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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과 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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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엮은 삼국유사 - 김호성 1988년 01월 71호
삼국유사는 고려 25대 충렬왕 11년(서기1285년)에 일연(一然) 스님이 쓴 책으로,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신라, 고구려, 백제, 이 세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뿐더러 신화나 전설 및 시가 들을 많이 싣고 있는 삼국유사를 오늘에 이르러 알기 쉬운 글로 풀이하여 되비추어 보는 작업은, 불교라는 틀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사를 바로 본다는 데에서 그 깊은 뜻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1월호부터 계속 연재될 예정인 ‘새로 엮는 삼국유사’는 첫째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둘째로, 필자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역사의 사회사(社會史) 및 생활사를 복원한다는 관점에서 내용을 보태기도 하며, 세째로, 글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꾸며서 설명은 되도록 줄여 나갈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삼국유사 권 2, 기이(紀異)편의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조(條)를 소개한다.


1
“전하, 이제는 어쩔 수 없사옵니다. 이 서라벌의 부귀영화가 온통 전하의 것이온데, 마땅히 뒤를 이어 백성들을 다스릴 태자가 있어야 하나이다.”
“허나, 어쩌란 말인가? 왕비에게 태기가 없으니…”
전하의 기력은 정정하신데도 태자가 아니 계심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왕비에게 문제가 있는 줄 아옵니다.”
“…”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사량 부인(沙梁夫人)을 폐하시고 만월부인(滿月夫人)을 새 왕비로 맞이하소서.”
“음, 왕가에 태자가 없음은 만백성이 근심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사량부인을 폐하고 만월 부인을 새로이 왕비로 맞이하고 경수태후(景垂太后)라 하라.”
“예, 전하.”
경덕왕의 정력이 왕성했는데도 두번째 왕비 역시 태자를 낳지 못했다. 경덕왕은 날이 갈수록 초조했다.
“권력이나 부귀와 영화가 모두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없는데, 어찌 태자가 없을까…”
“전하, 평소에 부처님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셨으니 틀림없이 영험이 있을 것입니다. 대덕 스님들께 의지해 봄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좋을까?”
“새로지은 불국사(佛國寺)에 계신 표훈(表訓) 스님은 의상 스님의 제자이온데, 서라벌 제일의 큰스님으로 칭송되고 있읍니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 표훈 대덕을 모시고 오너라.”
그리하여, 김 대성(金大城)의 청으로 불국사에 머무르고 있던 표훈 스님이 왕궁에 들어오게 된다.
“짐이 복이 없어 아들을 얻지 못하였으니, 원컨대 대덕은 제석(帝釋)님께 청하여 아들을 두게 해 주시오.”
표훈 스님은 경덕왕의 심부름꾼이 되어 하늘에 올라갔다.
“제석님이시여, 우리나라 서라벌의 임금이 아들이 없나이다. 아들을 낳게해 주소서.”
“딸을 구한다면 이는 좋으나 아들이라면 낳을 수가 없느니라.”
표훈 스님은 제석의 대답을 경덕왕에게 전했다.
“딸을 바꾸어 아들로 만들기를 바라오.”
표훈 스님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 제석에게 그와 같이 청했다.
“딸이면 안 되고 굳이 아들로 바꾸어 달라고 하나이다.”
“아무리 서라벌의 임금이라 하더라도 하늘의 일까지 마음대로 하려 하다니 대단히 못마땅한 일이로다.”
그러나 경덕왕은 표훈 스님의 말을 듣고도 대를 이을 아들을 낳고자 하는 전제군주의 집착을 포기하지 못했다. 표훈 스님은 세번째로 제석에게 올라가서 경덕왕의 소원을 다시 사뢴다.
“정히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 나라와 백성의 안위보다도 자기 자신의 영화만을 생각하다니, 그 나라가 필경 앞으로 위태로우리라.”
이렇게 하여 태어난 아들이 통일신라의 사회가 본격적으로 쇠퇴해가기 시작하는 하대(下代)의 첫 임금인 혜공왕(惠恭王)이다.
“불국사의 화엄 대덕 표훈 스님의 책임도 있는 거야. 여자가 될 것을 남자로 만들어 놓으니 맨날 여자놀음이나 하고 정사(政事)를 살피지 않으니 백성들이 편히 살 수가 있나?”
“제석님이 표훈 스님에게도 혼을 내줬다는구먼. 하늘과 사람의 일이 다른데 천기(天機)를 누설하면서 다닌다고 말이야.”
“공부 많이 하신 도인 스님이라면 응당 욕심을 버리고 이치에 따르며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도록 간언(課言)을 해야지, ‘아들이나 낳아주라’고 왔다 갔다 하니 제석님도 그냥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표훈 스님 이후로는 신라에서 성인이 나오지도 못했고 나라도 망해갔다.

2
“미륵 부처님이시여. 삼가 저의 정성으로 달인 차(茶)공양을 받으옵소서. 미륵 부처님이시여, 어서 하생(下生)하셔서 이 서라벌의 백성들을 구하소서. 어서 오셔서 용화(龍華)세계를 이루어 주소서.”
남산(南山) 삼화령(三花嶺) 생의사(生義寺)에서 미륵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며 기도하는 스님이 있었다. 그가 충담(忠談) 스님. 이 삼화령의 미륵 부처님은 200년 전 선덕여왕 때 생의 스님이 꿈의 계시를 받고 땅 속에서 파내다가 모시게 되었다.
“충담 스님, 미륵 부처님이 오시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요?”
“그럼.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미륵 부처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어야지.”
삼화령에서 만난 젊은 화랑(花郞)들을 뒤로 하고 성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충담 스님을 경덕왕이 귀정문(歸正門)의 누각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 오시는 저 스님을 좀 모시고 오너라.”
신하를 따라서 누더기를 걸치고 어깨에 삼태기를 메고 누각 위로 올라온 충담 스님에게 경덕왕이 물었다.
“스님은 누구이시오?”
“충담이라고 합니다.”
“스님이 기파랑(耆婆郞)을 칭찬하는 사뇌가(詞腦歌)를 지은 그 스님인가요?”
“그렇습니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해마다 삼월 삼짇날(음력 삼월 삼일)과 중양철(음력 9월 9일)에는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 부처님께 공양을 올립니다. 오늘도 남산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짐에게도 차를 좀 나눠 주시겠읍니까?”
충담 스님은 이에 차를 끓여서 주었다.
“차의 맛이 참 기이하군요. 이상한 향기가 가득 차 오릅니다.”
“차의 맛이 본래 그렇습니다.”
“짐을 위해서도 백성을 편안히 하는 이치를 사뇌가로 지어 주시오.”
“그렇게 하겠읍니다.”
이때 충담 스님이 지어서 전제군주 경덕왕을 충고한 노래가 ‘안민가(安民歌)’이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 지면 나라는 태평하리라.”
왕은 충담 스님의 노래를 듣고 크게 기뻐했다.
“대단히 훌륭한 노래요. 원컨대, 짐을 위해서 왕사(王師)가 되어 주시오.”
“저의 갈 길은 따로 있습니다.”
“짐의 곁에 있으면서 수시로 백성을 편안히 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오.”
“제가 읊어 드린 안민가의 이치를 언제나 되새기고, 임금이 임금답게 정사를 베푸시면 왕사가 없어도 있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충담 스님은 끝내 왕사를 거절하고 경덕왕을 작별했다. 충담스님이 경덕왕에게 시로써 민의(民意)를 전달하고 백성을 평안히 하도록 한 일은 서라벌 곳곳으로 입과 입을 통해서 전해졌다.
“사뇌가를 잘 하시는 그 스님, 충담스님 말이야. 임금을 만나서 임금은 임금다와야 한다고 큰 소리 치고 왔대.”
“저번에는 화랑들의 마음을 키우는 사뇌가를 지어서 격려하시더니 말이야”
“참 훌륭하신 스님이네. 스님들이 모두 그랬으면 좋겠어.”
“복(福)에 없는 아들이나 낳게 해준 불국사의 그 무슨 큰스님보다도 훌륭한 스님이네.”
“이제부터는 우리네들도 충담 스님처럼 삼화령의 미륵 부처님께 기도를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