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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의 자성과 변화를 위한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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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11년 02월 348호
1월 11일 서울 청계광장, 수은주는 영하 12도를 가리켰으나 청계천 길이 바람길이 되어 칼바람이 몰아쳤다. 살을 에는 날씨였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총무원 중앙종무기관 종무원과 부설기관 종사자 300여 명이 동참해 1080배를 올리는 행사를 거행했다. ‘민생 안정과 민족문화 수호를 위한 1080배 정진’.
지난해 12월 예산안 날치기 통과 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지원 예산이 삭감된 것을 계기로 정부 예산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조계종의 자주성 회복 움직임이 활발하다. 1080배 정진도 이런 움직임 가운데 하나이다. 1080배는 온몸을 구부렸다 펴는 단순한 과정을 3시간 가까이 반복하는 육체적으로 힘든 고행苦行이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일념으로 절을 함으로써 마침내 마음마저 홀가분하게 비워지면서 새로운 의지를 담아내게 된다.
어떤 마음을 담아낸 것일까. 이날 발표한 발원문에 따르면, 자성과 변화, 정진이다. “1배, 1배 서두르지 않고 거듭하면 곧 1080배가 되듯, 긴 호흡으로 한 발, 한 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내딛겠습니다. 오늘 국민 여러분들께 올리는 참회와 발원을 기점으로 현재 상황을 약으로 삼아 불교계가, 조계종단이 먼저 자성하고 변화하겠습니다. 1700년 이 땅에 뿌리내려온 한국불교의 오늘이 부끄럽지 않고 모든 이웃과 인류에 희망과 행복을 안겨주는 내일이 올 수 있도록 정진 또 정진, 발원합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변화와 함께 종도들의 결집을 강조했다. 자승스님은 1080배 정진 다음 날인 1월 11일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에서 20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동참한 가운데 열린 대전 비구니 청림회 주최 ‘부처님 성도절 대법회’에서 법문을 통해 변화와 결집을 당부했다. “불교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변화하고 결집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2000만 불자가 결집하지 못하는 한 여․야 구분 없이 정치인들은 불교를 추수 후 떨어진 이삭줍기 식으로 홀대할 것이다. 현재의 민족문화 수호운동이 여당이 싫거나 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불교 문화재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문화재를 위해 불교를 지원했다는 식의 접근이라면 야당도 언제든지 경책할 수 있을 것이다. 성도절을 맞아 그동안 자리에 비해 소홀했던 이타행도 열심히 실천하겠다고 서원해야 한다. 사부대중 모두가 우리 문화재를 스스로 지키겠다는 인식의 전환과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서원을 하는 법회가 됐으면 한다.”
조계종의 자성, 변화 움직임은 중앙종무기관에 한정되지 않고 확산 중에 있다. 1월 11일 부산 코모도호텔에서 열린 조계종 부산연합회 발기인대회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주었다. 이날 대회에는 부산지역의 스님 200여 명이 동참했는데, 선언문 내용이 주목된다. “민중을 등진 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세상을 저버린 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황금은 써야 빛이 나고 진리는 세상에 쏟아부어야 그 가치가 있다. 허공의 세계가 다 하고 중생의 세계가 다할 때까지 세상을 맑고 아름답게 꾸며가보겠다.”
연합회 초대회장 수불스님도 “부산불교 발전을 위해 조계종 수행자답게 물러섬 없는 정진으로 부처님 법 전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면서 수행자의 본래면목을 세우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포교원장 혜총스님은 “출가수행자로서 초심의 가르침과 수계의 정신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면서 “민족문화를 외면하고 종교편향이 자행되는 현실을 직시하자”고 말했다. 이명박정부 들어서 거세게 나타나고 있는 반문화적 반종교적 행태를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예산안 날치기․졸속 처리 이후 조계종의 지향은 자주 종단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 이웃과 인류에 희망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본래면목을 되찾아 자비정신을 세상에 회향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불교사를 돌이켜보면, 국가불교, 왕실불교의 테두리에 갇혀 불교 본래의 모습은 일그러졌고, 고려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타락의 길을 걸었으며, 조선조 500년 동안은 척불정책으로 산중불교로 축소됐다. 일제하에서는 식민지불교, 해방을 맞았으나 정화 또는 분규를 치르면서 에너지를 소진했다. 제 한몸 추수리기에도 힘겨운 과정을 거쳐왔으니, 중생을 위한 불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원효, 의상, 보조, 사명, 용성, 만해, 성철스님 등의 선각들이 있었으니, 한국불교의 법등은 면면히 이어져왔다.
최근 조계종의 움직임에 대해 종단 안팎에서 큰 기대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불교사에서 자주성의 기치를 이만큼 높이 쳐든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기대가 큰 만큼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진해 종단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중생들의 행복에 기여하겠다는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을 때까지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 위한 진정성과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와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많은 종도들은 지금 총무원의 행보에 동의하면서도 선뜻 마음 내기를 주저하고 있다. 이 점을 별것 아닌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먼저 종도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총무원 집행부의 일련의 행보가 자주적 종단을 세우기 위한 고행임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총무원은 첫째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2008년 8월 27일 서울광장에 21만 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해 열었던 ‘헌법 파괴-종교 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뚜렷이 기억한다. 이명박정부의 종교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불사의 현장이었다. 4개 항의 대정부 요구사항을 채택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됐고, 많은 불자들은 그 여름의 뜨거웠던 경험이 어느 사이엔가 상실감으로 뒤바뀌는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다. 8.27범불교대회에서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참회하고 사회적 고통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 적극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범불교도대회는 종교화합과 국민통합을 위한 불교인의 실천을 알리는 자리입니다. 우리 불교인이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한 사회적 역할을 자각하고 참회하는 장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고통과 민족의 장래를 위한 논의와 실천에 적극 나서고자 하는 결심의 마당입니다. 모든 종교인, 국민 여러분의 지혜와 힘이 필요합니다.”
지난 11일 열렸던 ‘1080배 정진’에서 발표한 결의문과 같은 내용이다. 2년 시간이 지났지만 조계종은 여전히 똑같은 내용으로 참회와 다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총무원의 진정성이 자주 종단을 향한 행보의 첫걸음일 수밖에 없다.
둘째는 고통 감수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변화에 반드시 수반하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함과 함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당장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에 정부 예산 지원이 축소되는데, 이에 따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어야 한다. 반찬 가지 수를 줄이고, 승용차를 타기보다는 걷겠으며, 실내온도를 20도 아래로 하여 지출을 줄이겠으며, 사찰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신도들에게 밝혀 신도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겠다는 등의 계획이 나와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정부가 슬그머니 예산을 배정해도, “국민들의 어려움을 줄여주는 일에 쓰시오” 라고 거절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뒤따르지 않으면 구호에 머물며, 많은 대중은 또다시 동원된 대중으로 전락한다. 우리 스스로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반종단적 처사로 비난받을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