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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대장경판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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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이야기 - 성안┃팔만대장경 보존국장 2011년 03월 349호
1. 대장경이란

불교성전을 집대성한 경장經藏ㆍ율장律藏ㆍ논장論藏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일체경一切經이라고도 한다. 경장이란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고, 율장은 제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과 공동생활에 필요한 규범을 적어놓은 것이고, 논장은 위의 ‘경’과 ‘율’에 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을 달아 놓은 것으로 역사적 시기나 지역에 따라 수량의 차이를 보인다.

2. 해인사 대장경판의 명칭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판대장경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고려대장도감판高麗大藏都監板, 해인사대장경海印寺大藏經, 고려고종관판대장경高麗高宗官版大藏經, 강화경판고려대장경江華京板高麗大藏經등으로 알려져 있다.
“팔만대장경”이라는 현판이 해인사 장경판전 입구에 한자로 쓰여져 있는데, 이는 대장경의 판수가 팔만여 장에 이르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불교에서 아주 많은 것을 표현할 때 팔만사천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며, 또한 가없이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 법문이라고 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고려대장경”이라는 명칭은 경판의 조성 시기가 고려시대에 기인한다. 해인사 대장경판의 공식적인 마지막 인경은 설제設題 김두호金斗鎬가 문공부의 인출 허가를 받아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총13질을 하였다. 이때 동국대학교에서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의 보존과 보급을 위해 1957년에 시작하여 1971년까지 25권을 내놓고 중단상태에 있던 고려대장경 영인작업을 동국대 이선근총장이 취임하여 착수 1년만인 1976년 6월 10일에 완간시켜 총19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총48권으로 구성된 영인 축소판을 “고려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여 세계 각 나라의 유명 도서관에 보냈다.
“재조대장경”은 현종 2년(1011)부터 선종 4년(1087)까지 76년 만에 조성되어진 초조고려대장경初雕高麗大藏經이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보관하여 오다가 고종 19년(1232)에 살례탑撒禮塔이 이끄는 몽고 2차 침입 때 의천의 “고려교장”과 함께 불에 타 버린 후 다시 조성하였으므로 그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고려대장도감판”은 고려시대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조성되어진 경판이라는 뜻이며, “해인사대장경”이라는 것은 대장경판이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려고종관판대장경\"은 고려 고종 때 국가 기구인 대장․분사도감에서 조성되었다는데 기인하며, \"강화경판고려대장경\"은 몽고 침략으로 수도를 강화경江華京으로 옮긴 시기에 몽고에 의해 소실된 고려대장경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조성하였다는 역사․문화적 성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으로 “팔만대장경”이라고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이 해인사대장경판 가운데 사사간판을 제외한 경판은 1934년 8월 27일 일제시대 조선 총독부에서 국보로 지정한 것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1962년 12월 20일에 정부가 다시 국보國寶 제32호로 합천해인사대장경판을 지정하였고, 유네스코는 그 경판의 가치를 인정하여 해인사 고려대장경판과 제경판을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6.13∼15, 남아공 프레토리아)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