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언斷言하자면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며, 자비의 문중이다. 부언附言하거나 첨언添言하면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다. 지혜를 통한 자비의 구현具顯이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자비로 표현되거나 실행되지 않는 지혜는 이미 본연本然의 의미와 가치와 광명光明을 상실한 사장死藏되거나 명목名目뿐인 허울이거나 명사名詞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교를 대변代辯하는 자비는 아무리 강조하거나 되풀이하더라도 오히려 부족하기 때문에 한계가 없는 무한無限하고 한량이 없는 무량無量한 자비의 설명과 자비의 실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비는 자애로운 마음과 비통해 하는 마음으로, 실제적인 행동에서는 보시布施와 이행利行과 애어愛語와 동사同事 등의 사섭법四攝法으로 우러나고 드러난다.
비문무량등중생悲門無量等衆生하는 가르침에서는 자비 가운데에서 고통과 아픔에 괴로워하고 힘겨워하는 중생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고 안타까워하면서 같이 슬퍼하는 비통한 마음(비, 悲)을 강조하는 것이다. 맹자孟子가 주장한 사단四端 가운데에서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설명과 상통한다.
이러한 마음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모두 한량이 없어서 중생과 동등하게 한다는 것은, 고통 받고 아파하는 중생과 동일한 고통과 아픔을 느낌으로써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아가서는 고통에서 건져내어 구제救濟하고 제도濟度하는 것으로 비문悲門의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하게 된다.
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똑같이 느낀다는 등중생等衆生의 의미를 다시 확대하고 확장하면 비통해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모든 중생들에게까지 평등하게 갖고 대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을 분별分別하거나 차별差別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똑같은 마음으로 평등하게 이해하고 섭수攝受하는 것으로, 사무량심捨無量心이며 중도中道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나의 권속이거나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거나 혹은 학연學緣이나 지연地緣으로 연결되었거나, 종교가 같다거나 사상思想이 같다거나, 내 마음에 든다거나, 혹은 장애의 유무有無 등으로 분별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것은 물론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도 추호의 상관없이 생명을 지닌 존엄한 존재라는 절대적인 요건만으로 그와 똑같이 등중생하여 그가 필요한 대로, 그가 요구하는 대로 똑같이 해주는 것이다. 분별하여 차별하거나 포기한다면 이미 등중생의 조건에 어긋나는 것이며, 등중생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處事가 분명하다.
평등과 동등이라는 등중생의 관점에 입각하면 세상은 존재하는 그대로 어울림의 마당이며 조화로운 도량道場이며 화장장엄華藏莊嚴의 세계이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 그대로, 바위는 바위 그 자체로, 풀잎은 풀잎 그대로, 바람은 바람 그 자체로 가감加減이나 장식의 단계를 거칠 필요 없이 모두가 옳고 수승하며 뛰어나고 훌륭한 존재이며, 결국에는 꼴등도 일등도 누가 더 중요하다고 할 것이 없이 동등한 소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터득하면 꼴지도 없고, 따라서 일등도 없어서 꼴등이거나 일등이거나를 막론하고 어느 것 하나 내치거나 필요하지 않다고 버릴 것이 없이 화장장엄의 세계를 구성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귀중한 존재이며, 균형과 조화를 실현하고 가능하게 하는 막중莫重한 요건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모든 존재마다 각자가 처한 처지에서 각자가 치러내고 있는 쓰라린 아픔을 고스란히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등중생, 뭇 생명과의 동등을 실천하고 이러한 등중생의 동사섭同事攝을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 두루 일체의 분별과 차별을 두지 않는 평등으로의 등중생을 무한정으로 확대하여 넓혀가기 위해서는 구절의 서두에서 밝히는 것처럼 비문悲門이 무량無量한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안타까워하고, 불쌍히 여기며 측은해하다가, 연민憐愍을 넘어서 비통해 하는 마음을 세세생생의 영원까지 모든 대상에게로 확장시켜서 보편성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존재를 향한 끝없는 관심과 함께 편견이나 사사로운 견해가 개입되지 않는 순수한 이해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 요건이다. 무관심과 편견을 버리고 벗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나 이해관계가 없는 존재라고 무관심하거나, 나의 소견이나 견해의 잣대로 자신의 정당성만을 주장하고 고집한다면 등중생의 동등과 평등은커녕 호극戶隙만큼의 비문悲門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량한 비문으로 중생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너그러운 관용의 자세와 함께 유연柔軟한 사고思考로 고집과 편견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동일한 시대와 동일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고, 모든 존재의 모습과 처지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으로써 동등한 동사섭과 보편적인 평등으로의 등중생을 지향하는 첫걸음을 기묘년, 씩씩하게 도약하는 토끼의 뜀박질로 나아가기를 다짐하며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