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설립한 전통문화연수원의 문화재수리복원과정의 교수님과 연수생10여명은 2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해인사를 방문 하였다. 불교 전반에 관한 이해 및 해인사 본찰과 주변 암자의 문화재 상태를 조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였다. 특히 비지정 문화재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며 부적절한 관리로 인하여 훼손이 심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통문화연수원에서는 사전 조사를 실시하여 훼손을 막고, 수리·복원을 통하여 소중한 불교문화재 보호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였다. 짧은 기간 동안 예불참석 및 예법교육, 불교와 불교문화재에 관한 두 차례의 특강과 주변암자순례, 성보박물관 견학, 조사토론 및 차담회 등의 일정을 진행하였다. 무엇보다 조사과정 내내 스님들의 자상하고 인간적인 배려에 무엇보다 큰 감명을 받았다. 요즘말로 생각보다 쿨~하고 다양한 스님들의 세상인식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서로 다른 깊은 골짜기가 한곳에 모여 있는 가야산과 닮았다.
첫째날, 불교에 대한 이해와 예법교육이 진행되었다. 불교를 이해하는 것, 새벽을 깨우는 사물과 염불소리, 개금한 불상, 불화와 산 능선을 닮은 지붕처마, 추녀에 매달린 풍경, 서로 단단히 물고물린 목조건물의 안정된 구조와 자연 기둥과 초석의 그랭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 하나로 불교의 세계도 열리는 세상, 불교에 대한 이해도, 문화재 조사도 이론상으로는 누구나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만나기 쉬운 것은 알기 어렵고 소중한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했던가.
불교문화재와 인연을 맺는 이는 구도적 삶에 대한 최소한의 태도와 기본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소위 불모라면 부처님은 모를지언정 적어도 만물을 보듬는 어머니 마음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한 낱 기술로 이 땅에 불교를 이어오는 스님들의 오랜 정성을 잘못된 동기와 무지로 감히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손이 손을 대신하는 기계를 만드니 마땅히 손맛은 줄어들 터, 그래서 손맛을 다시 살리려 기계를 쓰지 않고 수공을 되살리자는 외침! 참으로 사람이 하는 일이란. 목재에 입힌 니스칠은 이미 야만적인 것이 되었다. 절 밖의 일상과 절 안의 원상이 겹쳐졌다.
속도전의 시대에 팔만대장경과 같은 정성은 다시 볼 수 없는 귀한 것이 되고 말았다. 오랜 맛이 느껴지는 사람이 귀한 것도 같은 이유인가 싶다. 재료가 없어서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예전의 기술력과 마음을 모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네 심성. 문화재를 제대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매순간 돌이켜 내 걸음을 정리하는 일. 스님들의 신발은 항상 쉬이 지나쳐지지 않는다. 내 운동화도 일상의 궤적에서 벗어나 짧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좁게는 다르지만 넓게는 같은 망 속에서 서로에게 서로를 비추어 하루를 이루는 것.’ 어설프게 알지만 행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할 터. 금강경과 초발심자경문을 머리맡에 두고 밤잠을 설치었다.
둘째날 새벽예불을 시작으로 성보박물관을 견학하였다. 해인사는 국보3점, 보물14, 사적1, 중요민속자료1, 지방유형문화재14, 문화재자료4, 기념물1점 등과 비지정 문화재를 포함하여 다량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경내를 벗어나니 가야산 전체가 문화재였다. 풍수를 모르기 때문에 느껴지는 운치랄까. 굳이 알고 모름은 중요치 않았다. 절 밖에선 여전히 사람이 만든 질서를 잘 헤쳐 이득을 최대화 하는 것이 마땅할지라도 말이다. 이유 없이 ‘비지정’문화재에 눈길이 간다. ‘지정’된 역사에서 잊혀 진 수많은 인연들, 집집마다 사람마다 모과 옹두리 같은 사연들···. 문화재의 보존과 수리 복원에 대한 담론을 좇으면서 문득, 오랜 세월 묵묵히 자리하고 수많은 사연 간직한 말없는 사람을 찾게 된다.
스님들과 차를 마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같이 있되 같이 있지 않은···. ‘차나 한 잔 마시’는 것이 스님들만의 언어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다행이 눈을 맞추어 말씀해 주시니 나중에는 혼자 히죽거리기까지 하였다. 때로는 미간에 힘을 주어가며 마디마디 곱씹어 본다. 스님의 말씀과 표정에서 문명과 인간사, 문화재와 사람에 대한 관심과 폭넓은 인식의 틀을 엿본다. 때로는 잊혀진 사람에게서 나는 막연한 향기가 난다. 차에서 나는지 스님에서 나는지 다를 바 없는 동료들에게서 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셋째날은 주변 암자순례. 짧은 시간에 수많은 스님들의 용맹정진의 사연이 담긴 암자를 ‘둘러보러’ 다니는 것은 무척이나 죄송한 일이었다. 그래도 혹여나 있을 문화재의 훼손을 막는 일이라 자부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해인사 본찰의 동편과 서편, 남편의 영역으로 지족암, 백련암, 희랑대, 국일암, 약수암, 삼선암, 금선암, 보현암, 금강굴, 용탑선원, 홍제암, 원당암 순으로 이어졌다. 불사소임을 맡은 이의 인식변화에 관한 스님의 안타까움과 당부의 말씀을 맘속 깊이 새겨 넣었다. 몸이 암자에 아주잠시나마 머무른 인연으로 어느 순간엔가 벼락같이 지금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수행만큼이나 다양한 골짜기 곳곳마다 선대 스님들의 절실함이 암자를 유지해 온 듯. 뒤를 이은 스님들의 정진이 끝없이 이어지고, 결국에는 본찰 행자님들의 바른손 받든 왼손이 유난히 엄숙하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절에 있으니 새삼스런 것이 많아진다.
넷째날은 불교정신에 관한 특강이 있었다. 말이 필요 없는 존재감이란 이러하리라. 수많은 시간동안 수행의 바른 길을 몸소 실천하시는 존재 자체의 엄숙함이 전해질 무렵, 희랑대사의 상이 겹쳐졌다. 바른 자세와 눈빛, 최소한의 몸이란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나는 사람 속에서 잘 흐르지 못한 탓에 살도 몸에 머무르지 못한다. 절벽수행으로 가벼워진 스님과 겉으로는 닮은꼴이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차이에 동편 암자만 올려다 볼 뿐이었다.
가야산에 흰 눈이 가득 내려앉았다. 눈 녹으니 물길 트는 공양간 행자님들. 훈련병이 겹치며 순식간에 예비역 눈에는 절 밖에 있는 살생집단이 생각났다. 또다시 같음 속에 얼마나 큰 다름인가? 열두 살 트롯신동의 구성진 떨림은 애처롭기 그지없지만 사춘기 행자님들의 진지한 눈매는 본 적 없는 어린왕자의 애처로움을 닮았다. 역시 절 밖의 여행자임을 또다시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잔 눈길이 한곳에 오래 머무른다. 이는 노년의 특권만은 아닐 것이다.
눈 가득한 나뭇가지위에 까마귀가 유독 두드러진다. 가악각~가악각
눈으로 인해 말랑말랑해진 마음을 살짝 꺼내 필름 한 컷! ‘녀석, 니 놈은 검은 옷을 입은 인연으로 흰 눈만 보면 간절 하겠구나.’ 그사이로 회색가사 두 분 걸어가신다. 뒤에서 몰래 합장한다. 녀석이 또 그런다. 가악~覺!가악~刻! 아이쿠야! 이쪽도 합장한다.
다섯째날, 본찰 경내의 문화재를 재조사하는 가운데 스님들의 동안거 해제가 있었다. 스님들의 엄숙한 자리에 기웃거리는 마음이란···. 한참동안 밖을 서성이던 내게 방장 스님께서 한걸음 한걸음으로 물으셨다 ‘자네 밥값은 했는가?’
어제는 낯이 익은 남자가 방을 함께했다. 책을 읽다가 잠이든 남자는 가야산에 오른다 했었다. 그가 떠난 방에서 그의 뒤를 쫓는다. ‘산속에서 유사有事하기를···.마애부처님 뵙고 저녁공양 생각에 내려오는 발걸음이 빠르기를···.’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홀로 시간이 남아서 한가롭게 경내를 거닐고 있었다. ‘앗차! 시간이 남는다니.’ 스님들의 정진하시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해도 한참이나 남았을 무렵, 역시나 장경판전의 염불소리가 한참동안 그치지 않았다. 법보전에는 바닥이 둥근 신발을 신고 염불하는 스님과 젊은 보살님이 부처님께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 대장경이 사방을 둘러싼 가운데에 가만히 서 보았다. 다시 보게 된 편액의 글귀! 스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원각을 구하는 도량이 어디입니까 하니, 지금이곳 생사의 순간 이니라’ 스님의 불편한? 염불수행이 끝나고도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각수의 칼 끝 깊이와 각도, 경판 제작에 관심이 더 있던 나였다. 대장경판에 정성을 들인 모든 이들의 마음이 판전을 둘러싸고 온 몸을 위로해 주는 듯 했다. ‘오래도록 각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실에 대한 경외감. 일상에 대해 품었던 화만큼, 그만큼의 눈물로 참회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일었다.
고요하게만 보이는 해인사의 나날에, 절박함이 분초를 다투는 스님들의 정진이 1200년 간 끊이지 않았으니 그 도량을 머무르는 마음도 떠나는 마음도 한가득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5일간은 한 순간이고 한세상이 아닐런지.’ 어설픈 흉내까지 내어보는 것이다. 일상의 희노애락을 그대로 품은 채 하루하루 조금씩의 편안함이 전해졌다. 수행자의 진지함, 그 넓은 세계와 그를 오래토록 품고 있던 가야산과의 교감, 인식하지 못한 수많은 인연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 부디 한 사람의 작은 정성이 집안의 따뜻한 일상으로, 모두의 평화로움으로 이어지기를···. 사람이 저지르는 죄악과 기아, 폭력과 살생으로부터 모두 자유롭기를 기도한다.
높이 치달리는 일상에만 익숙하던 것이 방향을 바로잡는 데는 지나온 만큼의 시간은 마땅히 마음을 모아야 할 터. 다시 멈추었던 바퀴에 오른다. 몸이 향할 이정표는 많다. 도로는 더욱 반듯하고 넓어서 습관적으로 방향을 잃는다.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인 행사에 콘크리트 타설이 진행 중이었다. 쉬이 굳어버리는 것을 견디는 거푸집은 건실하고 바른 형태라야 한다. 시절인연 기다리지 않더라도 나랏님들의 수행센터도 조만간 지어지기를 빈다. ‘부자 되세요’가 덕담인 시대에 사람의 향을 끝까지 믿고 싶은 마음은 해인사를 나서며 더욱 굳어진다. 부디 바다에 나가는 큰 배로 지금 이 땅에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주십사 곱게 합장한다.
해인사에서의 5일은 내게 뜻 모를 말들도 감히 늘어볼 만큼 나름 유사有事한데 참지 못 할 가벼움과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커져만 간다.
산에 물이 흐르고, 스님들이 옛적부터 말없이 해인사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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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재전문인력양성과정은 문화재 수리보수복원에 필요한 기능인력을 배출하기 위하여 2008년 개설, 현재 전통회화모사,
전통목칠공예의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