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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의 위성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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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1년 02월 348호
아프가니스탄 바로 서쪽 옆에는 요즘 아이들 하는 말로 ‘듣보잡’인 나라가 하나 있다. 바로 ‘투르크메니스탄.’ 나라 명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이 이 나라는 ‘투르크멘’ 사람들이 사는 땅 (스탄)’ 인 것이다. 이 나라는 서방 기자들 사이에서 ‘중앙아시아의 북한’으로 알려져 있는 나라다. 그만큼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필자는 이 투르크멘족의 나라를 두 번 갔었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 이야기보따리를 풀으려 한다.
첫 번째 공통점은 ‘독재자의 우상화’이다. 지금은 사망했지만, 이 나라의 전 대통령이었던 사파르무랏 니야조프는 구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부터 2006년 사망할 때까지 16년이라는 세월동안 독재자로 군림했으며, 재위 당시 자신의 동상을 전국에 수백 개 이상 세우고 각 학교 및 관공서, 공원, 심지어 시장과 호텔에도 자신의 초상화를 걸게 했다.
수도 아슈하바드에 있는 ‘중립국 아치’ 건물 꼭대기에는 자신의 금동상을 세우고 태양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게 설계했다. (지금은 금동상이 철거됐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 뿐이 아니다. 재위 시 ‘루흐마나’라는 철학책을 여러권 지어 투르크멘 국민들이 이 책을 달달 외우게 했다. 하물며 루흐마나 문제를 풀지 못하면 고등학교 졸업을 못했고, 운전면허 시험에도 떨어뜨리게 했다. 이슬람교 성전인 ‘쿠란’과 자신의 루흐마나를 동일시해 모스크에도 쿠란과 루흐마나를 나란히 배치토록 했다. 자신을 신격화 한 것이다.
니야조프는 이 책도 동상을 만들었다. 아슈하바드의 공원에는 대형 루흐마나가 니야조프 동상 근처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각종 행사 때도 대형 루흐마나 모형판이 등장했다.
국민들의 자유도 당연히 억압됐다. 국민들은 국내 여행은 할 수 있었으나 이주의 자유는 엄격히 제한됐다. 인터넷은 니야조프 즉위당시 특급 호텔 몇 군데에만 있었으며, 그마저도 당연히 검열됐다. 모든 국민들은 그를 ‘위대하신 수령님’ 이라고 찬양했으며, 시내 곳곳에는 그의 만수무강을 비는 선전문구들이 수두룩했다. 그는 그 자신을 ‘투르크멘의 아버지’라고 했으며, 한 도시이름도 그 별칭으로 바꿔, ‘투르크멘바시’라고 지었다. 수도의 대통령궁을 비롯, 모든 관공서는 터키에서 대리석을 공수해와 으리으리하게 지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더더구나 없었다.
니야조프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엄청난 석유와 가스 매장량으로 벌어들인 수익 중 20억 달러 이상을 개인이 착복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즉위 당시 일인당 국민총생산량은 5천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우리나라는 약 2만 달러).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계속 억압당하면서 살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떻게 일인독재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체제가 유지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한 번도 폭발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한 가지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바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위성접시를 없애면 당장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이었다.
실제로 투르크메니스탄 어디를 가든지 위성접시는 각 가정에 있었고,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수많은 러시아 케이블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통제된 사회에 살고 있었지만 주민들은 러시아 방송을 보면서 그들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들과 사는 세계는 딴판으로 달라도, 방송을 보며 제한된 자유를 조금이나마 만끽하는 것 같았다. TV 없이는 못 사는 곳이 바로 투르크메니스탄이었던 것.
투르크메니스탄의 사례를 보며 우리를 생각해 본다. 요즘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계기로 남과 북이 문화교류를 통한 이해와 협력의 장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