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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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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조항준┃40기 행자 2011년 02월 348호
지금 내 눈앞에는 하얀 풍경이 펼쳐져 있다. 이 나무 저 나무 할 것 없이 모두 하얗게 뒤덮여 있다. 벌써 사계절 중 마지막 계절인 겨울에 다다른 것이다.
하루하루 힘겹게 지나온 날 들이 ‘눈’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지, ‘눈’을 보게 되면 지나왔던 날들을 추억하게 된다. 마치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르듯이 말이다. 나도 눈을 보게 되면 지난날이 떠오르곤 한다. 이전에 내게 있었던 여정을 하나씩 풀어 보려고 한다.
얼마 전, 나는 새롭게 태어나려는 여행을 떠났다. 그건 바로 출가出家라는 여행이다. 모든 것을 놓고, 새롭게 태어나려고 하는 나에게 이 여행은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여행 같았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불교에 대한 신앙생활을 한 적도 없고, 절간 생활에 대한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 태어나겠다는 내 의지를 굽힐 수가 없어서 ‘출가’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나에게 다가온 숙제가 있었다. 바로 행자생활行者生活 이다. 행자로써 살아가려면 자신을 낮추고 고된 노동은 스스로 해가면서 생활해야 한다. 그리고 눈이 뭉쳐 단단한 얼음이 되듯이 도반들과 화합해가면서 생활해야 하는데 그것이 나의 숙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 숙제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문제를 안겨주었다. 속세와는 또 다른 절 생활을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항상 챙겨주셨던 부모님 생각에 매일같이 울어야 했고, 16살이라는 어린 나이를 가진 나에게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나를 지치게 했고 힘들게 했다.
매일같이 나는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속가로 도망쳐 버릴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하는 일마다 손에 잡히지 않고, 딴 생각만 하게 되고, 누가 뭐라고 하면 짜증만 낼뿐이었다.
그래서 인지 하루가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때는 절실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싶을 만큼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었다. 그 때 나에게 은사스님과 도반이 말을 건넸다.
“한 순간의 공부 일 뿐이다.”, “그런 고민하면 니 머리만 아프다.”, “힘내자.”… 이 말들을 나를 생각해 위로의 말들을 해주셨다. 마치 눈사람처럼 겉으로는 무심하고, 차갑게 대하셨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하여 내 차가웠던 마음을 녹여 주셨던 것이다. 그렇게 나를 위로해 준 몇 마디가 지금까지 내 버팀목 역할을 해 주었다. 이 버팀목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고, 하얀 겨울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 난 지금의 나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익숙치 않았던 절 생활은 습관이 되었고, 나와 도반들 사이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고 , 가까워진 거리만큼 나의 여행도 마지막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때가 되었는지 깨끗하고 하얀 눈송이가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기에 걸맞은 하얀 도화지 같은 풍경이 내 눈동자를 적시고 있어 내 마음은 항상 들떠 있다. 나는 그동안의 기쁨, 슬픔, 갈등, 행복 등을 모두 털어 버리고, 다시 일어나려 한다. 지난날을 통해 많은 교훈과 생활지식, 수행자답게 수행하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해온 나는 이제 또 다른 숙제를 찾아 풀어 가며 성장하는 그런 멋진 여행을 떠나려 한다.
‘20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우리에게 하얀 풍경, 추억, 마지막 등 여러 가지 의미와 교훈을 남겨주고 떠났지만 ‘2011년’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눈이 내리고 난 뒤에는 새로운 발자국을 찍듯이, 새롭게 시작되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려한다.
그 여행이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다음에 내리게 될 눈과 또 다시 찾아올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며, 나의 숙제를 풀고, 여행을 펼쳐 나갈 뿐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눈을 보며 지난날을 추억하며, 마지막을 보내겠지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