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행을 즐겨라, 하지만 발자취를 남기지 말라.”(인디언의 십 계명 중 10번째 계명)
육교 위에 늙은 거지가 나타난 것이 약 3년 전쯤 되는 것 같다.
서울에서 잘 나가는 동네에 초특급 호텔이 들어섰을 때, 8차선 대로를 가로질러 아름다운 육교가 세워졌다.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 했다는 이 육교는 보행자들을 수고롭게 오르고 내리게 하는 무지막지한 육교가 아니라, 한번쯤은 그 위에 서 있고 싶은 아름다운 구름다리이다. 초창기만 해도 육교 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육교의 북쪽에는 대형 백화점, 몰, 호텔 등이 들어서 있어 서울의 어느 곳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많은 돈들이 모이는 곳이다. 육교의 북쪽에서 우리는 돈만 있으면 찬란하고 편안한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그런데 육교의 남쪽 계단을 내려가면 어느 유수한 대학 병원의 영안실과 바로 연결된다. 황홀한 도시의 전경 맞은편에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거처가 있다.
이곳에 한 거지가 나타나자마자,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 다리가 거지에게는 명당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이 다리를 건너, 절친하게 지냈거나, 간혹 미워했거나, 어쩌면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인 죽은 자와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다리를 건너간다. 그들은 장례식장에서 자신이 알건 모르건 간에 무엇인가를 느낄 것이다. 그 후 그들은 다시 다리를 건너 각자가 가야할 곳으로 간다. 그런 곳에 어느 날부터 깡마른 할아버지 거지가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 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삶에서 죽음을 만나러 들어갈 때, 늙은 거지에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만나고 삶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보게 되는 거지는 그냥 거지가 아니다. 늙고 가난하고, 적어도 건강하게는 보이지 않는 그 거지에게서 사람들은 가난하고, 늙고 병든 자신을 겹쳐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아주머니들 보다는 아저씨들이, 동전보다는 지폐를, 던져 주기보다는 겸손하게 놓아두고 간다. 그런데 늙은 거지는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고, 살며시 주먹을 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를 보았던 초창기에 나는 그가 적어도 영리한 거지인 것 같았다. 그는 천혜의 장소를 발견하고, 거기를 자기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육교 북단 바로 밑에는 그곳을 관리하는 관리인도 있는데 쫓겨나지 않고 자기자리에 매일 나왔다. 그 당시 나는 그의 빨간 바구니를 얼핏 보고서는 한 달 수입을 대략 계산해 보았는데 대단했다. 혹시 직업적으로 거지를 하나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는 거지라고 보기에는 매우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은 여느 거지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결연한 빛이 돌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구걸을 하지 않았다. 그는 무관심한 것인지, 보고 싶지 않은 것인지 움푹 팬 눈을 항상 감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돈도 관리하지 않았다. 다른 거지들은 큰돈을 주머니 같은 곳에 넣고, 바구니에는 동전만을 두는데, 그는 자기 수입을 나한테까지 들킬 정도였다.
그러나 그 해 겨울 무렵부터 나는 늙은 거지를 불쌍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육교 위 늙은 거지의 첫 겨울은 올해만큼은 아니지만 참 추웠다. 백화점 겨울 정기세일에서 옷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보았다. 평지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육교는 칼바람이 불었다. 그곳에서 그는 약간은 두툼해 보이는 가을 옷을 입고, 눈을 살포시 감은 채,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육교를 지키는 신장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매일 거기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한 번도 그에게 돈을 준 적이 없었다. 수입이 짭짤하다고 계산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거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엄동설한에도 육교의 길목을 지켜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가 늙은 것이 슬펐고, 그가 거지가 될 만큼 가난한 것이 안타까웠고, 그가 구걸을 해 돈을 쥐는데도 변변한 겨울옷을 하나 장만할 수 없는 것이 화가 났다. 집에서 동생이 이제는 입지 않는 스키파커를 챙겨 육교에 다시 갔다. 그런데 그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으, 그지는 그지인가 보다. 따뜻한 옷을 얻을 팔자도 못 되니” 늙은 거지가 안타까웠다. 그는 결국 그 해의 겨울을 낡고 얇은 가을 옷으로 나야했다.
요즘 나는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늙은 거지는 거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나는 그를 ‘성자가 되고 싶은 거지’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그는 여름의 장마철과 겨울의 폭설 때만 제외하고서는 빠짐없이 육교에 나타난다. 영안실에서 나왔을 때의 방향에서 오른쪽 중간쯤이 그가 앉는 자리이다. 그곳에서 그는 눈을 지그시 감은 고고한 얼굴로, 등을 곧추 세운 자세로, 아침 11시에서 해가 질 무렵까지 앉아 있는다. 여름에는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를 피하지 않으며, 겨울에는 도시의 빌딩들이 만들어낸 칼바람을 다 받아내며 유유히 앉아있다.
나는 그동안 그가 궁금했다. 그의 바구니에 돈을 놓으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입을 열지 않기로 작정을 한 것일까? 아니면 진실로 귀를 닫아 버린 것일까? 그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그의 몸을 건드렸다. 눈도 꿈쩍이지 않았다. 그는 모르는 척하기로 한 것일까? 아니면 진실로 눈을 감아버린 것일까?
그가 우리에게 거지로 나타나 이러기를 올해가 되면 4년째다. 아무리 멍청이도 늙은 거지처럼 3년 동안 눈을 감는다면, 모두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한가지의 지혜는 생길 것 같다. 아무리 겁쟁이도 깡마른 거지처럼 입을 다문 채 3년을 보낸다면, 오직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가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 같다. 아무리 욕심쟁이도 움직이지 않는 거지처럼 3년을 귀를 닫는다면, 영혼을 열 수 있는 겸손이 생길 것 같다.
육교 위의 늙은 거지는 평범한 거지일 수도 있다. 드디어 내가 그와 말을 나누게 되었을 때,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진짜 몸도, 마음도 늙고 병든 거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것은 지난 3년의 그에 대한 내 경험을 없는 것으로는 만들 수 없다. 한 사람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외롭게, 하지만 기대하지 못한 의연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존경할 수 없는 거지에 불과한 모든 것이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이다.
그는 내 세계에서는 구름다리위의 거지별이다.
나는 거지별이 이 세상에서 삶의 여행을 즐기는 순례자처럼 살기를 바란다.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건너는 영혼의 여행을 즐기기를 바란다. 그가 살고 있는 엄청난 고독과 비참한 가난 속에서 어떤 각별한 순간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스스로 원해서 가난을 사랑한 거지가 되어 살았고, 그렇게 살다보니 문득 성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그가 정말로 누구인지를 모르기를 바란다. 동냥질을 한 거지였다고 오해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진실도 사라진 곳에서 그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우리가 차마 알 수 없는 위대한 비밀이 하나 더 생겨나, 우리가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우주의 한 구석에 새겨져,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
그렇게 모든 별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