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지금쯤은 건강을 되찾으셨는지요. 스님의 편지를 받고도 선뜻 편지를 드리지 못한 것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한참동안 생각했읍니다. 어떻게 스님께 글을 올릴까.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외로움은 인간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죽음조차도 고칠 수 없는 한계 상황인 절망을 낳는 외로움은 인간의 실존을 외면하거나 극복하려는 노력에 있읍니다. 외면하거나, 극복하려면 할수록 더욱 더 깊은 수렁에 빠질 뿐 존재자체를 여실히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몸서리쳐지도록 두려운 외로움에 방황할 때, 일말의 빛이 되어 저를 구원해 주신 스님의 한마디가 함께 겹쳐옴에 더욱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는 것이 존재 자체를 여실히 보는 것이냐는 질문에, 스님께서는 잡아함경의 말씀을 인용해 설명해 주셨읍니다.
“색 •수•상•행 •식은 항상됨이 없읍니다. 항상됨이 없는 것은 괴로움이요, 곧 내가 아닙니다. 모든 존재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는 인연소생(因緣所生)의 무아(無我)입니다.
연기법의 지배를 받는 모든 존재는 ‘항상함,’ ‘안락함,’ ‘맡아 다스림’이 없는 무아입니다.
‘거짓된 나(無我)’를 ‘나(我)’로 알고 짓는 업의 과보로 태어난 인간 존재 또한 이러한 연기법의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읍니다.
인간은 누구도 그 어느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생노병사를 홀로 감당해 내야 하는 외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결국 외로움에서의 해탈은 외로움의 외면, 외로움의 극복, 혹은 초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간 존재 자체의 모습인 실존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오직 나의 존재가 무아임을 냉철히 봄으로써 전실한 나를 발견하는 것만이 외로움으로부터의 완전한 해탈인 것입니다.”
너무도 명확한 스님의 말씀에 마치 완전한 해탈을 얻은 양 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작은 일렁임에도 커다란 변화의 폭에 휩싸이고 말았던 제게 스님은 곧 부처님이요, 보살님이요, 선지식이 되었읍니다.
그런데 스님에게도 외로움이 병이 되시나요. 스님도 윤회의 몸서리를 느끼시나요. 스님의 삶은 왜 들꽃처렴 피었다가 들꽃처럼 져야 하나요…
스님,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떨어져 있음의 경험이 불안을 만든다. 그 경험이야말로 모든 불안의 근원이다. 떨어져 있다는 것은 인간이 그의 능력을 쓸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없이 잘려 나왔다는 것이다. 떨어져 있음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 세상의 침범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떨어져 있음은 지독한 불안의 근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 수치감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프롬은 이 글에서 홀로 있음이 외로움을 만들어내며 그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홀로 있음을 같이 있음으로 대처해야 된다고 믿고 있읍니다. 같이 있음으로 연출되는 것은 ‘사랑’ 이라고 이름 붙였읍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이성간의 사랑, 그리고 신과 인간간의 사랑을 특별히 예로 들며 구체적인 사랑의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같이 있을 때의 외로움,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껴본 사람은 그것이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보다 몇백 배 더 짙은 외로움이라는 것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스님, 이제는 로움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도 제게 말씀하시지 않았읍니까.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인간은 외로울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홀로 있어도 외롭고, 같이 있어도 외로운 존재다. 그 외로움을 떨쳐 버리려는 모든 인간의 노력은 허사일 뿐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지적대로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외롭고, 외롭기 때문에 절망하고, 절망하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련다는 말은 확실히 수긍이 갑니다. 이러한 인과의 사슬을 벗어나려는 모든 인간의 노력은 더욱 짙은 외로움과 절망을 초래한다는 말도 확신합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러나 그 병에 걸린 일이 없다는 것은 최대의 불행이다”라고 지적한 말까지도.
스님, 새해 새아침입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운문선사(雲門禪師)의 말씀이라며 제게 주신 말씀을 다시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날마다 좋은 날
매년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갖가지 생각으로 꽉 찰 것입니다. 저는 새해에는 좀 더 여유를 갖고 다음의 다섯 가지를 실천해 보려 합니다.
첫째, 건강에 신경을 쓰고 둘째, 감사한 마음을 갖고 세째,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네째,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다섯째, 하루를 정성껏 살자.
스님, 그러면 좋은 일이 자주 일어날 것 같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