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점득이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01월 71호
그 날, 어머니가 모과나무골에 가 보니 외숙모는 안방 문지방이 걸터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었다. 건너편 앞산에는 흙은 진달래가 아지랑이 속에 함뿍 피어 아름다왔다.
“형님, 많이 아프세요?”
어머니는 봉당 디돌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난 이제 죽을려나 봐.”
외숙모는 목이 메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별말씀을 다 하셔요. 애들은 어쩌고 그런 약한 마음을 가지세요.”
“승호는 이젠 에미도 잊어버렸나 보지?”
“그렇지 않아요. 승호는 돌아올 거에요. 그렇게 무던하고 알뜰한 아이가 어떻게 형님을 잊어버리겠어요.”
“승호하고 한동갑인 호태하고 동수는 토벌대로 나갔단다. 우리 승호 잡으러 간 거야. 한마을 동무끼리 적이 되었구나.”
외숙모는 눈물을 훔쳤다.
“장터에서도 그랬어요, 동생은 빨갱이고 형은 경찰이고, 그렇게 서로 총질을 하면서 싸웠대요. 하늘이 무섭지 않나봐요.”
“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외숙모는 몸을 돌이키면서 비스듬히 방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승호야아 …”
냇가 보리밭에서 청승맞게 종달이가 지절대었다.
어머니는 외가집에 머물기로 했다. 대신 승기는 점득이네 장터 집에 함께 있게 되었다. 저녁때 돌아온 어머니가 점례와 정득이한테 자세히 얘기했다.
“외숙모님 일어나실 때까지 엄마는 외가집에 가서 병구완을 해야 해. 점례는 엄마 대신 밥짓고 빨래하고 학교에 갈 수 있겠지 ?”
“예.”
점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둘이서 적적하니까 승기하고 같이 있도록 해.”
외숙부는 앞산 뙈기밭 두 마지기를 팔아 외숙모의 약을 지어 왔다. 그 해도 역시 보릿고개는 힘들고 고달팠다.
판순이는 날씨가 따뜻해지자 저녁마다 뜰에 앉아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점례야”
“응.”
“추월이 언니는 온다고 해 놓고 왜 안 올까?”
“무척 바쁠 텐데 어떻게 찾아오겠니?”
“뭐, 벌써 잊어버렸을거야.”
그런데, 그 추월이 언니가 뜻밖에도 열흘 뒤 일요일날 판순이네 오두막에 찾아왔다. 할머니와 함께 아이들 다섯이서 앞산 너머 싸리나무골에서 땔나무를 해 가지고 돌아와, 손을 씻고 삶은 도토리를 먹고 있을 때였다.
처음엔 추월이 언니인지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하얀 옥양목 저고리에 까만 통치마를 짧게 입었기 때문에 마치 국민학교 선생님 같았다. 게다가 한쪽 손에 얌전하게, 뚜껑 빛깔이 까만 책을 두 권 들고 있었다.
“이 댁에 판순이란 애가 있나요?”
판순이는 그제서야 추월이 언니를 알아보았다.
“어머나! 추월이 언니 왔다!”
판순이는 하늘이 깨어질 듯 큰소리로 떠들며 쫓아나갔다.
“추월이라니? 그 착하다는 기생이란 말이냐?”
할머니는 영문을 몰라서 조그맣게 중얼거리듯 점례한테 물었다.
“예, 맞아요. 동쪽 장터 끝에 있는 큰대문 술집에 있어요.”
점례는 얼른 할머니 귀에다 입을 대고 가르쳐 드렸다.
“할머니, 안녕하셔요?”
추월이 공손하게 할머니께 절을 했다.
“예. 색시, 방에 들어오시구려.”
할머니가 조금 더듬거리며 방으로 안내했다. 추월이는 서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너덜한 짚자리가 깔린 방안은 어둡고 더러웠다. 종대와 승기, 점득이는 어리둥절한 채 모두 자세를 고쳐 꿇어앉았다. 추월이가 모두를 잠깐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할머니, 저는 장터에 있는 기생 추월이에요. 본래 이름은 탄실이지만 모두가 추월이라 불러요. 가을달처럼 곱다고 그러지만 저는 탄실이가 더 좋아요.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니까요.”
“그래요. 추월이도 좋지만 탄실이도 좋구려. 어떻게 이렇게 누추한 집에 찾아왔수?”
할머니는 궁금해서 물었다.
“내가 추월이 언니한테 찾아갔었어. 나도 기생이 되겠다고 했는 걸.”
판순이가 앞질러 털어 놓았다. 할머니는 며철 전에 부엌 모퉁이에서 판순이가 울며불며 지껄이던 넋두리 생각이 났다.
“쯧쯧, 넌 겁도 없이 나오는 대로 남한테까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냐. 원 참, 철없는 것이…”
할머니는 어처구니없어 울상만 지었다
“할머니, 판순이가 기특하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기생들을 욕하고 싫어하지만 사람은 살다 보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요. 저는 기생이지만 나쁘게 살지는 않아요.”
“알고 있다오. 추월이란 기생은 효녀라고 소문이 나 있으니까요.”
“이젠 효녀도 아니에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수?”
“예, 벌써 일년이 지났어요. 오래 편찮으셨기 때문에 고칠 수 없었어요.”
추월이는 고개를 잠깐 떨구었다.
“가없어라. 그럼 색시는 다른 가족은 없나요?”
할머니가 안타깝게 물었다.
“없어요, 어머니는 제가 세살 때 돌아가셨거든요.”
“쯧쯧, 정말 효녀구나. 심 청이와 꼭 같구려.”
추월이는 쓸쓸하게 웃었다.
“심 청이는 아버지 눈을 뜨게 해 드렸잖아요. 저는 아버지 병환도 고쳐 드리지 못했어요.”
“아니라오. 끝이야 어떻든 정성은 같은 거요. 정말 색시는 얼굴도 참하고 마음씨도 착하구려.”
추월이는 겸연쩍은 듯이 얼굴을 붉혔다.
“언니, 그건 무슨 책이에요?”
판순이가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이 책은 성경책이야.”
“성경책이 뭔데요?”
“하느님의 말씀이 적힌 책이지.”
“어머나! 언니, 예배당에 다니나요?”
“그래, 벌써부터 성경책을 읽었지만 예배당은 한 달 전부터 나가고 있어.”
모두들 눈이 둥그래져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배당엔 가난하고 궂은 일하는 사람은 못 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추월이는 그쯤하고는 일어났다.
“판순아, 이담에 또 올께. 그 때 다시 얘기하자.”
“나도 추월이 언니처럼 착한 사람이 될 거에요.”
“이젠 추월이라 하지 말고 탄실 언니라 불러 줘.”
“탄실 언니!”
판순이와 탄실이는 마주보고 웃었다.
다음 일요일 날, 탄실이는 아이들의 공책과 연필을 사가지고 왔다. 할머니께는 하얀 고무신 한 컬레를 드렸다.
이렇게 해서 점득이 남매와 판순이 남매는 탄실이와 가까와졌고 친 오누이같이 정이 들었다. 탄실이는 이따금 누룽밥도 싸 오고, 헌 옷가지도 가지고 왔다.
아이들은 탄실이를 따라 장터 마을 언덕배기 예배당에 나갔다. 향나무가 심겨진 우물 곁을 지나 돌층계를 올라가는 예배당은 이상한 곳이었지만 차츰 익숙해졌다. 판순이는 찬송가를 아주 큰 소리로 불렀고 점득이는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로 곱게 불렀다.
탄실이는 점득이네 아이들뿐만 아니라 장터의 아이들과 건넛마을 아이들까지 찾아다니며 예배당에 데리고 갔다. 그 아이들에게 탄실이는 예쁜 목소리로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주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모과나무골 외숙모는 조금도 건강이 좋아지지 않았다.
가을이 오면서 나라안 여기저기서 어지럽고 시끄러운 일들이 일어났다. 빨갱이들이 일으키는 난리라고 했다. 전라도에서도 경상도에서도 온통 나라안이 시끄러웠다. 판순이네 할머니는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를 기다리며 밤마다 베갯잇을 눈물로 적셨다.
종대는 할머나의 아픈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를 고생만 시키는 것이 죄스럽고 슬펐다. 귀리죽을 끓이면 종대는 죽건더기를 되도록 할머니께 많이 담아 드렸다. 그러나 판순이는 말로만 할머니를 위한다고 떠들 뿐, 행동은 오히려 거꾸로 했다.
“오빠, 내가 죽 풀게.”
판순이는 한쪽이 닳아서 우묵한 바가지를 낼름 들고죽을 퍼 담았다. 멀겋게 묽은 죽물을 위쪽 것만 슬쩍슬쩍 퍼서 할머니께 드리고, 종대 오빠 것도 그렇게 퍼 담았다. 맨 나중에 밑에 가라앉은 찌꺼기를 자기 주발에다 퍼 담으면 건더기는 판순이가 다 차지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욕심꾸러기야, 건더기는 너 혼자 다 먹잖니?”
종대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지만 판순이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차례차례 펐는데 뭐”
“차례차례 푸더라도 바가지를 밑바닥까지 담그어 푸면 건더기가 나올 것 아냐.”
“그럼, 이담엔 바가지를 밑바닥까지 푹 잠기게 해서 풀께.”
판순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 끼니 때면 꾀를 부려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고 기를 썼다. 하기야 핀순이가 그 죽을 혼자서 다 먹어도 배가 차지 않을 것이었다. 할머니의 손으로 꼭 한줌씩의 귀리를 디딜방아에 꾹꾹 빻아 물을 붓고 꿇이는 죽을 아침 저녁 두 끼밖에 먹을 수 없으니, 배는 고프다 못해 말라 비틀어졌다.
건넌방의 점득이네는 더 애처로왔다. 승기도 승호 형처럼 착했고 점득이도 얌전했기 때문에 죽을 먹을 때 셋이서 잘 나누어 먹었다.
“승기 오빠, 더 먹어.”
점례가 한 숟가락이라도 더 떠 주변 승기는 점례 그릇에 도로 덜어 주었다.
“아니야, 점례도 모자라는데 날 더 주면 어쩌니?”
“오빠는 나보다 키도 크고 몸집도 크잖아?”
승기는 승호 형처럼 몸이 컸다. 어떻게 보면 승호와 너무도 닮아. 나이 들면서 마음씨까지 의젓해지는 것이었다.
‘승호 형만 돌아오고 어머니 병환만 나으면 좋을 텐데.’
아무리 어린 나이지만 역시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에 자라는 아이들은 누구나 일찍 어른스러워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꿀밤이나 죽이나 아무 것이나 먹고 배를 채우고 나면 지껄이고 노래하고 뛰고 놀았다. 일요일이면 다젓이서 모과나무골까지 뛰어가서 점득이 외가집에서 호박풀떼기도 얻어먹고 감나무의 감도 따 먹었다.
추수가 끝난 어느 일요일 날 외가집에 갔더니 일부러 외숙부님이 시켜서 쌀밥으로 한 그릇씩 점심을 대접받았다. 판순이는 커다란 입에 밥숟가락을 듬뿍 떠서 한 그릇의 밥을 금방 다 먹어 버렸다.
“옛다, 판순이 더 먹어라.”
점득이네 어머니가 바가지 밥을 그대로 내밀었다. 판순이는 숨이 가쁘도록 쌀밥을 먹었다.
돌아올 때 아이들은 조금씩 쌀을 얻어들고 왔다.
“가지고 가서 할머님께 밥을 지어 드려라.”
어머니가 그렇게 일렀다. 그러나 가지고 온 쌀을 할머니는 어디엔가 감춰 버리고 내놓지 않있다.
“할머니 밥 해 드리라고 주신 거에요.”
종대가 할머니께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손을 내 저었다.
“한꺼번에 먹어 버리면 어려울 때 어쩌겠니? 쌀은 귀한 것이니 아껴 먹어야지.”
그 쌀은 결국 한줌씩 꺼내어 멀겋게 죽을 쑤어 먹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배고픈 세월이 이어질지,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갈 뿐이었다. 아버지를 소련군에게 잃은 점득이네와 아버지가 징용에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판순이네, 그리고 사랑하는 형이 빨갱이가 되어 집을 나가 버리고 어머니는 병을 앓고 있는 승기네, 기생의 몸으로 그래도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 탄실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더 큰 불행이 찾아온 것은 1950년 6월이었다.
멀리 미군 병사가 지키고 있다는 삼팔선 쪽에서 끊임없이 대포소리, 총소리가 나더니, 기어코 전쟁이 터지고 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