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제일 추웠던 주말, 양평에 전원주택을 장만한 선배 언니 네에서 모임이 있었다.
언니네 부부는 꼭 가야하는 결혼식에 때문에 나중에 오기로 하고, 나와 절친 언니는 은사 선생님을 모시고 먼저 양평 집으로 향했다.
양평 언니네 집 앞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 음악소리가 자못 크게 들렸다.
“이런! 언니네, J 옆이잖아!”
나는 놀라서 거의 소리를 질렀다. 절친 언니의 집에 자주 왔기에 1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동네 사정이 훤했다. 대빵 언니네 바로 옆집은 동네를 향해, 동네를 덮는 음악을 트는 J의 집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트는 그는 J 주류 회사에 다니는데 우리는 회사명으로 그를 불렀다. 우리는, 특히나 나는 그를 ‘또라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은사 선생님을 내 편으로 포섭하기 시작했다.
“소음이 싫어서, 자연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이런 곳에 오는 건데, 음악을 저렇게 틀어요, 선생님. 예전에 버스타면 ‘뽕짝’ 들어야 하는 것과 똑 같아요. 소음 공해예요, 폭력이에요.”
모차르트를 좋아하시는 선생님이 양미간을 약간 찡그리시며 “그러네요”하고 응답하셨다.
‘그렇지. 선생님도 싫으시구나.’
대빵 언니네 이웃이 J라니, 앞으로 언니네 전원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자칭 ‘정의의 사도’인 내가 언젠가는 저 몰상식한 이웃을 따끔하게 손봐 줄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언니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눌렀다.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이 ‘삘리리’하고 경쾌한 신호음이 울리면서 문이 열렸다. 마을 초입, 김치찌개를 점심으로 먹은 집에서부터 요의를 느끼고 있었지만 집에 가서 하지하고 참았다. 세 명 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그 집은 화장실이 2개라서 선생님은 방 화장실을, 선생님의 학생이었던 우리는 거실 쪽을 사용했다. 찬물도 위, 아래가 있는 법, 언니 먼저, 동생 나중. 이제 내 차례다. 아뿔싸! 변기에 물이 안 나온다. 정결함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내가, 내 집도 아니고, 남의 집에, 친구끼리도 아니고, 선생님을 모시고 와서 물을 못 내리다니… 대학 다닐 땐 어려워서 말 한마디를 못했던 선생님인데…
절친 언니에게 큰 대야를 주면서 물을 얻어 오게 채근했다. 잠시 후 언니는 물만이 아니라 친구가 준 십전대보탕과 그 친구가 이 마을 숲에서 얻은 잣, 호두 등을 간식으로 받아왔다. 나는 다시 언니를 꼬드겼다. 집에 있는 것이 분명한 J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게 했다. 언니와 함께 J가 왔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멀쩡해 보였다. 심지어 매력적인 구석도 있었다. J는 뒷마당에 있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발전기를 살피더니 추위에 얼었다면서 열풍기로 녹여야 한다고 했다.
“저흰 열풍기 같은 것 없는데, 어떡하죠?”
“제가 빌려다 녹여 드릴게요.”
“정말요? 고맙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추위에 발전기와 수도관이 안 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심껏 열정을 다해 설명해 주었다. 지금까지 그를 J라고 얕잡아 부른 것이 약간 미안했다.
“추운데 들어가 계세요. 전 열풍기 빌리러 갈게요.”
고맙고 미안해서 금방 집안으로 못 들어가고 마당에서 미적거리는데 그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맙소사 열풍기를 빌리러 차를 타고 가야했다. 그는 창문을 내리고 손짓을 하더니 차를 돌려 나갔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화장실의 폭탄은 물 한 바가지로 제거 되었고, 얼은 수도는 옆집 J가 해결해 줄 것이었다. 선생님과 우리 둘은 따듯한 햇빛이 가득 찬 거실에서 십전대보탕에 잣을 띄어 마시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흥에 겨워 웃으며, 행복한 한 때였다고 기억될 만한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 한 애는 거의 영하 20도에 열풍기 구하러 갔는데.” 내가 말했다.
“그럼, 나가서 기다려.” 언니가 받았다.
“자, 이제부터 J가 틀어 주는 노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들어!”
우리는 까르르 웃었다. 그 때 선생님은 중년의 우리의 얼굴에서 갓 스물의 맹랑함을 보셨는지 한 술 더 뜨셨다.
“이제, 노래로 들려요.”
그런데 정말 그가 틀어놓은 노래가 소음이 아니라, 음악으로 들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J는 멋진 친구가 되었다. 물론 그가 변한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의 얇은 선입견이 벗겨진 곳에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가 왜 마을 주민들을 향해서 음악을 트는지가 궁금했다. 나는 그가 주말에 내려와서 하루 종일 마을 사람들을 향해 음악을 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DJ처럼 마을 사람들의 꿈과 추억이 녹아 있을 법한 음악을 선곡해서 정해진 때에 맞추어 1시간 씩 틀었다. 예전 어른들이 명절날 고향을 찾아 돌아올 때, 멀리서 울리는 풍물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향은 이미 고향이 아니듯느꼈듯이, 그는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울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음악이 야트막한 산 밑에 들어앉은 작은 마을을 감싸 안을 때, 그의 음악은 마을을 지키는 방벽이 되어 우리가 지나온 어수선한 세계와 경계를 이루는 듯 했다. 그가 트는 음악을 듣노라면 우리가 지나온 세상에 대한 연민이 일어나고, 다시금 세상을 위해 세상을 지키고 싶게 했다.
그의 음악이 나에게 음악으로 들리면서, 그가 자기 집 마당에 쌓아 놓은 조야한 돌무더기들이 돌탑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마당에는 여기저기 자그마한 돌들이 약 10개 무더기 정도 쌓여져 있다. 어느 것은 짱돌이 3개 올려져 있어 돌탑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제일 큰 돌무더기도 높이가 20cm를 간신히 넘을 정도이다. 하지만 마당의 돌탑들은 그가 음악을 트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성정을 보았을 때,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돌탑을 세우기로 했다면 아마도 그는 곧추선 돌탑을 마을 한가운데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한 것은 수직의 돌탑이 아니라, 수평의 돌탑이었다. 수평의 탑은 그가 원하는 삶과 바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스스로가 괴인 돌이 되는 무더기에는 맨 위의 돌도 맨 아래의 돌도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옹기종기 괴어진 돌 틈 사이로 눈을 가져가면 자그마한 하늘이 보이는데 그 하늘은 동경과 연민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렇게 연민의 탑을 쌓고, 연민의 노래를 틀고 있었다.
그와 그의 주위에 대한 두꺼운 이해심이 생기자, 미처 보지 못했던 진실이 드러났다. 그 또한 별이었던 것이다. 그는 돌탑 위에서 노래하는 별이었다. 그가 반짝일 때마다 작은 마을은 별의 노래로 깜박인다.
이제 봄이 오면, 우리 앞에 누구라도 알 수 있게 별의 노래가 간직한 비밀이 펼쳐질 것이다. 그가 쌓은 돌탑의 틈새에서 꽃이 피어나, 우리가 별이 되어 살았던 날들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꽃씨는 돌탑을 쓰러뜨릴 듯이 불었던 바람에게서 떨어진 기적이었다. 그래서 생명이 없는 돌도, 마음이 없는 돌무더기도 생명을 안아 키울 수 있었다. 서로를 위해 스스로가 괴인 돌이 된 돌들, 작은 틈새에서 지상의 꽃은 천상의별처럼 반짝일 것이다.
이봄, 우리는 마음속의 별이 뜨는 곳은 작은 틈새의 위대한 포옹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