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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대립과 불교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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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현기 1988년 02월 72호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는 집단의 편견과 독선이 얼마나 무서운 사회의 독소로 작용하는가를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그것이 외양으로는 지역 감정으로 첨예하게 드러났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곳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종교의 대립 현상이다. 한 나라 안에서의 지역 감정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민족이라는 동질의 감정으로 용해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종교끼리의 대립은 그 사상적 배경이나 원리가 다른 곳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해소하기는 쉽지 않을 성싶다. 그러하기에 종교 대립이 결국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전쟁의 형태로까지 발전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우리나라는 다종교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적 언행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정치 지도자의 지각없는 발언이 결국 종교간의 대립을 조장, 가속화시켰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고있는 것이 자기 종교에 대한 우월감이나 편견이다. 그러한 생각들은, 그들이 신앙을 통해 삶의 태도 또는 생활의 정신적 토대와 현실적 고통에 대한 해결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절대 영역으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스스로의 내부에서 회의나 변혁이 오지 않는 한, 자기 신앙에 대한 우월감이나 편견은 깨뜨려질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이러한 절대 영역은 또한 집단 의식으로 철저하게 무장된다. 또 이것은 외부의 어떤 침해가 있거나 아니면 자기 종교 집단에 대한 위해나 불이익이 온다고 할 때에 무서운 반발력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궁극에는 전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와 같은 다종교 국가에서는 종교나 종교 정책에 관한 발언을 신중히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망국으로 가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염원은 모두가 갖고 있는 한이요 희망이다. 그러나 분단의 상황속에서 지금과 같이 지역 감정으로 종교 감정으로 또 나뉜다면 통일은 하나의 환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남북통일을 말하기에 앞서 모든 대립 의식, 적대의식부터 청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인들이 집단의 편집(偏執)을 벗어버리고 끊임없는 대화와 화해 속에서 인류 구원과 만족 통일의 대명제 앞에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불교의 사상이나 흐름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서도 종교적 편견이나 배타성 없이 자리잡아 왔음을 알 수 있다. 한국불교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우리의 고유한 민족신앙이나 토속신앙과 무리없이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 왔다. 이것은 부처님의 사상에 근거를 둔 포용성과 관용성에 기인하는 특질이다.
역사를 통해 불교로 인한 전쟁이 없었다는 것은 불교도들이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즈음에 들어 우리나라에서 불교도들이 이교도에 대해 갖는 감정이나 대립은 유래없이 강렬하다. 이것은 불교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교도들의 배타성과 편견 그리고 서구화 정책에 대한 반발과 보호 본능이라는 외적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해방 뒤 미군정과 이 승만에 의한 기독교 정책, 산업화와 서구 문화의 유업 과정 속에서의 기독교 문화의 범람 같은 제반 조건들이 불교를 탄압하거나 소외시켰고. 기독교도들의 무분별한 선교양식이 불교도들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현실적 조건은 마침내 불교도들에게 집단 의식을 강요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대립의 감정을 갖게 만들었다.
선거 전후로 나타난 기성 불교인의 태도를 보더라도, 민정이냐 군정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냐 불교인이냐에만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것은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독교 세력의 팽창에서 오는 전통 종교로서의 흔들림에 대한 보호의식과 피해의식에서 빚어진 반발이요 대립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교도들의 반종교적 행위, 이를테면, 기독교의 전래 과정이나 최근에 있었던 사찰 방화 및 페인트 철로 불상을 훼손한 것과 같은 일에 대한 역작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빌어 모든 불교인에게 냉정한 종교 정신을 요구하고 싶다. 적어도 불교인이라면, 다른 이교도의 어떠한 행위에도 지혜의 눈, 역사의 눈으로 살펴 대처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불교인이면 옳고 이교도인이면 그르다는 식의 발상은 지극히 비불교적인 태도다. 비록 그들이 역사 속에서 사회 안에서 비종교적인 노정을 걸어왔다 할지라도 현재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긍정적이라면 우리도 긍정할 줄 알아야 하겠다.
사실 부끄러움이라면 그들보다도 우리가 더 많이 안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가 붇다의 가르침에 또는 교단에 애정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편견에 선 애정이 아니라 불교 정신의 회복과 불교 혁신에 대한 노력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불교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며, 불교를 보호하는 길이다. 그리하여, 나아가서, 남북통일에 한국불교는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 한반도에서 한국불교는 어떠한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겐 이교도들이 하지 못할 우리만이 해결해야 할 숙명적인 문제들이 있지 않은가를 살펴보고 살펴보아야 한다.

붇다의 이름으로 종교의 대립 의식을 벗어나 모든 경계를 쳐부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