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그림이란 것이 사물의 형태를 그려서 전달하는 것이므로 그림 속에서 사과는 사과로 나무는 나무라고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회화의 기법이 발달하지 못했을 시절의 그림을 보자면 아무래도 그림 속 대상이 지닌 사실감이 떨어진다. 바야흐로 사람들이 그림을 위해서 붓과 종이라는 매체를 쓰기 시작하면서 더욱 더 붓질은 정교하고 세밀해졌고, 입체감이나 거리감 등을 표현하기 위한 각종 회화 기법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화폭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구현하는데 우리에게 또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실성을 위주로 추구하던 회화가 언젠가부터 과연 진짜 같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그림 속 산이 실제 산과 똑같아야 하는가, 꽃이 꼭 현실의 꽃과 똑같아야하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그림에 있어서 진실보다는 기교가 앞서기 시작하였을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게는 산을 산으로, 혹은 나무를 나무로 인식하게끔 하는 그 어떤 특징적인 묘사만 있어도 우리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동파라는 호로 더 유명한 소식(蘇軾, 1036~1101)은 그의 제화시題畵詩의 첫 구절에서 “형사(形似, 형태를 똑같이 묘사하는 것)로 그림을 논하면 식견이 아이들과 다름없다”고 하였다.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런 지적은 뜻과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우선시한 것이지 형사가 필요없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형태에 집중하는 노력을 오히려 전신(傳神, 뜻을 전달함)에 두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틀림없다.
선화의 특징인 감필이나 집중은 결과적으로는 그림이 지닌 현실감(실제감)이 부족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그림에서 겉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그림의 소재를 빌려 자신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데 더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세밀한 배경은 생략된다든지 혹은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않는 그림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미 당나라 때부터 중국의 감상가들은 그림을 평가하는 다양한 기준들을 내놓았는데, 그중에서 그림을 네 가지 격으로 구분하여 감상하는 방법도 있었다. 9세기 초에 활동했던 품평가 주경현朱景玄은 그림을 신神, 묘妙, 능能, 일逸이라는 4격格의 회화비평기준을 제시하였다. 물론 원래 그림의 감상이란 것이 자신의 경험에 비례하여 주관적으로 느끼면 그만이다. 이러쿵 저러쿵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놓은 기준이기는 하지만 또 대강 짐작으로나마 신, 묘, 능이라는 그림의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일逸에 있다. 주경현조차도 일격은 신, 묘, 능으로 처리할 수 없는 작품에 이것을 배분하였다.
‘일逸’에는 편안하다, 벗어나다, 즐기다 등의 의미가 있다. 또 한편으론 아주 뛰어난 물건을 두고 ‘일품’이라고도 한다. 한눈에도 혀를 찰 정도로 좋은 작품이지만 왜 좋은가에 대해서 뭐라고 딱히 설명할 수 없었던 일품의 회화들은 송대에 들어와 가치나 평가가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송대 초에 발간된 《익주명화록(1006)》의 저자인 황휴복(黃休復, 10세기말~ 11세기 초)은 일격逸格에 대하여 “네모와 원을 법도에 맞게 그리는데 서툴고, 채색을 정밀하게 칠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며, 필이 간략하나 형태는 갖춰지니 자연에서 얻을 뿐 본뜰 수 없고 의도 밖에서 나온다.”고 하고 이것을 신, 묘, 능의 앞에다가 놓았다. 다시 말하자면 붓질이 간략하지만 정교하게 형태를 갖춰서 전달하려고 하지 않으니 이를 통해 의미 이상의 것을 전달할 수 있는 그림을 일품이라고 하였고 그것을 그림의 최고의 경지라고 평가한 것이다. 이는 아마도 송대 유행하기 시작한 이런 선화들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 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