색채와 능숙한 필치로 퍽 사실적으로 표현한 꽃과 새들은 조선 화조화의 수작임에 틀림없다. 이 화조화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산수 도석화(道釋畵)에 새나 짐승 따위의 그림을 곁들인 것으로 주제를 산수에 두었으되 표일한 선미(仙味)가 있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주제를 새와 꽃 따위로만 한정시킨 화조화이다.
단원은 그보다 앞 시대에 살았던 겸재(謙齋) 정선(鄭敾)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가장 뛰어난 화가이며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정신적 관조(觀照)를 통함으로써 비로소 이룩할 수 있는 관념산수(觀念山水)의 대가이다. 단원은 산수화뿐 아니라 인물, 도석(道釋), 화조, 동물 및 풍속화 등의 모든분야에서도 그와 같은 높은 경지를 보여 주는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해인사에는 수복(壽福)을 수놓은 글씨 병풍이 세틀이나 보관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조선조 선조 때에 궁녀들이 ‘수’와 ‘복’의 두 가지 글자를 가지가지 체(體)로 수를 놓아 만든 것으로, 이것은 아마도 사명대사께서 만년에 홍제암에 계실 때 사명대사의 호인 홍제존자(弘濟尊者)라는 글자를 새겨넣은 것으로 미루어 사명대사의 건강과 축수(祝壽)를 염원하는 왕의 배려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병풍은 수와 복이라는 글자를 어쩌면 그렇게도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는지 그 갖가지 형태의 글자만으로도 감탄스럽고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밖에 해인사 보물장에는 여러 점의 글씨가 보관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대체로 역대 임금의 글씨이거나 스님네의 글씨들이다.
조선 시대 14대 임금인 선조(宣祖)로부터 인조(仁祖), 정조(正祖), 헌종(憲宗), 철종(哲宗)의 어필첩(御筆帖)이 남아 있는데, 이 어필첩들은 다른 절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특히 선조와 정조의 글씨도 명필로 이름났거니와 역대 임금 가운데에서 명필로 가장 이름이 높던 숙종의 글씨도 보관되어 있으며 헌종 어필 가운데에는 길상(吉祥) 사방무일물(四方無一物)과 같은 글씨가 소장되어 있으나 그 소장된 경위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그와 함께 우남(雩南) 이 승만 초대 대통령의 글씨가 보관되어 있는데 이는 육이오 전쟁 이후 이 승만 대통령이 해인사를 방문했을 때 즉석에서 해인대도량(海印大道場)이라고 써 놓고 간 글씨이다. 또한 스님의 글씨로는 근대 선종(禪宗)의 중흥조(中興祖)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경허(鏡虛)선사의 필적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것은 해인사 선원의 조실(祖室)로 수좌들을 제접하고 사실 때 선원의 방함록(方御錄) 서문(序文)으로 쓴 글씨인데, 대체로 선사들의 글씨가 탈속한 느낌과 당당한 기상을 보여 주듯이, 이 글씨도 경허스님의 활달한 필력을 엿볼 수 있는 글씨이다.
이밖에도 해인사 보물장에는 의상대사가 해인사의 창건주 순응스님께 전했다는 무공수정(無孔水晶)이 있으며 고려 시대의 제품인 옥등잔(玉燈盞)과, 조선 시대 숙종대의 유품이라고 전하는 옥등잔과, 부처님 앞에 장엄구로 놓았을 법한 진주등(眞珠燈), 그리고 고려 숙종 때의 태양시계의 일종인 일영의(日影儀)와, 조선 선조 임금이 사명대사에게 하사한 봉황촛대와, 거북이형 촛대, 고려 명종 10년 서기 1185년에 옥으로 만든 조화 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삼보인(三寶印)을 비롯한 각사인(各寺印)과 같은 중요한 사중보물들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에는 이와 같이 많은 보물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미 지난 호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현재 해인사 구광루 보물장의 상태는 지극히 불량할 뿐 아니라 좁아서 유물을 보관 전시할 새로운 공간의 확보가 시급한 과제이다.
지금까지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사중의 성보를 소개하였으나 미술사에 대한 식견이 얕아서 다소 오류가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의 넓으신 이해를 구하며 역사적인 자료는 거듭거듭 그 시대 정신에 의해서 계속 새롭게 태어나야 될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 본다.
다음 호부터는 해인사에 살다 간 선인(先人)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