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파일은 단순히 불교인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민중의 습속으로 정착된 세시풍속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월 초파일은 기념 법회로만 머물지 않았다. 연등이나 관등(觀燈)의 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영등(影燈) 놀이, 둥대 밑에서의 수부(물장구)와 같은 다양한 민속 놀이, 스님과 풍물패가 함께 한던 걸립(乞粒), 절마당에서 벌이는 탈춤 공연이나 민속 행사가 같이 이루어지던 민중의 축제였다는 데에서 사월 초파일이 세시풍속임을 알 수 있다.
초파일의 연등은 본디 향(香), 등(燈), 화(花), 다(茶), 과(果), 미(米)의 육법(六法) 공양 가운데 하나인 등공양으로서 일상적인 공양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파일의 연등은 단순한 등공양의 의미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연등행사는 한반도 농경 문화의 풍농의례이자 광명(光明•) 신앙 및 용신(龍神) 신앙의 표현이었던 정월 연등과 이월 연등 습합된 뒤, 초파일의 민속 행사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세시풍속이던 연등회(정월)가 그 변해온 과정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러나 오늘날의 초파일 행사는, 풍요를 바란 농민 대중이나 다양한 민속 놀이와 결합된 민중적 축제라는 진보적 특성을 모두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단지 전통 의례를 재현하거나 사찰의 재정을 확보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소극적 행사로 국한되고 있다. 이는 부처님의 밝은 가르침과 중생을 제도 하겠다는 하화중생의 큰 뜻, 즉 대중의 구체적 관심과 직접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사회적 사명을 뛰어나게 결합시킨 민중 불교의 전통을 옳게 이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보다 실천적이고, 민중의 삶의 한가운데에서 살아 있는 대중 포교 운동을 떨쳐 일으키는 일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우란분절은 전생의 죄업으로 아비 대지옥에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스님들과 대중에게 공양을 베푼 목련 존자의 발원에서 비롯된 명절이다. 본디 목련 존자가 베푼 우란분재는 목련 존자의 어머니를 구하려 했던 것이, 나중에는 ‘많은 중생의 구제’와 ‘대중공양’이 그 목적이 되었다 곧, 어머니의 구원은 물론이려니와, 지옥의 모든 종생과, 이세상의 한파 아픔으로 인하여 중유(中有)의 세계에서 떠들고 있는 중음신(中陰身) 및 갈 곳없는 외로운 혼까지 함께 극락왕생할 것을 기원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살아 있는 사부대중을 위한 공양이 되면서 현세 대중의 복락을 위하는 ‘사회구원’의 의미까지 지닌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체로 이 우란분재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을 천도한다는 소극적인 ‘개인구원’만 중시되었을 뿐, 많은 중생의 천도와 이 사회에 살아 있는 대중들을 구원한다는 의미는 형식화되고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우란분절 뿐만 아니라 지장재나 기일불공 때에도 충분히 정성을 다함으로써 조상을 천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우란분절은, ‘사회적 구원’이나, 한을 안고 중유를 떠도는 ‘갈 곳 없는 혼들을 천도함’을 목적으로 하여 불가의 세시풍속으로 정착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곧, 민족의 한과 민중의 한을 안은 채 산화한 이들의 한을 풀어 주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더불어 그 열사들을 기리는 대중들의 자유를 기원하는 축제로 정착시키는 것이 어떨까 싶다.
우란분절은 더구나 농민들의 가장 큰 축제인 백중, 곧 호미씻이와 시기가 같기에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백중, 또는 백종이라는 낱말은 불교와 민속의 습합을 증명해주는 대표적 보기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 날을 백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고통 속에 빠져 있는 넋을 구제하는 날이라고 하여 백종(百種, 魄縱)이라고 불렀으며, 또는 스님들이 하안거를 마치고 그 결과를 대중 앞에 고백하는 날이라 하여 백중(百衆)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백종은 농민들이 음력 7월 15일쯤이면 힘든 농사를 마무리짓고 발 씻고 편히 쉰다는 의미의 백종(白踵)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용어가 혼란된 것은 농한기와 추수 뒤에 풍성한 과일과 햇곡식으로 절간을 찾아 조상의 천도를 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그것이 바로 단적으로 불교와 민속의 습합을 증명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란분절이 백종과 더불어 민족과 민중을 위해 몸을 바친 열사들의 해원 천도 및 민중의 노동 해방절로 함께 기려지면, 현대 사회에 맞는, 그리고 불가와 민중들이 더불어 함께할 수 있는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특히 초파일과 우란분절을 중심으로 불가의 오대 명절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와 함께 민중들의 삶과 노동, 그리고 소망과 관계된 민속을 불가에서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또 연말 연초의 불가의 행사 가운데 민속의 영향을 받은 것, 민중과 더불어 함께 치루던 행사 민속 명절 사이의 각종 불공, 기우제 들이 모두 비중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장엄하게 치루어진 행사는 고려시대의 팔관회(八關會)라고 할 수 있다. 팔관회는 형식상으로는 출가하지 않은 신도들이 팔계(八戒)를 엄수하는 수법회(修法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무음주를 위주로하는 민족적 제천(祭天) 의식을 불교 국가인 고려에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의 태조가 팔관회를 천령(天靈), 오악(五嶽), 명산대천, 용진(龍神)을 섬기는 것이라 한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팔관회는, 전국 곳곳에서 민속화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연등회와는 달리 궁중 의례의 성격을 띤 것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이후로는 없어지고 말았다.
정초 민속인 마을굿을 스님이 제관이 되어 치루는 경우도 있다. 전북 부안군 산내면 석포리 입석 마을에서는 해마다 내소사(來蘇寺)에서 당산제(堂山祭)를 지내는데, 절 입구 오른쪽과 경내에 각각 할아버지 당목(堂木)과 할머니 당목이 있다.
정월 십사일 자정에 내소사 주지 스님이 제관이 되어 할아버지 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이어 할머니 당에서 같은 제사를 지낸 다음, 스님과 주민이 함께 음복하는 민속이 이 마을에서는 전승되어 왔다. 이 마을굿의 목적은 마을과 절에 모두 길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것인데, 불교가 민중의 습속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수용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불교가 민간의 습속을 받아들여 절간의 세시풍속으로 바꾼 것으로는 원앙재와 성황제를 들 수 있다. 경기도 광릉봉선사의 월운(月雲) 스님에 의하면 원앙재는 연말에, 성황제는 연초에 지냈다고 하는데, 절 입구의 솟대나 서낭 또는 장승 앞에서 마을의 풍습에 따라 지낸 것이 특이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질병을 막고 절의 융성을 기원하는 것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절의 노장 스님과 젊은 스님 사이에 쌓였던 그 해의 갈등을 없애고 정진을 약속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입춘 때 올리는 삼재(三災)풀이, 삼질, 단오, 유두를 비롯하여 민속 명절 때의 각종 불공 및 기도, 동지 때 귀신을 쫓기 위해 올렸던 팥죽 공양 등, 불가에서 민속을 수용한 보기는 무척 많다.
그러나 불가에서 이러한 민속을 수용한 것을 단순히 기복 불교나 여성 불교로 전락했다고 보는 것은 좁은 소견이라 하겠다. 이것은 불교가 천육백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민족•민중 종교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방편(方便)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봉건 시대에서 거대한 억압을 받고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던 일반 생산 대중에게는 스스로 닦고 스스로 깨닫는다는 자수자각(自修自覺)의 가르침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졌을 뿐이다. 따라서 궁극적 인간 해방과 세계구원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민중적 삶의 실체, 즉 그들의 고통, 원한, 소망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도였을 것이다. 때로 민중은 불교의 본질적 가르침과는 전혀 무관한듯 보이는 신앙으로 살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다시 본질적 가르침으로 되돌아와 이 땅을 불국정토로 가꾸는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
불교가, 민중의 축제요, 놀이요, 노동 의례요, 소망 체계인 습속을 거부하거나 적대시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 이전의 전통은 오늘날 거의 전승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대중의 절실한 소망과 만날 수 있는 무슨 뾰족한 방안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일세기에 걸쳐 외래 제국주의에게 여러 면에서 침탈당하면서, 건강한 민족적 삶의 전통이 끊긴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대중 포교의 원력을 세운 불자라면, 일세기에 걸쳐 겪은 제국주의의 침탈과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서의 민중의 구체적 삶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아울러 역사 속에서 민중 불교가 이룩한 뛰어난 성과들을 다시금 되새기고 배워야 할 것이다.
먼저 새해를 맞아 민중의 삶과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대중 포교의 방법과 자세에 대해 성찰하면서 연간의 행사 계획을 새롭게 개발해야겠다. 불교와 민간 세시풍속의 역사적 관계를 되돌아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