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존 때의 장애인 복지
시각장애
부처님의 십대 제자가운데 장애인이 있었다면 많은 불자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천안제일天眼第一 아냐율은 요즘의 사회 복지 용어로 시각 장애인이다. 아냐율은 카필라성 출신으로 곡반왕의 아들이다. 부처님께서 아냐율이 천안제일이라고 하셨는데, 천안어란 멀고 가까움, 안과 밖, 낮과 밤을 불문하고 공간을 초월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주 작은 먼지에서부터 삼천대천 세계를 두루 볼 수 있는 눈을 말한다. 아냐율이 천안을 갖게 된 것은 실명失明했기 때문이다. 아냐율이 실명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아냐율이 깜빡 잠이 들었다. 그것을 본 부처님은 아냐율에게 “자네는 무엇 때문에 출가했는 가?”하고 주의를 주었다. 이에 아냐율은 “지금부터 부처님 앞에서는 잠을 자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하고 불안不眼으로 정진했다. 그래서 아냐율의 눈에 눈병이 났다. 부처님께서 치료 받기를 권했지만 아냐율은 거절하고 계속 정진을 하다가 완전히 실명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냐율은 그 실명으로 천안을 얻게 되었다. 아냐율의 설명은 지극한 노력으로 된 것이지 전생의 업 때문은 아니었다. 실명은 궁극적인 정진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설명으로 천안을 얻게 된 것이다. 실명은 빛을 앓은 것이 아니라 우리 눈이 할 수 없는 인식 기능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부처님께서도 실명을 한 제자에게 각별한 자비를 베풀어 눈이 어두운 아냐율의 바늘귀를 끼워 주셨다고 한다.
정신지체
주리반득은 길에서 태어났다. 여행을 하다가 애를 낳았는데 쌍둥이를 낳았으니 형은 반득이고 동생은 주리반득 이었다. 주리반득은 머리가 아둔해서 삼 년 동안 수행을 했지만 경전 한 구절도 암송할 수 없었다. 부처님 때에는 요즘처럼 경전이 없고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모두 암송을 해야 했다. 그러나 정신지체자였던 주리반득은 한 구절의 법문도 암송하지 못하고 변소 청소만 활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주리반득은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해서 청소를 하다 말고 엉엉 울었다. 지나가던 부처님이 울고 있는 까닭을 묻자 자기는 아무래도 부처님 법을 배울 수 없을 것 같다고 한탄했다. 그런 주리반득에게 부처님은 청소와 빗자루라는 말만 외우게 했다. 그런데 주리반득은 청소를 외우면 빗자루를 잊어버리고 빗자루를 외우면 청소를 잊어버렸다. 그런 주리반득에게 부처님은 수행자들의 방을 청소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주리반득은 겸손하게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자기 동료인 수행자들의 방을 청소했다. 주리반득은 아주 열심히 청소를 해 주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주리반득은 그 깨달음을 부처님께 전했다. “부처님, 빗자루는 이 세상의 더러움을 쓸어버리고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 사람도 지혜의 빗자루로 마음 속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 말에 부처님은 환희 웃으며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고 기뻐해 주셨다. 그 뒤 주리반득은 동료들 앞에 나가 설법을 할 만큼 존경 받는 수행자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바사익 왕이 크게 놀라며 까닭을 물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많이 배우는 것을 요하지 않습니다. 행하는 것이 으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애인에 대해 그릇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견해다.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보이신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앞의 사례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비사상을 가진 불교가 사회 복지 실천에서 타 종교와 견주어 복지시설 가운데 불교계 시설은 입소 시설 백팔십 곳 가운데 여섯 곳으로 3퍼센트, 이용 시설 일흔네 곳 가운데 다섯 곳으로 7퍼센트에 불과하다.
문제 점
업業의 잘못된 해석
모든 인간은 장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일을 업보로 돌리고 장애인은 업이 많아서 장애인이 되었다는 그릇된 편견을 갖는다. 따라서 장애인은 정상인과 다르게 업보가 많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늙는 것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중요한 것은 늙음도 장애라는 사실이다.
경제적 요인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려면 많은 경제 부담을 갖는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려면 정상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보다도 배 이상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불교계에서 쉽게 장애인 복지사업을 시행하기 어려운 요인이기도 하다.
사회적 요인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에는 많은 국민의 저항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혐오 시설이라고 해서 특히 장애인시설은 반대가 심한 것이 요즘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개선방안
불교는 자비의 종교다. 지혜란 발고여락技苦與樂이니 일체중생의 고통을 없애 주고 기쁨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자비는 언어나 문자에 머문다면 그것은 무지비無慧悲가 되고 말 것이다. 부처님이 아냐율, 주리반득을 교화하고 제자로 삼은 까닭은 무엇인가? 「열반경」에 일체 중생에 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설한 까닭은 비록 심신의 장애를 가졌지만 그들도 또한 불성을 가진 존재요 헌법에 보장된 행복권의 추구를 위해서도 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가 바로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광덕태자경」에 보살은 중생이 없으면 부처를 이룰 수 없다고 하였다. 장애인이 있기에 우리는 작은 선심善心, 선행善行의 복을 지을 수 있는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장애인이 사회에 부담을 주는 존재,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고 이 사회에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인식되고 그들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실현할 수 있을 때 불교의 장애인 복지로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