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너머 그곳은 피안의 세계
그랬다. 일주일에 두 번 대구에서 맑은 고을 청도 운문사로 가는 길은 우리들 사는 세상 차안此岸을 떠나 피안彼岸으로 가는 길이었다. 산문 안에만 들어서면 세 아이의 엄마인 것도, 한 남자의 아내인 것도, 칠남매 맏며느리인 것도 모두 산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그저 피아노선생이었다. 아이가 제 시간에 학교에서 돌아 왔는지 강사에게 맡겨놓은 학원은 별일 없는지 세상일은 놓아 버렸다. 그렇게 스물두번의 봄여름을 만났고 스물두번의 가을겨울을 떠나보내는 22년의 세월동안 참 많이 행복했다. 행복했었노라 말하는 그이의 얼굴이 복숭아꽃빛으로 물든다. 세계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공연장인 미국뉴욕 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 홀에는 미소 짓는 에이버리 피셔의 사진과 함께 ‘음악이 그에게 준 것을 세상에 환원하려는 것이 평생의 철학이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들었다. 아홉 살 때부터 피아노와 함께 살아온 음악인 김운희 불자에게 물었다. 기업인이면서 클래식음악 후원자였던 에이버리 피셔의 철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복이 많아 좋은 부모 만났고 그 덕분에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피아노를 공부할 수 있었어요. 배운 사람으로 또 가진 사람으로 세상에 대한 책임이나 회향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 봤지요. 저로서는 인연 지어진 운문사 학인스님들께 제가 배우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드린다는 마음입니다. 개강이나 종강하는 날 새벽에 일어나 샌드위치 한 3백 개쯤 만들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에요. 좋아하실 스님들 생각 하면 신이 나요. 가끔은 쿠키도 굽고, 튀김도 만들어 가는데 그런 날은 피아노 레슨도 레슨이지만 50여명의 피아노 배우는 학인스님들이 아이처럼 기뻐하세요. 그리고 수업 끝난 스님께 막대사탕 하나 쥐어 드릴라치면 ‘제 도반 꺼 하나 더 주시면 안 되요.?’ 하는 맑은 얼굴이 너무나 고우셔요.”
운문사를 무시로 드나들며 청정한 기운을 받아가는 터라 수업료를 안 받았으면 싶지만 혹여 불편함을 끼칠 것도 같아 언젠가는 피아노를 선물하기도 했다는 김운희불자. 아름다운 것에는 평화가 함께 하고 평화로운 것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운문사의 사계는 풍경화처럼 아름답다며 자분자분 얘기하는 그이에게는 세월이 비껴갔을까? 늙었지만 낡지 않은 어른은 참 흔치 않다했는데 50대여인 김운희, 그이는 아직도 깊고 푸른 청춘인 것 같다.
-운문사를 드나들면서 아름다웠던 장면을 꼽는다면요?
“스님들과 만남은 제게 보석 같은 시간이에요. 산속 깊은 웅덩이에서 멱 감고 억새 우거진 영남 알프스를 오르던 시월의 어느 날도 좋았구요. 소임자 대신 북채를 들고 날 위해 저녁예불시간 대북 쳐주시던 스님 뒷모습은 눈물 나도록 고맙고 아름다웠어요. 그뿐 아녜요. 소등 이후 몰래 빠져나온 화엄반스님들과 산길 걸으며 노래 부를 때 달빛은 어찌 그리 휘영청하던지요.
운문사학인스님들과 함께 하는 순간 그이는 바람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자유의 시간, 축원의 시간을 보냈으리.
-학인스님들이 피아노레슨을 받는 동기는 주로 어떤 것이었는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속가에서 배우지 못한 아쉬움, 대중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경우, 포교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등등인데요. 정말 온 마음으로 수업 합니다. 초보여도 졸업할 때쯤이면 찬불가 반주정도는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어른스님들도 피아노 레슨에 관심을 많이 보이며 배우고 싶어 하셨어요.
-그동안 피아노로 맺은 특별한 인연도 많겠습니다.
“연비로 손가락이 온전치 못한 스님이 계셨는데 참 열심히 하셨어요. 그런 모습이 부끄럽다며 귀가 빨개지던 순수한 모습이 눈에 선하구요. 후박나무아래 단소 불며 작은 음악회를 열곤 하시던 스님이 졸업하며 건네준 단소가 아직 제게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하시는 정율스님과는 추억이 많아요. 스님노래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전국의 사찰과 공연장을 다녔는데 며칠 전에도 통화를 했지요.
기도이며 수행인 피아노레슨
오대산 월정사아랫마을이 외가인 김운희 불자는 모태신앙이었다. 외조부내외분과 부모님의 영향으로 초파일연등아래 뛰놀던 어린 시절을 거쳐 중고등학교 때는 피아노 치는 것에 진전이 없어 맘이 불편할 때마다 서봉사를 찾았다. 무릎이 반질반질해지고 발 시림이 온 몸에 전해질 때 까지 절을 했고 해인사 부처님도 그렇게 친견했다. 한겨울 교복입고 피아노가방 들고 성당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무작정 해인사를 갔었단다. 대적광전 부처님은 세상에서에 밀려 난 것 같아 방황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여고생에게 언제나처럼 자비광명의 미소를 지으셨을테고.
-참 성실해 보이는 인상입니다. 오랜 세월 피아노 레슨을 하며 본인 삶에 있어 혹 달라진 점이 있는지?
“제가 무서운 선생이에요. 피아노 레슨에 있어서만은 양보를 하지 않는데 어쩌다 자기고집대로 하려는 제자를 만나면 그 스님이 저를 공부시킵니다. 그럴 때면 피아노를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결심을 세우고 그 스님을 화두로 삼아 정진합니다. 상처 주지 않고 어떻게 잘 할 수 있나 고민해요. 힘들 때도 있지만 극복 또한 되더라구요. 그로 인해 스스로 참회하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터득했지요. 그러니 레슨시간이 기도시간이고 제 수행시간이지요. 좀 웃기는 얘기지만 스님들께 감히 ‘욕심 버리세요’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피아노 잘 치려는 욕심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요.”
-남편하고의 인연도 부처님이 지어주셨다면서요?
“제가 산을 참 좋아해요. 명산대찰이라고 가는 곳마다 절이 있었어요. 대학 다닐 때 선배들과 강원도에 갔는데 새벽에 108배하는 저를 남편이 보고서는 맘에 두고 그때부터 인연이 된거죠. 남도의 대흥사 도갑사는 말할 것도 없고 무수한 절을 함께 찾아다니며 절을 했어요. 저는 절하는 것을 그리도 좋아해요.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절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것 같은 묘함을 느끼기도 하구요.”
매일 아침 108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시부모님을 아버지엄마라 부르며 사랑받는 며느리이기도 한 김운희불자는 어른들께서 여행이라도 떠나시면 공장안 사택에 거처하시는 시부모님댁을 찾아가 대신 기도를 올린단다. 희유한 일이다.
내 삶의 원천은 종교
40년이 넘도록 피아노와 떨어져 본 적이 없다는 그이 삶에 음악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까? 가족 다음이란다. 몸의 한 부분이고.
-바쁘게 사셨겠습니다. 살면서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 있다면?
“종교입니다. 운문사비로전 부처님을 늘 친정아버지라 생각해요. 힘들 때도 좋을 때도 찾아뵙지요. 마음이 일어나면 밤낮 가리지 않고 비로전 부처님을 찾았습니다. 부처님이 제 삶의 힘이 되더라구요.”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엎드려 본 적이 있는지?
“친정 엄마와 아버님 가신 날이었습니다. 흰 연등을 만들어 달고 밤새 하염없이 절하고 또 절을 올렸답니다.”
-요즘 들어 느끼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정말 가슴 뛰도록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지난 세월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어요. 굳이 예를 든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우리 가정이요.”
그렇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이라 했고 우리가 나누는 인사말 가운데도 ‘별 일 없지요?’가 있다. 아무 문제없는, 별 탈 없는, 그래서 우리네 엄마, 할머니들은 고래로 ‘그저 우리 자식들 우리 집안 무사 무탈하여지이다...’하고 축원하지 않았던가.
아무 문제없는 가정은 기도처럼 수행처럼 스님들께 올린 피아노 레슨이 가져다준 부처님의 선물 같다. 피아노를 쳤으니 섬섬옥수려니 한 망상은 잠시 거동이 불편해진 필자를 위해 집으로 와준 그이 손에 들린 만두상자를 보며 바로 깨졌다. 세월의 흔적 가득한 그 손끝으로 만두를 빚으며 된장찌개를 끓이고 피아노를 쳤으니 길고 섬세한 손가락은 옛말이란다. 찬바람이 아직 다 걷히지 않은 삼월, 엄마 손이 되어 버린 그이에게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를 청해 듣고 싶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