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별들은 유리 파편처럼 밤새워 쏟아져 내리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고향 의성 고운사와 영천 은해사를 야외법회로 갔었고 그날 눈 내리던 안동 봉정사를 찾아 간 것은 불교 학생회 겨울 수련회 때문이었다.
당시의 봉정사는 원시를 간직한 고색창연 하고 아늑한 산사의 전형이었다.
의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안동역에 내려 다시 두어 시간이나 기다려 서후면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탈 수 있었고 덜커덩 거리며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려 내린 곳은 눈 내린 겨울 산을 멀리 바라보며 귓불 시리도록 불어치는 북서풍에 얼어붙은 작은
실개천을 옆으로 끼고 꾸불꾸불 이어진 시골길.
우리는 이렇게 몇 시간을 걸어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봉정사에 도착 하였다.
관음사 주지 스님의 사전 연락을 받고 군불을 훈훈히 지펴 놓으시고 수련회를 지도하고 이끌어 주셨던 설송 주지 스님은 이제는 가마득한 예전의 인연.
천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빛바랜 단청.
봉정사의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된 목조건물이며 그 양식이 기둥 가운데가 볼록하게 나온 에타시스형이라 하였는데 그 양식이 정확히 어떠한 것인지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알듯 모를 듯 하기도 하려니와 우리 눈에는 단지 하나의 오래된 작은 건물로만 보였었다.
후원의 큰 방의 아궁이에 장작개비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잔불로 타 들어가고 그 특유의 메케한 연기 냄새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로 남아있다.
봉정사에 도착하여 부처님께 알림 예불을 드리고 둘러앉은 학생들을 따뜻하고 인자하게 환영하여 주신 스님은 수련회 일정과 봉정사의 역사와 문화 해설을 곁들인 유래를 재미있게 들려 주셨다.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대사가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었는데
지극한 정성에 감복한 선녀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굴 안을 밝혀 주었다 하여 그 산을 \'천등산\'이라 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으며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때가 되어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렸더니 이곳에서 나래를 접으므로 절을 세우고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하였다고 한다.
여행의 피로가 가시기 전에 산사의 이른 저녁 공양시간이 되고 잠시 휴식 시간에 이어서 일정에 따라 차가운 대웅전 마룻바닥에서 1080배를 올리고 가부좌 틀고 앉아 참선을 하고 교리 공부와 교리 시험과 토론시간도 가졌다.
그런데 수련회 첫날 철야정진에서 부터 꾸벅꾸벅 졸던 종화는 끝내 코를 골기 시작 했고 장난기 심했던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하나만 켜 둔 채 찬바람 스며드는 법당에 친구를 홀로 남겨 두고 후원으로 내려 와 버렸다.
새벽 3시경이나 되었을까?
깊은 산사의 적막을 깨트리며 겁에 질린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 으아악~ 야들아~ 너 그들 전부 어디 갔노~ 으이구 추버라…”
드디어 추위에 잠을 깬 녀석이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자신을 발견 하고는 겁에 질리고 당황하였던 모양이다.
“우당탕”
마룻바닥을 뛰는 소리에 이어
“삐꺼억~ ”
둔탁하게 열리는 대웅전 문소리를 뒤로 하고 시커먼 물체가 밤새워 내린 눈 쌓인 마당으로 튀어 나왔다.
법당을 가로질러 달려온 종화를 맞이하여 옷에 붙은 눈을 툭툭 털어 주며 한바탕 웃음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밤을 이어갔다.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어둠의 산사에 범종 소리와 목탁 소리와 온산을 울리는
청아한 주지 스님의 도량석을 시작으로 절 집안의 사부대중이 새벽 예불을 준비하고
우리는 경일 선배의 채근에 어쩔 수 없어 게슴츠레하니 반쯤 감긴 눈을 비비고 일어나 이불 베개를 개어 올리고 대웅전으로 갔는데 새벽 동이 트는 시간 까지 이어지는 예불시간은 어린 마음의 우리들에게는 지루 하고 고통스럽기만 하였다.
이어서 꿀맛 같은 아침 공양시간이 왔고 오전에는 설송 스님의 설법을 듣고 오후에는 야외 활동으로 천등산에 올랐는데 그 때만 해도 등산에 대한 경험이나 개념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라 교복이나 학교 체육복에 운동화를 신고 눈덮힌 산을 올랐으니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야단법석 이었다.
멀리 가까이 높은 산에 몰려오고 흩어지는 겨울 운무의 장관을 보면서 감탄사를 쏟아 내기도 하고 신라의 능인 스님이 참선 공부로 마음을 바로 보셨다던 천등굴에서 가부좌를 틀고 큰 스님 흉내를 내어 보기도 하고….
선배의 제안에 따라서 마음의 봉황새를 접어 날리기도 하였는데 우리의 봉황새는 어디로 날아가서 어디에 나래를 접었을까요?
안동 봉정사 2박3일의 의성불교학생회 겨울 수련회에는 나와 인호 종화 금옥 정희 명숙 점순 희숙이 등등… 남녀 중·고등학생 20여명이 참여 하였다.
2박3일 수련회 일정은 꿈 같이 흘러갔고 정들었던 봉정사와 후원의 따뜻하고 큰 방을 뒤로 하고 설송 주지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하산길에 나섰는데 실낱같은 겨울 햇살에 녹아내리는 눈으로 산비탈의 논두렁 밭두렁길은 질퍽거리고 미끄러웠고 얇고 닳은 헌 운동화 깔창 바닥으로 차가운 흙물이 스며드는 길은 멀고 지루하고 추웠다.
이제 십년이라는 세월이 몇 번이나 흘렀고 또 몇 번의 십년 세월이 다가 오고 있는데 그때 그 추억은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추억의 봉정사를 1999년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우리나라 문화의 진수를 보기 위하여 이곳을 추천 받아 다녀갔고 여왕의 우리문화 유산여행 흔적들은 지금도 아름답게 남아 있다.
봉정사의 부속 암자인 지조암과 영산암은
1989년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의 배경이 되어서 더욱 유명하여진 곳인데 님께서는 아시는지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