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녹전河裏摝錢이니옥림통수(玉林通琇:1614~1675) 선사께서 어느 날 한 손에 죽비를 쥐고서 거문고를 튕기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이에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자마생득사릉답지作麽生得四稜蹋地 닛고
네 귀퉁이를 바닥에 고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의조경예擬釣鯨鯢니라.
고래를 낚는 것처럼 한다.”
옥림 선사는 강소성 출신으로 명나라 말기에 태어나 청나라 초기까지 임제종 사찰을 중심으로 활동 했습니다. 형계荊溪땅의 경산원수磬山圓修 선사에게 인가를 받았고 이후 절강성 무강武康 보은원報恩院에서 법석을 드날렸습니다. 뒤에 절강성 천목산에 머물다가 어록12권을 남기고 입적했습니다.
이 선문답에는 사릉답지四稜蹋地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릉답지四稜蹋地는 의자의 네다리가 바닥에 제대로 놓여있다는 뜻입니다. 선가에서는 안정되어 어떤 동요도 없는 부동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인식의 바탕인 6근六根이요, 법은 그 대상인 6진六塵입니다. 이 근根과 진塵은 알고보면 마치 거울에 묻은 얼룩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얼룩과 때가 사라진 순간에야 비로소 거울의 빛이 제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처럼 법과 마음을 모두 잊으면 본성 그대로 진실하게 될 것이니 옛사람들은 이미 의자의 네다리처럼 확고한 경지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런 납자는 절대로 도탄塗炭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돌이 자기 스스로 온전하게 있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본분사에서 볼 때 6 곱하기 6은 36인줄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분별할 마음을 일으키면 곧바로 어긋나게 되고 생각을 움직이면 잘못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흔들고 돌린다고 해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경지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곧바로 지금 솟구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설사 조그마한 법이라고 할지라도 남들에게 붙어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법은 자신에게도 절대로 붙어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자재롭게 사람사이에 오고가는 상相이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엉덩이를 방바닥에 대고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으로만 능사를 삼아서는 절대로 안될 일입니다. 지문광조智門光祚 선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참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지문선사와 어떤 납자의 문답이 종문에 전해져 옵니다.
“무봉탑이란 어떤 것입니까?”
“네 다리가 확고하게 바닥에 붙어있다.”
“그 탑 속의 사람은 어떠합니까?”
“코가 세 근인데 저울에 달아 올리지 못한다.”
지문 선사는 송나라 때 운문종 스님으로 향림징원香林澄遠 선사의 법을 이었고 수주隨州 지문산에서 종풍을 드날렸으며 문하에서 설두중현雪竇重顯 선사가 배출되었습니다. 지문선사의 말대로 앉아있기는 꼼짝 않고 앉아 있는데 만약 화두를 놓쳐버리고 그냥 앉아있기만 하다면 그건 고목나무 혹은 장독대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사릉답지는 화두를 들고서 제대로 앉아있는 것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릉답지四稜蹋地를 잘못 이해하면 어떤 곳에 경직되어 집착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어떤 대응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지에 처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근거에 집착하고 있는 상태이거나 또 어떤 대응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직된 상태라면 이것은 제대로 된 사릉답지가 아닌 것입니다.
성도재일을 앞두고 예년처럼 용맹정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졸지 않고 사릉답지하듯 잘 앉아서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화두 없이 앉아있는 것만으로 공부를 삼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졸음이 오는 것도 잡념이 생기는 것도 모두 화두를 놓쳤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혹여 졸지 않고 열심히 앉아있기는 하지만, 화두가 아닌 망상으로 열심히 앉아있는 것으로 살림살이를 삼아서는 절대로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해인신장海印信章 선사는 이렇게 후학들에게 말씀하였습니다.
“어떤 때의 할은 천 길 낭떠러지가 우뚝 솟은 것과 같고,
어떤 때의 할은 사릉답지, 즉 고정된 것과 같아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는 다시 크게 할을 하고는 말했습니다.
“이 할은 마지막에 어디로 귀착되는가?”
이 사릉답지’화두를 납월팔일까지 잘 참구하여 타파하시기 바랍니다.
문처번신농영問處飜身弄影이요
답처파람방선答處把纜放船이로다
던진 질문은 몸을 뒤집고 그림자와 장난을 친 것이요
응한 대답은 닻을 잡고 배를 놓아준 것이로다.
불기2554(2010)동안거 반산림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