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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선원 열중 도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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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1년 02월 348호
며칠간의 폭설로 눈이 수북이 쌓인 계곡을 따라 오르며 눈밭에 서서 잠시 본 것도 같았다. 그 풍경과도 같은 순연純然한 생을. 그러나 뒤돌아보자 내 발자국이 내 순연했던 생을 더럽히고 있었으니 살아온 족적이 깨끗하지도 가볍지도 못하구나 싶어 마음의 소리는 도로 아스라해진다. 그래서 걸음은 저 새하얀 산중의 수좌를 찾아 순연順緣한 길을 간다.
선원에서 정진 중이시라는 도정 스님을 잠시 뵙기로 한 오후. 찬바람을 털고 들어와 앉으신 스님은 차를 한 잔 달여 주시고는 한 마디 건네신다.
“내가 뭔 말을 하겠소? 바보 멍청이가 돼서 살려고 작정한 사람인데.”
창호문 밖에선 거센 바람이 대체 뭣 하러 왔느냐는 듯 날 꾸짖으며 지나간다. 바람소리에 귀도 마음도 먹먹해진다.
“부처님과 같이 깨닫기 전까지는 눈 귀 입 막고, 어떠한 생각도 소견도 내지 않고 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고 가질 수 있는 마음인 것 같아요. 이것이 내가 첫 철에 세운 원력입니다.”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절에 들어와 행자 생활을 마치고 계를 받자마자 선방으로 향했다. 그것이 88년도 겨울이었고 그렇게 선방에만 머물며 2011년 겨울이 왔다. 행자 때도 초발심자경문 책장을 덮고 참선에만 매진했던 스님은 선방에서 첫 철을 나며 마음의 지침이 생겼다고 하신다. 어느 날, 처마 밑 외등이 나가서 스님들이 전구를 갈았는데 촉수가 낮은 것이라 갈았는데도 어두컴컴했단다. 그러자 스님들이 어둡다고 한 마디씩 했고 그때 이제 겨우 스무 살이던 도정스님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불을 켜면 되지 뭐가 어둡냐고 한 마디를 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 소리를 안에서 들으신 노스님이 도정스님을 불러들여 말씀 하셨다.
“이 사기꾼 같은 놈! 뭐, 마음의 불을 켜? 어디 한번 켜봐라, 이 도둑놈아! 하시대요. 봉사가 뭘 봤다는 것도 사기고 귀머거리가 뭘 들었다는 것도 사기지요. 깨달음을 얻어서 견성을 했을 때 바로 볼 수 있고 바로 들을 수 있고 바로 말할 수 있어요. 깨닫기 전에는 봐도 봉사가 보는 것이고 들어도 귀머거리가 듣는 것이고 말을 해도 벙어리가 하는 것이지요.”
스님은 그날의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 아무도 알지 못 하는 나무가 산을 지키는 것처럼, 한 세상 안 태어난 셈 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업을 성취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니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고 모든 인연이 도를 닦는 도반의 인연으로만 서로 영글어지게 지켜달라고, 부처님과 같이 깨닫기 전까지는 소견을 내지 않고 수많은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수많은 보살님들처럼 다리 뻗고 쉬지 않겠다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니 스님은 거듭 말씀하신다.
“깨닫지 못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지금도 이것을 해야 한다니 하는 것이지, 그래서 그저 내가 나한테 말한다 생각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강원에도 가지 않았고 경전을 본 것도 아니며 책을 보지도 않았다. 교리가 박식해지면, 공부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주지나 포교의 길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길을 완전히 차단해버린 것이다. 누가 무식하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상관없이, 참선만 하다 죽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스님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말씀하신다.
“난 아무 것도 몰라요. 내가 아는 단 하나는, 내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스님은 이야기를 하나 풀어놓으신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대나무 그림을 그리면서 수행을 했다. 삼년 내내 대나무를 쳤더니 누가 봐도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스승을 찾아가 보여드리니, 네가 대나무가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대나무를 그릴 수 있겠냐고 했다. 그래서 그 스님은 돌아와 대숲으로 들어가 대나무와 같이 비를 맞고 눈을 맞고 바람에 흔들렸다. 그렇게 삼년의 세월이 흘러 또 스승을 찾아가니, 네가 대나무가 되었다는 생각이 있는데 어떻게 대나무를 그릴 수 있겠냐 했다. 다시 돌아와 수행을 했는데, 그 후로부터는 마을에 그 사람이 대나무를 잘 그린다거나 그 사람이 대나무가 되었다더라 하는 소문이 싹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스승은 네가 이제 대나무를 그릴 수 있다고 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마친 도정 스님은 또 말없이 차를 한잔 따라주신다. 문 밖의 멎은 줄 알았던 바람 소리가 더 거세진다. 여쭙는다.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내가 깨달아보지 못 해서 모르겠습니다. 이 잔 속의 차가 뜨겁다고 백날 말한들 직접 만져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지요. 철저하게 화두에 집중해서 그 한 생각으로만 몰입해 가는 것이 지금의 내 공부입니다. 지금 내가 겨우 기어갈 정도인데 뛰어갈 때를 생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맞지요.”
스님은 체육고등학교에 다니며 육상을 했다. 그런데 시합 때만 되면 몸이 아프고 실력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잠들면 혼자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밤새 뛰었다. 그러다가 지치면 왜 안 되는 것일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휩싸여 잔디밭에 누워 밤하늘을 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의 법문 테이프를 듣게 되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것은 도 닦는 것밖에 없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스님이 갈 길이라는 생각이 들자 힘들었던 모든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았다. 그 후로 고등학교 생활 2년을 신나게 즐겼다. 갈 길이 정해졌으니 운동을 열심히 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만 나면 송담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화두를 들고 참선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송광사로 달려갔다. 행자 생활 또한 즐거웠다. 얼마나 즐거운지 늘 웃고 다녔더니 어른 스님들이 뭐가 그리 좋으냐고 늘 물으셨다. 그러고는 인연에 따라 가다 보니 용화사 송담 스님께 가서 화두를 타고 계를 받았다.
“도정道淨이라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내 속가의 성이 황인데 그것은 중심이라는 뜻이니, 중심으로 가는 길이 조촐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도인이 뭔 줄 아냐 물으시더니, 가장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시대요.”
부처님의 불법이 이어지는 것은 도인이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에 계속해서 도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흩어져버릴 수 있는 일. 그렇기에 스님은 말씀하신다. 선방 스님들의 공부는 부처님의 수많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며, 불법이 끊어지느냐 안 끊어지느냐의 문제에도 가닿는 것이라고.
“내 깨달음을 뒤로 하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봉사가 눈을 뜨지 않으면 어떤 길도 가르쳐줄 수가 없어요. 제일 무서운 것은 깨닫지도 못 했으면서 깨달은 척하는 것이지요. 결국엔 같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수밖에….”
공부만 하는 수좌들에겐 현실적인 고민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늙고 병드는 것이니 노후에 대한 생각이 있을 법도 한데 스님은 말씀하신다. 1초 전만 해도 과거이고 1초 뒤만 해도 미래이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 점에 불과한 것이라고. 시작도 끝도 사실 한 점이니, 이 순간만 생각할 것이라고.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부하며 나머지는 인연에 맡길 것이라고.
“내가 무슨 복이 많아 이런 공부를 하고 있을까, 가슴에서 솟구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스님은 앞에 개울물이 흐르는 작은 집에서 새소리 물소리 들으며 공부하다 죽는 것이 희망이란다. 그 생각만 하면 흐뭇하단다. 스님이 문득 물으신다.
“숨 쉬는 거 잊었나? 숨 쉬는 거 잊으면 죽어요.”
공부하란 말씀이다. 숨은 쉬고 있으면서도 숨 쉬는 걸 모르고 있으니 산송장이란 말씀이다. 요즘에 제대로 숨 쉬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최소한 숨 쉬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는 돼야 살아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단다. 거기에 더 나아가 화두를 들고 내가 누구인지를 찾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일 것이며.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갈아서 꽉 짜서 한 방울로 만들면 무엇인 줄 압니까? 네가 너를 깨달아라, 이 한마디랍니다.”
스님은 말씀하신다. 불교는 종교이기 이전에 내가 날 깨닫는 인간의 근본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 해야 할 공부라고. 그러고는 뒤춤에서 다포를 하나 꺼내 펼쳐놓으시더니 새겨진 글귀의 뜻을 풀어주신다.

尋春莫須向東去 봄을 찾아서 모름지기 동쪽을 향해서 가지 마라
西園寒梅已破雪 너의 집 서쪽 뜰에 이미 눈을 뚫고 매화가 피었다

“네가 바로 부처인데 왜 그것을 모르고 먼 곳을 찾아가느냐, 사랑도 행복도 네 속에 있으니 먼 곳에서 찾지 말아라….”
그 다포를 선물로 내어주신다. 그 뜻을 마음에 새겨 넣으며 선원으로 가시는 스님의 걸음을 쫓는다. 순연한 눈길을 걸으며 스님이 말씀하신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공부밖엔 할 것이 없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면 똑같은 말이 새롭게 들리고 그런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