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자유와 철학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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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소흥렬
1988년 02월 72호
종교와 철학은 다같이 역사 속에서 발생하며 역사와 더불어 진화해간다. 모든 종교, 모든 철학이 다 무한히 진화해가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더불어 성장해가지 못하는 철학이나 종교는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특정 종교나 특정 철학뿐만이 아니라 종교 현상 그 자체, 또는 철학이라는 학문 그 자체가 역사에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음을 뜻한다. 종교가 없었던 시대와 철학이 없었던 시대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한 미래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볼 때는 종교보다는 철학의 종말이나 철학의 무용론을 예견한 철학자들이 더 많다. 물론 철학의 종말이 가까와졌다고 할 수는 없다. 현대 문명의 위기 때문에 이 땅위에서의 인류 역사의 종말을 염려하는 것과 비교하면 철학은 적어도 그러한 역사의 종말까지는 버티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종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생각 자체가 종교적 문제라고 할 수 있으므로 종교의 필요성은 더 강조되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종교와 철학이 궁극적으로 어떤 운명에 이르게 되든 오늘의 역사에서 영향력을 갖는 특정 종교와 철학은 역사와 더불어 계속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이며, 그러한 성장에는 종교와 철학의 상호 대화가 중요한 힘이 되리라 믿는다. 무엇을 대화로 할 것인가? 대화의 소재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종교와 철학은 다같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유는 항상 새로운 구속이나 억압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그러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새로운 해방을 필요로 한다. 이 새로운 해방을 위하여 철학은 종교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종교는 철학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우리는 아래와 같은 대화로 엮어볼 수 있다.
종교적 자유는 방황하던 영혼이 안식처를 얻음으로써 체험하게 되는 자유이다. 갈등과 번뇌와 고통으로 방황하던 영혼이 새로운 삶의 길을 찾음으로써 안식의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고 신도들의 공동체에 소속되고 종교적 진리를 깨닫고자 노력하는 새로운 삶의 길을 말한다. 그것은 아무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삶의 길이 아니라 종교적 계율로 제한된 길이며 각 종교마다 특수하게 마련된 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길이다. 그 길은 정통성이라는 기준으로 엄격하게 지켜지는 길이며, 그것을 벗어날 때는 이단으로 처벌을 받거나 사교로 심판을 받게 된다.
철학의 편에서 볼 때, 어떤 종교든 사교화와 이단화를 막고 정통성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는 하겠으나 그것의 기준이 너무 엄격할 때 불필요한 구속의 원인이 됨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영혼의 안식을 주는 종교이지만 자유롭고 창조적인 자유를 억제할 때 새로운 갈등을 낳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은 영혼의 갈등과 방황을 피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철학적 자유는 어떠한 교리나 계율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말한다. 자기가 그것을 선택할 수는 있으나 강요당하지 않는 선택이어야 하며, 한번 선택한 것도 언제나 다시 검토해볼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이러한 선택을 믿음의 결단과 구별하는 뜻도 거기에는 언제나 철학적 회의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합리적 비판의 자유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철학적 자유의 특성이다.
그러나, 합리적 비판어란 어떤 것인가? 철학이 주장하는 합리성은 논리적 비판을 말한다. 그것도 형식 논리적 비판에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형식 논리는 연역 논리로 국한되며, 그것은 언어적 체험 세계 중에서도 아주 제한된 범위의 것만을 다룰 수 있는 논리이다. 따라서 그러한 논리적 비판을 절대시하계 되는 철학은 논리적 언어의 세계에 스스로를 국한시키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스스로가 선택한 합리주의의 노예가 됨을 뜻한다. 그 반면 종교적 자유는 그러한 합리주의의 구속을 벗어나는 종교적 체험의 세계로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곧, 합리성의 기준을 초월하는 종교적 자유를 말한다. 연역 논리적 기준으로는 역설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종교적 체험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진리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종교적 자유이다. 형식 논리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비약의 오류를 종교적 초월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자유이다.
하지만, 형식 논리의 제한을 초월하는 종교적 자유란 어떤 것인가? 철학의 형식 논리적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종교적 초월을 무조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철학적 비판은 형식 논리적 비판만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를 물어보는 비판도 중요시한다. 사실상 뚜렷한 내용이 없는 개념이나 명제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철학적 비판이다. 종교적 초월을 뜻하는 언어적 표현이란 대체로 명확한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다.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체험의 내용을 갖는 표현들이 아니다. 종교적 초월은 흔히 신비주의라는 연막으로 가려져 있다. 신비적 체험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의 진실성을 의심해볼 수는 있다. 실질적 내용이 없는 관념을 초월적 체험과 혼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체험적 내용이 없는 공허한 관념에 사로잡힘은 자기 기만적 행위가 될 뿐이다.
철학과 종교의 차이는 여기서도 나타난다. 철학은 끊임없이 관념적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 자체의 관념적 껍질을 벗어 버리는 일부터 철학의 주요 과제가 된다. 그러나 종교는 교리의 정통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철학에서와 같은 자체 비판을 허용할 수가 없다. 또한 종교적 정통성은 그것을 지켜가는 권위를 필요로 하지만, 철학은 어떠한 권위주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철학은 어떠한 관념도 권위주의적으로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종교의 편에서 보면, 철학이야말로 관념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본질적인 한계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종교적 신앙에는 그 종교의 교리를 믿음의 결단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적 수행이다. 그것은 종교적 수도를 위한 고행일 수도 있고 윤리적 실천일 수도 있다. 종교적 가르침이나 깨달음은 이러한 실천을 수반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철학은 무엇을 실천하는가? 밝은 관념을 비판하고 새로운 판념을 대신내세우는 것으로써 철학적 작업은 끝나지 않는가? 헌 집을 버리고 새 집을 짓는다고 하지만 언제나 관념의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철학이 아닌가?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이런 점에서 삶의 길을 열어주는 종교에 비교할 바가 못 되는 것이 아닌가? 종교는 교리적인 관념의 노예가 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실천은 그러한 관념적 구속을 무력하게 하는 해방의 힘을 준다. 서로 다른 교리를 믿는 종교인들이지만 공동의 목적을 위한 실천을 함께 할 수 있으며 그런 공동의 실천에는 교리적 차이가 전혀 문제시되지 않을 수 있다. 종교는 실천적 수행을 통하여 관념의 구속을 벗어나게 하는 자유를 준다.
그러면, 이러한 종교적 실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종교는 영혼의 안식을 위한 것이며, 영혼의 자유를 위한 것이라는 관념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종교적 수행으로서의 실천도 개인의 영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국가사회의 정치-경제적 발전 문제는 종교가 직접 관여할 바가 못 되는 것이므로 종교는 선량한 시민들을 교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사회적 질서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종교의 순수성이라는 말로 대변되기도 한다. 정치 문제나 경제 문제 같은 세속적인 문제에 종교가 관여하게 되면 그 순수성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수성을 내세우는 종교의 가면 뒤에는 정치-경제력으로 생존해야 하는 종교 교단의 세속적 권력 구조가 숨어 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세속적 조직체와도 마찬가지로, 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투쟁해야 하며 타협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권력과 타협하여 어떤 집단과 투쟁하느냐하는 것은 바로 역사적 실천의 문제가 된다. 역사속에서 발생하여 역사 속에서 성장해가는 종교이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실천을 도외시할 수도 없고 회피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종교적 순수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결국 역사로부터의 도피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순수한 영혼의 구원만으로 종교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역사를 도피하려는 환상적 자유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온갖 역사적 질곡에서 해방되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역사적 실천을 도피하려는 억지 자유가 될 뿐이다. 철학이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순수성의 환상을 두고하는 말이다.
종교의 역사적 실천은 이제 종교적 해방, 곧 종교적 자유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종교적 자유의 개념을 역사적 실천과 연관시키게 한 데에는 철학, 특히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의 영향이 컸다. 그러면, 철학 자체의 역사적 실천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는가? 종교는 본래 조직화된 공동체를 필수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역사적 실천의 힘이 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철학은 그러한 공동체를 필수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한 공동체가 없기 때문에 철학은 여전히 관념적 차원에서 역사적 실천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만일 철학이 그런 관념적 한계를 벗어나서 직접 역사적 실천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하나의 이념적 공동체를 매개로 하는 실천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것은 이념화된 또는 이데올로기화된 철학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유사 종교와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보편성과 합리성을 생명으로 하는 철학적 자유를 포기하고 철학의 비판을 받아온 종교와 비슷한 이념 체계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실천과 철학적 자유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들은 어떻게 양립될 수 있는가? 어떤 점에서 상호 제한을 하게 되는가? 이런 경우에 철학과 종교를 비교해 보는 것은 유익한 일인가? 종교가 철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역사적 실천과 이념 체계의 문제는 종교와 철학의 대화를 계속하게 하는 오늘의 문제이다. 종교적 자유와 철학적 자유가 오늘의 우리 역사에서 어떤 중요성을 갖는가를 밝혀줄 대화의 주제이며 나아가서는 우리의 종교와 우리의 철학이 역사와 더불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대화의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