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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이 그릇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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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토와 비유경 - 김현산 1988년 01월 71호
범인찾기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아끼던 외투를 도둑맞았다. 그는 여간 상심하지 않았다. ‘그까짓 외투쯤 없어도 그만이다’ 하고 잊어 버릴 수도 있었지만 외투가 고급인데다가 특히 절친한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이니 꼭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이윽고 경찰은 외투를 찾아주겠다면서 형사와 셰파트 한 마리를 현장으로 보내왔다.
형사는 우선 범인의 발자국어 남아 있음직한 방안으로 개를 데리고 들어가 이리저리 냄새를 맡게 하였다. 그리고는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모든 사람들을 모이게 하였다. 사람들이 모이자 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이 도둑맞은 외투를 찾으러 왔읍니다. 나와 같이 온 개는 그동안 냄새로 수많은 범인을 잡았읍니다. 모두가 한 번도 실수한 적은 없었읍니다. 이제 이 개가 외투를 훔친 사람을 찾아낼 터이니 모두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형사의 말이 끝나자 개는 땅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다가 모여있는 사람들 쪽을 흘끔흘끔 곁눈질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한 노파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서 그 옷자락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노파가 모인 사람들 뒤로 숨으니 개도 그 옷자락을 따라 달려갔다. 노파가 옆으로 피하면 개도 쫓아갔다. 그러자 드디어 노파는 얼굴이 겁에 질린 채 형사 앞에 나와 더듬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잘못했읍니다. 내 죄를 고백하겠읍니다. 저는 그동안 밀주를 만들어 왔습니다. 밀주 만드는 도구는 모두 저의 집 목욕탕에 있읍니다. 용서해 주세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자 형사는 “그럼 외투는?” 하고 물었다.
“외투는 전혀 모릅니다. 그저 밀주를 만든 것밖에는 잘못이 없읍니다. 아들이 술집을 하는데 제가 만든 술을 팔아야 손님이 많이 온다고 해서… 이 늙은이를 관대하게 봐 주십시오.”
노파는 일단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끌려갔다. 형사는 개를 불러서 또 다시 범인을 찾게 하였다. 개는 흘끔흘끔 곁눈질을 하고 공중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느닷없이 아파트의 관리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관리인은 파랗게 질려 벌렁 뒤로 자빠졌다.
“죄, 죄송합니다. 저를 벌해 주세요. 저는 아파트 관리비를 받아 빼돌려 제 개인 사업에 썼읍니다.”
모인 사람들은 이 관리인의 말을 듣고 놀라움과 분노에 싸여 관리인을 묶어 경찰서에 보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사이에 개는 30대 후반의 한 사나이에게 다가가 바지를 물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이미 앞에서 노파와 관리인의 모습을 보았으므로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자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저는 지금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은 병역 기피자입니다. 그동안 결혼을 하고 사업도 이제 잘 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지만 항상 이 문제로 불안한 세월을 보냈읍니다. 이제 차라리 처벌을 받고 행복한 생활을 하겠읍니다. 저를 체포해 주세요.”
형사와 개가 외투를 훔쳐간 범인을 찾는 것을 보고자 모인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움과 두려움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니, 저렇게 무서운 개가 있다니 …”
외투를 도둑맞은 사나이도 이 모습을 보고는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못 참겠다는 듯이 형사에게 말했다.
“제발 이 개를 데리고 가주세요. 잃어버린 외투는 찾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자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는 외투를 도둑맞은 사나이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 사나이는 그만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고백했다.
“아아, 역시 죄를 짓고는 못 살겠군. 나는 사실 거짓말을 했읍니다. 그 외투는 친구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니라 훔친 것이었읍니다. 저 역시 도둑입니다.”
외투를 도둑맞은 사나이의 말이 끝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개는 사람들 주위를 돌면서 모두 꼼짝할 수 없게 하였다. 모인 사람들은 체념을 하고는 한 사람씩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였다.
얼마 후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나자 개는 형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형사의 바지를 물고 놓지를 않는 것이었다. 형사는 개를 떼어놓으려고 하다 실패하자 파랗게 질려 털쩍 주저 않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실은 외투를 훔쳐간 범인은 제가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람에게서 돈을 받았기에 멀리 도망가게 해주었읍니다. 그동안 저는 이런 식으로 돈을 받고 범인을 놓아 주기도 하였고 엉뚱한 사람을 범인이라고 잡아놓고 고생을 시키기도 하였읍니다.”
모인 사람들은 형사의 고백을 들으면서 서로의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하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방법
어떤 사람이 길을 떠났다. 그는 무거운 짐을 들기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들지 않고 돈만 가지고 여행을 하였다. 과연 여행을 하는 데에는 불편이 없었다. 배고프면 밥을 사먹고 밤이 되면 호텔에 가서 돈올 치르고 잠을 자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느 날 가야산 근처에서 같이 여행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등에 무거운 배낭을 지고 있었다. 이것을 본, 돈만 가진 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보아하니 그렇게 가난한 사람같지는 않은데 무엇 때문에 그 무거운 배낭을 지고 여행을 다니십니까? 여행이란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 즐기기 위한 것인데 그러면 오히려 더 피곤한 일이 아니겠오?”
배낭을 진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당신말도 일리는 있다’고 하더니 여행을 함께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들지 않은 사람은 동행이 생겨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같이 가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가야산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떠났다. 얼마 후 두 사람 앞에는 큰 강이 나타났다.
배낭을 진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물었다.
“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소. 당신은 돈만 있으면 된다고 했으니 방법을 찾아보시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보이는 것은 갈대숲 뿐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사람이라도 있어야 배를 구하지요.”
“배가 있어야 강을 건넌다는 사실을 알고 있군요.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평상시에는 완전히 잊은 채로 지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과 같이 돈만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강을 건너는 것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배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말을 마치자 배낭을 진 사람은 배낭 속에서 고무보트를 꺼내 바람을 넣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은 혼자 남아 주머니 속의 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물방울이 그릇을 채운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김씨는 동쪽으로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잡고 한 걸음을 내디뎠고 노씨는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서쪽으로 잡고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 두 사람의 간격은 처음에는 두 발자국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간격은 엄청나게 벌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일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저녁에 수도꼭지를 꼭 잠그지 않으면 자는 새에 물은 한방울 두방울씩 떨어진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면 그 밑에 받쳐 놓은 물동이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새삼 물방울의 위력을 느끼는 경우가 그것이다.
인생의 행로는 그 첫출발이 진실된 걸음, 거짓된 걸음, 선의 걸음, 악의 걸음, 미의 걸음, 추악한 걸음, 정의의 걸음, 사악의 걸음 등, 걷는 방향이 어느 쪽인가에 따라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마지막에 가서 그 벌어진 거리를 보면 엄청난 것이 된다.
따라서 조그마한 일이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남의 잘못이나 죄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누구나 잘못은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해서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이제 앞으로 내 행동이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그리고 그 행동에는 절대적인 방법이 없다. 강을 건너는 방법에서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 법구경에 보면 “물방울이 그릇을 채우듯, 어리석은 자는 악을 채운다”고 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노릇에 어떠한 물방울을 채우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