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 딱! 딱!
불기 2554년 1월 4일, 음력 섣달 초하루. 용맹정진의 입선入禪을 알리는 죽비3타가 선원 열중悅衆스님 손을 통해 우렁차게 큰방을 울린다. 해인사는 매 안거安居에 반 철 정도를 기점으로 삼아 일주일 동안의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 동안에는 선원대중 뿐만이 아니라 총림내의 각원各院(율원律院, 강원講院등)과 사중의 모든 대중은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정진에 참가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알기엔 안거중의 이러한 용맹정진은 요즘은 많은 곳에서 보편화가 되었으나, 애초엔 해인사에 성철 스님께서 오시고부터 생겨난 전통이라고 알고 있다.
이 중 동안거冬安居 용맹정진의 경우는 음력 섣달 초 여드레 즉, 부처님 성도절成道節에 맞춰 그 정진이 회향回向될 수 있도록 맞춰져 있다. 2500여년 전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새벽의 샛별을 보시고 깨달음을 얻으셨던 것처럼 일주일의 용맹정진으로 부처님의 성도하신 날에 맞추어 확철대오廓徹大悟하라는 지극한 서원誓願의 의미가 담긴 뜻이리라. 그래서인지 비록 큰방 안이라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셨을 그 새벽의 별빛을 바라볼 수는 없으나 용맹정진을 끝내는 방선放禪도 당일 새벽에 이루어 진다.
개인적으로, 이제 2학년을 마치는 지금, 나름의 소임 등으로 피치 못하게 용맹정진에 참여하지 못한 대중도 많았겠지만, 복이 많아서인지 아직 한 번도 용맹정진에 불참하는 불운?을 겪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이 꼬박 4번째의 참여가 되었다.
용맹정진기간을 이야기하자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는지 모른다. 개인적인 능력의 부재로 그 많은 이야기들을 글로 옮겨낼 재주는 없고, 그래서 첫째로 큰방 내의 대중의 앉는 모양을 한 번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많은 분들께서 이미 잘 아시겠지만 스님들은 보통 큰방생활을 한다. 즉 홀로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여럿이 어울려 대중생활을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절에 큰 행사가 있거나 할 때 사중에서 기꺼이 큰방을 신도님들에게 내어주는 특별한 날, 출입해 본 불자님들은 잘 아시리라.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큰방 하나에 모든 대중스님들께서 정진도 하시고 주무시기도 한다. 물론 요즘 들어서는 자는 공간만큼은 개인적인 방사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큰 방 생활을 하는 것이 전통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합당하다고 대부분의 스님들께서 여기신다.
이러한 큰방에서 해인사는 용맹정진기간의 경우는 약 80여명정도가 함께 정진을 하게 되는데 그 자리배치가 어떠할지 자못 궁금하지 않는가? 아무리 큰방이라고 해도 대중 80여명이 다 들어가 앉으려면 꽤나 계획성 있게 자리배치를 해야 할 것이니 말이다.
설명해 보자면, 큰방을 놓고 볼 때, 중앙에 자리에는 학인스님들이 소복히? 약 40명 정도가 모여 앉고, 방 전체를 테두리치듯 돌면서는 선방스님들과 율원스님들이 앉아 정진을 하게 된다. 일종에 결계結界를 치듯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학인 스님들은 중앙에 두고, 이들을 품에 앉고 보호하듯 선방스님들께서는 학인스님 주위를 둘러싸고 앉아 정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양이 흡사 닭이 알을 품듯 하다.
불가에서 자주 쓰는 용어중 하나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잠깐 설명을 덧 부치자면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부화를 할 때 안에서 스스로 그 껍질을 깨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닭이 그 껍질 깨는 소리를 듣고서 적당하고도 아주 필요한 순간에 밖에서 같이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개인적으로 주워들은 이야기라 그 근거가 분명한지는 모르나 자신의 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오지 못하는 생명은 그 힘이 약해 곧 죽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껍질을 깨는 일은 갓 태어나는 어린 생명에게는 무지막지하게도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미가 그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준다고 해도 그 생명은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아마도 시련을 겪지 못한 것은 비록 그것이 어린 생명일지라도 자연이라는 가혹한 운명은 그리도 모멸차게 대하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이러한 줄과 탁이 적정한 시간에 동시에 이루어질 때만이 완벽한 부화 즉, 탄생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뜻이 이 줄탁동시라는 말에 담겨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정진기간동안 큰방에 모여 앉은 대중의 모습이 이 이야기(줄탁동시)를 생각하게 한다. 마치 어미닭이 알을 품듯 그렇게 출가한지 얼마 안 된 스님들을 에워싸고서 지켜보는 것이 마치 곧 깨어나는 생명을 바라보며 가장 적절한 탁啄의 시기를 견주어 기다리는 어미닭의 그윽한 눈빛을 닮은듯하지 않냐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좌선 중 스님의 장군죽비의 경책은 꼭 나의 새로운 탄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탁(啄)인듯 하여 맘이 설렌다. 항상 감사할 일이다.
또한, 용맹정진은 말 그대로 밥 먹고, 중간 경행經行하는 시간(50분 좌선, 10분 휴식 즉, 경행)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앉아서 참선만을 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는 건데 까짓것 일주일 잠 안자고 하는 게 머가 그리 대수인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참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온 김에 그런 생각을 가지는 분을 위해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볼까.
예전 경봉鏡峰 스님(1892~1982)의 회상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맨날 일은 안하고 선방 안에서만 앉아 있는 수좌스님들이 절에서 일만 하시는 부목負木처사의 눈에는 꽤나도 거슬렸었나 보다. 하긴, 자신은 하루 종일 땀 흘리며 일을 하는데 가만히 따뜻한 방에서 앉아만 계시는 스님들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이를 알아본 경봉 스님께서 처사에게 한번 선방에 들어와 정진하실 것을 권했다고 한다.
힘든 노동에서 벗어난다는 기쁨에 냉큼 그리하겠다 하시고 선방에 앉으셨던 처사님, 그러나 하루를 앉고 이틀을 앉더니 온 몸이 쑤시고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바깥에서 일만 하셔서 한 번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하셨던 분이 오죽했겠는가. 결국엔 큰스님께 말씀드리고 다시 밖으로 나온 처사님, 그 이후론 밭에 일을 하며 쟁기질 하는 소에게 말을 잘 안 듣거나 좀 움직임이 둔해진다 싶으면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단다. “이놈의 소야! 너 자꾸 이렇게 말 안들으면 선방에 넣어버릴게다!”라고.
그렇다면 또 그렇게 힘든 일을 왜 굳이 사서 하느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에겐 가만이 앉아만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생각지 말고 우선 “한번만 앉아 보시라”고 진심으로 우선 권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런 다음 그 이유를 말하자면 …글쎄, 아마도 세세 생생 쌓여온 습기習氣를 깨고자 하는 발심덕분이 아닐까. 내 안에 있는 참다운 부처를 찾기 위함이라면 너무 식상한 답변이 될까? 이런 글이 있다.
我有一卷經아유일권경 不因紙墨成불인지묵성 開無一字전개무일자 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 풀어보자면, “내 안에 한권의 책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먹으로 된 것이 아니라, 펼쳐보니 한 글자도 없건만 언제나 큰 광명을 발하고 있다” 라는 뜻이다. 왜 그리 앉아 있는지 이유를 밝히자면 아마도 이것이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내안에 책을 읽는 중이라고. 한 글자도 없는 내안에 빛나는 책을…. 읽으려 하나 읽을 수 없고, 보려고 하나 볼 수 없으나 언제나 내 안에 밝게 빛나고 있던 바로 그것을…. 아무런 목표 없이는 결코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맘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앉기를 시작하더라도 일주일의 용맹정진중 닷새쯤을 넘어갈 때가 되면 슬슬 몸에 부치는 일부 분들에겐 요상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정진중에 이것이 꿈인지 생신지 내가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는 것인지, 특히 밤을 넘겨 새벽으로 넘어가는 정진시간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평소에 항상 잠든 시간이라 언뜻 언뜻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습習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칫 잘못하면 자유로운 행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위기가 오는 것이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음식을 드시는 시늉을 하시는 스님, 그대로 누우시려는 스님, 심지어 수영을 하는 시늉을 하시는 스님도 계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 자주 있는 일은, 학인스님과 같은 경우는 아직은 서툰 좌선이라 앉아서 조는 경우가 허다한데, (물론 대단한 정진력을 지닌 학인 스님들도 많이 계신다. 특히 학인 중의 모 스님은 일주일 내내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용맹정진을 난 학인 스님도 계신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다 보면 순간적으로 졸다 몸이 기우뚱하면 순간 참 난감해 진다. 아차하고 짚은 손은 대방바닥을 내려치게 되고 그 소리는 조용한 방을 퍼져나가 온 방안을 진동한다. 어쩔 수 없이 주위에 몇 분은 시선을 돌리게 되고, 시선을 받은 당사자는 더욱더 난처하기 짝이 없다. 그저 벌게진 얼굴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좌선자세로 돌아갈 수 밖에…. 이런 경우를 보고선 지대방에서 도반스님들과 두런 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스개로 농담 삼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번 철엔 누가 한 소식을 하시고 바닥을 치시려나… 어째 바닥을 칠게 아니라 크게 ‘할’이라도 한 번 하시지라고….”
여튼 졸음으로 바닥을 치나, 깨달음으로 바닥을 치나, 잠꼬대로 “억”소리의 할을 하나, 어쨌든 다음철 하안거에도 반드시 참여하여 용맹정진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아직은 용맹정진만 생각하면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걸 보면 여전히 초발심자인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오늘도 선방에서 수행정진하시는 수좌스님들의 하루 하루 정진이 그대로 여여하고 뜻에 수순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