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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고 평이한 곳에 의미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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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11년 02월 348호
선화를 이야기 하는 와중에 여러 번 이야기 하긴 했으나 붓질을 절제하여 내면의 특징을 잡아내는 기법을 감필법減筆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먹을 쓰기를 금보다 아끼고 붓질을 최대한 참고 참으며 하나의 선線이나 점에 집중하는 것이다. 선화는 감필법의 홈그라운드이다. 왜냐하면 선화禪畵가 지향하는 바가 바로 절제와 간결함이 최대치로 발현되는 ‘집중’이기 때문이다.
감필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한 소재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화가는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뜻을 충분히 공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선화가 등장하는 시점인 당나라 말부터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보다는 대상이 지닌 원래의 특징과 의미로 바로 접근하는 방법이 시도되었다.
선화의 선두주자 격인 석각石恪의 <이조조심도>에서 이미 우리는 감필을 경험한 바 있다. 선화라고 하는 새로운 경지를 열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그의 필법은 자못 호방하고 굳세어 거칠고 마치 아이들의 그림과 같이 치졸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후 대강 이백년 쯤 흘러 남송대 양해(梁楷; 중국 산둥 성山東省 둥핑東評 1140 ~ 1210경)에 이르러서는 거친 필치보다는 그 붓질이 평담한 경지로 전개되었다. 당나라 때에 이르면 불교에서 선禪은 일상적인 수행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그 후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단에서는 선화 이전에 문인들이 취미로 그리는 문인화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일견 문인화와 선화는 비슷한 소양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문인화나 선화 모두 그림의 정교함을 추구한다기 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내면의 의지나 뜻을 전하고자 하는 측면이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문인화는 문인이 그린 것이고 선화는 선승이 그린 것이므로, 문인과 선승의 학습태도가 다르니만큼 그리기에 접근하는 방식 역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저명한 미술사학자인 캐일(J. Cahill)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선화는 직관적으로 접근하며 문인들은 지적인 방식으로 회화에 접근한다. 전형적인 선화가는 주제를 몇 가지 골자로 한정시키며 그 나머지는 설명하지 않고 암시적으로 모호하게 남겨둔다.” 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접근하며 암시적으로 표현한다는 지적은 선승들의 화두와 같은 수행법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11세기 중반에 활동하던 회화 품평가인 유도순劉道醇은 《송조명화평宋朝名畵評》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그 처음과 마지막만 보자면 첫 번째가 추로구필麤鹵求筆이고, 마지막 여섯 번째가 평화구장平畵求長이다. 좀 어려운 말 같지만 해석해보자면 추로구필, 거칠고 호방한 가운데서도 필법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평화구장은 평이하고 담백한 곳에서도 심장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작품에 대입해 보자면 석각의 감필은 거칠고 호방하지만 필법이 살아있는 쪽에 속한다면 양해의 감필은 평이하고 담백하지만 여백 속에 의미를 담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도순의 회화비평이 굳이 당시 유행하던 선화를 의식해서 제시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송왕조 시절 선화 및 문인화의 등장과 유행이라는 배경이 충분히 작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