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호국(護國)의 승천을 위하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리포트 - 편집실 1988년 01월 71호
허물을 벗는 고통의 신음 소리가 채 그치지 않은 승천의 전야. 우주의 티끌에 불과한 지구촌의 한 모퉁이 작은 반도의 설움을 이무기의 기나긴 몸부림에 비견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련의 역사(4321년)에 뛰어들어(2705년, 서기 372년) 1,600여년 동안 한족(韓族)과 동고동락해 온 불교. 그 앞에 언제나 수식어처럼 붙여지는 ‘호국’을 진정 재생시켜 보려한다. 퇴색한 담장을 칠하듯, 희망찬 몸놀림으로.

현실 도피적인 호국불교
‘호국’ 이라는 국가 중심의 세속적 가치가 불교라는 종교와 접목될 수 있었던 것은 불교 전래 이래로,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한국불교의 특유한 전통(?)이다.
지금은 마치 타락의 지름길인 양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호국’ 에서 느껴지는 일차적인 거부 반응은 종교가 세속과 무관해야 함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로서의 불법(佛法)이 중생구제의 서원을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인간들이 속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국가 조직과 무관할 수는 없다. 물론 정권을 쥐고있는 위정자가 교체되었다고 해서 종교인 불교가 생성하거나 사멸하는 식으로 서로 종속관계에 있을 수는 없지만, 구제의 대상이 그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기에 그러하다.
문제는 불법을 실현하기 위한 정도(正道)의 길을 어떻게 펼쳐 나아가느냐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한편에서 외치는 ‘호국불교’는 바로 이러한 전개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잘라 말해 불교는 ‘호국’을 표방하고 있지만 동시에 현실 도피적, 은둔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호국불교는 말만 거창하지 구체적인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 안주의 성격을 조장한다는 비난의 화살을 면키 어렵다.
이제는 사어(死語)가 되다시피한 호국불교의 누더기는 벗어 버리고, 종교적 이념(佛法)을 사회 속에서 실현해 나간다는 ‘호국’ 의 본디의 면모(이를 굳이 ‘호국’이라 할 것은 없지만, 새로운 탄생이란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알맞은 새 낱말을 찾지 못하였기에 그대로 사용한다)를 찾아가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전제(재정립)되어야 할 것이 ‘호국’ 의 대상과 종교적 이념이다.
대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생 곧 인간(人間)이다. 부처님 때부터 이것은 불변의 것이었다. 그러나 봉건시대에 형성된 ‘호국’ 은 그 본디의 뜻에서 변질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국가’ 라는 추상적인 실체의 의미가 강하고 왕실이라는 제한된 범주에 대한 충성과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봉건사회가 스러진 지 오래된 오늘에까지, 똑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왕실로 제한된 호국
우리나라의 불교는 호국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호국불교’ 의 전개는 상호(종교와 국가는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이념이나 목적을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엇갈리는 순간적 만남이나, 실천 과정에서의 일시적 부합이라는 수단적 성격을 전제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양자의 필요성이 두드러진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결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곧,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불교 수용기는 한결같이 부족연맹 체제에서 왕권을 강화시켜 나가는 중앙집권적인 성격의 고대 국가의 형성기였다. 국가는 불교를 공인하고 보호해 줌으로써 불교를 통해 고대 국가로서의 체제를 확립코자 하였고, 불교는 국가의 뒷받침과 국왕이나 귀족의 귀의를 얻어 처음부터 귀족불교로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승려들의 의식 구조 속에는 국가라는 것이 상징적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국가간의 전쟁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기보다는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기에 이른다. 원광이나 자장과 같은 고승들에 의해 그것은 더욱 굳어지고, 마침내 호국과 호법의 일치를 강조하게 된다. 그리하여 호국불교는 결국 신라 중심의 삼국통일의 정신적 토대를 형성하기에 이르른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훈요십조(訓要十條)를 통해 ‘我國家大業은 반드시 諸佛護衛를 힘입어야 하나니 住持를 差遺하여 焚修治業케 하라” 하여 국가 대업의성취를 불신(佛神)에 힘입으려 하였다.
호국불교의 이념이 가장 크게 일었던 고려 시대에는 승려들이 군사적이고 비군사적인 호국 활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거란, 몽고, 위(倭)와 같은 외적의 침입에 대항하는 승려들의 적극적인 군사 활동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고려사에는 이들의 군사 활약의 보기를 많이 들고 있는데 그중 하나를 보면, “고종 3년 8월 거란군이 몽고군에게 쫓기어 서북계를 침입해 오자 고려에서는 동년 10월 정숙담으로 하여금 행영원사(行營元師)를 삼아 오령군마(五領軍馬)를 이끌고 적을 막게 하였는데 이때 승려들도 수백명을 종군케 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나라 안의 반란을 평정하는 싸움에도 종군하고 국권을 자기의 마음대로 결단하는 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력 행사를 서슴지 않았다. 이밖에 각종법회를 통한나라를 위한 기원과 화합 단결, 국왕에게 도리와 시책의 방향 제시와 같은 비군사적인 활동을 통하여 ‘호국이 곧 호법이다(護國則護法)’라는 이념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이와 같이 한국불교의 호국의 기초를 다진 신라와 고려의 불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때의 ‘호국’이 추상적 국가와 왕실에 제한된 호국이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국가의 안전은 곧 왕의 안전이요, 국가에 대한 충성은 바로 왕실과 귀족을 향한 맹약이다. 봉건시대의 사회의식으로는 이것이 당연한 가치 기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으나, 그것이 결코 종교의 가치와 일치될 수는 없다. 그 무렵에 불교가 말한 호국의 대상은 왕실이었지, 인간이 아니었다. 따서 삼국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신라의 불교는 그 호국의 대상이 고구려도 백제도 신라 백성도 아닌 오직 신라의 왕실이었을 뿐이다. 이것은 종교적 가치의 국가에 대한 예속 상태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호국불교는 이와 같은, 봉건적 국가에 예속된 상태의 호국의 맥을 그대로 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사회는 변화를 거듭하여 공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개인의 인격이 최대한으로 존중되고 평등사상이 성립된 지도 오래건만 개개물물의 불성을 인정하는 만고 평등의 진리인 불법의 현현물인 호국의 정신은 여태 봉건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을 펴더라도 위에서부터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는 자의 배려에 의해야 하고 불사를 하더라도 큰돈을 댈 든든한 물주가 나서야 된다는 사고방식을 일삼으며, 힘있는 자의 정권 탈취 따위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경직된 하향식의 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과에만 급급해하고, 기초부터 서서히 쌓여올려 튼튼한 탑을 건축하려는 화합과 협동의 태도가 결핍됨은 그 옛날의 귀족적 호국불교가 끼친 악습중의 일부이다.

존재론적 혀망관의 왜곡 반명
이렇듯 기득권자 우대의 귀족성과 불교 자체의 존재론적 허망관이 결합하여 현재와 같은 은둔적인 호국불교를 낳은 것이다.
“모든 존재는 다 근본 당체의 현현하는 빛으로서, 모든 것은 본래 다 그대로 옳지 않음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현실에 대한 옳고 그름과 선악의 시비 분별은, 오히려 멀쩡한 눈에 한조각 비늘로서, 다만 일시에 놓아버려야 할 것들이며, 현실을 이러쿵 저러쿵 비판하며 고치려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묵연히 받아들이는 편이 존재의 실현에 가까운 태도이니(경계를 없애려 말고 마음을 없애라), 따라서 세계는 환(幻)이 단지 환원된 묘유로 빛나고 있을 뿐인 것이 된다.
이것은 결국 세계 긍정의 양상으로 환원되고, 긍정은 현실을 극복하는 방식으로보다는 현실에 합일하려는 방식으로 환원되는 형태를 갖게 된다. 이는 다시 인간의 구체적 세계에 대한 관심의 쇠퇴를 가져와 현실 세계에 대한 무지로 이끈다.
이것은 곧 불교적 무상과 허망 사이로의 침잠이니, 초월이 아닌, 현실 포기이며 바로 불법의 왜곡이다.

사회 속에서의 종교적 가치관과 그 실현
이러한 현실 긍정의 체념 상태와 영웅적(하향식)귀족주의 사고의 합작이 오늘의 호국불교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호국불교는 인간 개개인의 평등함과 존엄성을 그 바탕에 두고 현실 사회에서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려는 노력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종교적 가치는 바로 인간과 생명에 그 궁극적인 가치를 둔다. 그러므로 종교적 가치는 끊임없이 그 인간과 생명이 속해 있는 세속 국가의 미몽과 자기 탐학의 가치를 쇄신시키고 또 상승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그 종교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인간존재의 해방과 구제의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가치는 정치 속에서 보면 제 그릇에 포용하기에 더러 버거울 수가 있다.
무한하고 궁극적인 불교의 종교적 가치는, 시간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일시적인 상대가치에 지나지 않는 세속적, 정치적 가치들과 맞설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절대가치를 갖는 종교로서의 불교 이념이 일시적인 상대가치 위에서 빚어지는 국가 행위로 하여금 끊임없는 자기 부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불교가 국가 사회에 개입하는 의미의 근거가 된다.
실제로 종교적 이상은 현실에서 끊임없는 부정의 부정을 되풀이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되풀이되는 부정은 관습에 젖고 타성에 젖고 경직되기 쉬운 구조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끊임없는 정화의 과정일 것이다.
최근에 불교의 현실 참여에 대해, 종교와 정치의 관계라는 시각에서, 자주 문제시하고 있다. “종교가 세속의 정치에 너무 깊이 관여할 수는 없다”는 ‘초연’과 ‘초월’의 논리를 펴는 이들도 있는데, 아무리 종교의 이상이 현실 사회보다는 한 차원 높은데에 있다고 하여도, 그 가치의 기준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간에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가치 기준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자신의 이상과 개성을 펼쳐나갈 수 있는 현실의 조건을 성숙시키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그를 위하여, 종교가 곧 불교가 인간과 사회와 정치를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호국불교는 만인이 평등하게 되는 사회를 향한 끊임없는 쇄신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호국이 그 본디의 의미를 되찾는 것은 불교가 제 모습을 되찾는 것과 일치한다. ‘호국’과 ‘불교’가 본디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진정한 ‘호국불교’를 이룰 때, 우리는 인간 해방과 구제의 실현을 눈앞에 두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