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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과 강과 숨져간 생명들에게 깊이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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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명신┃ 해인사승가대학 2학년 2011년 03월 349호
해인사에서 보낸 두 번째 안거가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렸다.
처음 들어왔을 때 아무 것도 몰라 막막해 하던 내가 곧 아랫반 스님을 받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보낸 지난 한해였다. 사미계를 받고 곧바로 해인사 승가대학에 방부를 들이고 나서 지금까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셈이다. 처음 입방 후에 해인사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나에 대한 글을 썼었다. 넓고 단단한 해인사의 품안에서 스스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다짐의 글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초심이 지금 어떻게 변해있는가를 스스로 살펴보니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수행자로서의 첫발을 잘 내디뎌서 제대로 된 초석을 세워보겠다던 원력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순간순간 밀려오는 상황과 현실에 타협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기도 했었다. 여름 안거가 지나고 가을이 순식간에 저 너머로 사라진 후 동안거 기간 동안 그런 갈등과 고민은 절정에 달했다. 심지어 내가 해인사에 와서 생활하기로 결정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라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고 내가 지금 발딛고 있는 이 자리에 대한 의심과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주변 모든 것들이 삐딱하게 보이기 시작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이나 행동들 역시 가식과 거짓에 물든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외톨이였고 이방인이었으며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모든 일의 계기는 항상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아무런 의미 없이 던져진 말이나 행동일지라도 때로 누군가에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바로 그런 경우였으며 그 파장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고 스스로를 달래보기도 했지만 2학년으로 올라간다고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위태위태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휘청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다시 용맹정진을 올라가게 되었고 아무런 방해 없이 자신의 마음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안거에 이어 두 번째로 경험하는 정진이라 조금은 수월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핑계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외부의 경계는 그저 경계로 존재하는 것일 뿐 나 자신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지나가는 풍경 일 따름이었다. 문제는 스스로에게 있음을 숨기고 남의 탓, 상황 탓만 하고 있었으며 곧 지나가고 사라져버릴 일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하고는 그것에 매여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실은 간단한 문제였던 것이다.

동안거 기간 동안 나를 괴롭히던 문제는 그렇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에 나름 생각해둔 일들이 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자만심에서, 겸손함이 없이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삐뚤어진 마음에서, 나만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좁은 편견에서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되었기에 그에 대한 처방이 필요했다. 예전에 은사스님께서 안거기간에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해제하고 나서 그 마무리를 어떻게 짓느냐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진득하게 눌러앉아 수행정진 하는 일만큼이나 한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눅눅해진 마음을 말리고 훌훌 털어버리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의미리라. 그래서 우선 이번 동안거 해제방학 기간 동안에는 예전처럼 파계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동안 꼭 가보고 싶었던 절과 강원도 쪽에 위치한 보궁을 참배하기로 했다. 공부는 혼자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내가 세운 원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동안 지은 크고 작은 업들이 나를 얽어매서 부자유하게 만들지 않기를 부처님 전에 간곡히 빌어보는 일은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 부정적인 감정의 찌꺼기들이 흔적조차 남지 않길 바라는 일도 덧붙여야겠다. 그렇게 보궁과 절을 순례하는 길 가운데서 그동안 결심했던 일 하나도 같이 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의 산하는 4대강 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온통 파헤쳐져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자연은 무분별한 개발을 명목으로 한 정부의 흉수 아래 신음하고 있으며 소중히 간직해야할 문화유산이자 우리 불자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부처님조차 아무렇지 않게 훼손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 하에서 타종교의 불교에 대한 폭력적인 행동들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셀 수없이 많은 가축들을 생매장해버리는 참혹한 일마저 아무렇지 않게 생기는 것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풀 한 포기조차 함부로 다루지 말고 소중히 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일진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리는 걸로 해결될 수는 없는 일들이 많은 것이다. 갓 출가한 수행자로서 구체적 실천을 직접 행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에 챙겨두고 빠뜨리지 않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리라 본다. 그래서 4대강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나 매몰지 등을 모두 다 둘러보진 못하더라도 그 중 한곳에 가서 그 현장을 내 눈 안에 고스란히 담아 두고 싶다. 인간의 실수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지는 그 과정을, 다음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내 눈과 마음에 챙겨두고 싶다. 그리고 그 산과 강과 숨져간 생명들에게 깊이 참회하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 외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그 말조차도 이기적인 욕심과 자기 합리화에 기인한 것이 아니냐고 하더라도 그 말을 꼭 해주고 싶다. 해제방학 기간에 할 일중 어쩌면 위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화엄경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다들 체감하게 되는 일이다. 그러한 엄연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두고 싶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 방학을 마치고 돌아와 아랫반 스님들을 맞이할 때 나 스스로 당당하고 어떤 말을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번 해제방학은 그렇게 내 마음에 걸림이 없기를 바라면서 수행자로서의 터전을 다져가고 내가 살아가고 걸어가야 할 길을 하나하나 밟아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