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육십 성상星霜, 난 그 세월의 수례 속에서 그저 앞만 보고 뛰어왔던 것일까? 오늘따라 거울 앞에선 나의 모습에는 예 같지 않게 귀밑머리에 세월의 때가 묻은 듯하다.
하지만 지난 63년이란 세월은 40년이란 세월을 공직에서 행복을 배우기도 하였다란 자긍심만은 누구의 행복과도 바꿀 수 없다. 비록 남들처럼 토끼 같은 날렵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꾸준하였던 나는 나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매년 새해를 앞두고 대망大望이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그래서인가 년말연시면 천릿길도 마다하고 산으로 바다로 해마지에 나선다. 이른바 송구영신送舊迎新 행렬이다. 그들은 대부분 지나가버린 시간 속에 사라지는 기억들을 차곡차곡 쌓으며, 자신만의 튼튼한 나이테를 만들고, 또 한해를 마지하려는 꿈을 꿀 것이다. 선현의 말씀에‘내일은 새로운 해가 뜬다’하였다. 그것은 새로운 해(日)를 맞이한다는 의미라기보다 새로운 일을 맞이한다는 뜻이 된다. 이는 곧 우리들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공직생활 중 마지막을 박물관에서 보냈다. 남들이 한직閒職이다 외면하는 보직을 난 자청하였다. 그것은 인생살이에서 토끼의 모습보다 거북이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라 할까….
아무튼 그것이 나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전환가가 될 수 있었기에 금년이 신묘辛卯년, 토끼의 해라, 오늘 이야기는 우리 민속에 등장하는 토끼와 거북이를 따라가고자 한다.
고전에는 토끼와 거북이를 두고 토끼는 민첩하나 거북이는 우둔한 동물로 비교하였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토끼는 영리함과 연약함이, 거북이는 영험하고 장수하는 지혜의 동물로 미래를 예언하고, 신의 뜻을 전달하는 영물靈物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토끼의 해에 빠질 수 없는 존재가 거북이다. 이를테면 토끼의 영리함과 거북이의 지혜가 결합되는 상호작용相互作用을 우리는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전의 별주부전을 상생과 화해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들어갈 수 없는 바닷길을 거북이가 인도하고, 산속을 오를 수 없는 거북이를 지상으로 인도하는 토끼의 지혜와 영리함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설화에서도 토끼와 거북이는 본디 친근한 벗으로 등장한다. 환생설화에서는 토끼가 저승을 인도하는 사자使者로, 꿈 해몽에는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거북이는 죽은 이를 지켜주는 존재로, 은혜를 갚는 동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로써 우리의 민속에서는 토끼를 달 속에 방아 찧는 신선과 같은 존재로, 거북이는 장수와 권위, 소원성취 등 기복祈福의 존재로 등장 한다. 그러니 금년은 토끼에게 거북이란 존재는 풍수에서 말하는 비보裨補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고향 경산지역의 거북바위신앙을 연구한바 있다. 지난 1년여 연구 기간 동안 정말 소중한 것을 배웠다. 물론 그것은 우리 선인들의 지혜라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거북이란 존재를 바위형국과 결합하여 신앙하여 온 선인들의 지역사랑을 위한 예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국내에 확인된 거북바위 설화의 전승현장은 나름대로 대표성을 지닌 것만도 대략 30여 개소나 된다. 그 중에서 14개소 달하는 거북형국의 바위가 상대성이 있는 인간들의 이기심利己心으로 그 머리 부분이 잘라지는 수난을 겪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6할에 달하는 건수가 사찰寺刹을 패망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왔다는 것에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기도 또한 16~17세기경으로, 대표적인 조선시대 불교탄압의 수단으로 거북바위가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지역 유림들이 가담하였고, 지방 수령 또는 동조하였던 결과로 나타났다. 본 논문의 표본은 경산시 소재 환성산 일대의 거북바위를 소재로 하였지만, 그 속에는 환성사라는 9세기 창건 신라고찰이 있었다. 지금도 이 사찰은 주변에 190만㎡(60여만 평)에 달하는 임야를 소유하고 있고, 그 임야에는 해마다 양질의 송이버섯이 큰 소득원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사찰이 번성하게 된 연유가 사찰아래 거북바위가 사찰 쪽으로 기어 올라가는 형국이라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는 물론 유림들의 조작으로 지역인 들이 참여한 거북바위 훼손의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지역 설화통로에는 이에 대한 모든 원인제공자로 사찰의 주지의 게으름이 등장하고 있다. 이로써 확실한 진정성은 파악할 수 없었지만, 사찰에 불이 나고 인적人跡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연구 당시 중요한 문헌 자료가 되었던 것은 당시 하양향교 유림들이 기록한 《환성사결송문》에서 이를 더욱 구체화 할 수 있었다.
이는 과거 우리의 역사가 남긴 아픈 상처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성담’스님이 이 사찰에 주지로 부임하면서 거북바위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의 지론持論도 금년에는 토끼(辛卯)의 해이기 때문에 토끼에게 거북이의 지혜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북이는 불신앙의 수호신 격이자 용과 같이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일대 농민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자는데 큰 뜻을 덧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설화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또 한 사람의 학문적 동지를 얻은 게 아닌가 싶다. 지난 초하루법회에 얼어붙은 눈길도 마다 않고 환성사를 찾아 음성보시에 참여한 필자의 마음 또한 그 마음은 아니었을까 한다.
환성사는 대웅전이 보물(제562호)이고, 옆에 있는 심검당은 지방문화재로 등록 되어 있다. 입구의 일주문은 4개의 돌기둥을 4각과 8각으로 조각하여 그 위에 팔작지붕을 올린 것으로, 고려말기의 전통적인 건축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대웅전은 외 4포 내 5포 팔작지붕으로, 고려말기의 건축기법과 단청기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수작이다. 또한 수미단에 조성된 21개의 조각문양은 당시 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어느덧 거북이는 나의마음 속의 남아있는 캐릭터가 된 것일까? 우연히 가까이 만나게 된 거북이…. 필자는 떨어져 나간 거북바위 목을 다시 찾아내어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 법주사와 은해사의 복원사례에서 이를 주도한 스님들의 지혜를 읽게 되면서 그 동안 무심코 수집하였던 거북이 모형품만도 10여점, 난 이글을 쓰면서 문득 신묘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상생하고 소통하는 원효성사의 화쟁和諍과 일심一心을 배웠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