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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선원청규, 승가교육 개혁…2010년은 풍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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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10년 12월 346호
2010년 조계종의 한 해를 되돌아보며 떠오른 네 가지 키워드다. 겨울 이른 아침, 코긑을 살짝 시큰거리게 하는 찬 공기처럼 차분하고, 서늘하게 다가온다.
법정스님은 “강원도 오두막의 대나무 평상 위에 내 몸을 놓고 다비를 해라. 남은 재는 오두막 뜰의 꽃밭에 뿌려라”고 유언했다. 지난 3월 11일 평소 입었던 승복을 그대로 입고, 대나무 평상 위에 누워 마지막 길을 떠나셨다. 수행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무언의 법문이었다. 스님은 가셨으나, 가르침은 더욱 또렷하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리는 것은 그가 몸소 보였던 대비원력이 오늘 우리들 자신의 것으로 분화(分化)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사 억만 개의 등불을 대낮같이 밝힌다 할지라도, 인간의 세계는 암흑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오신 날’은 마땅히 새 부처님의 ‘오시는 날’을 위해서 있어야 할 것이다.”(<영혼의 모음> 중 ‘오시는 날’)
위 글을 쓰신 때가 1970년이다. 다래헌에 머물며 여러 신문과 잡지의 원고청탁에 응하고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던 시기였다.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강조하는 법정스님의 음성은 4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고개가 숙여진다.
다행히 법정스님의 말씀은 여러 책으로 남아있으니 아쉬움을 덜 수 있다. 그러나 글은 글일 뿐이다. 마음으로 읽어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는 글이라면 무엇에 쓰랴. 법정스님과 함께 오랜 시간 맑기향기롭게 운동을 해온 변택주씨가 지난 여름 펴낸 <숨결>이란 책에 법정스님을 글로만 읽는 이에 대한 경책이 나온다.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 살고 계실 때 일이다.
한 거사가 울타리 개구멍으로 기어들어오는 것을 본 법정스님께서
“아니, 좋은 놔두고 왜 길 아닌 데로 들어옵니까!” 하고 꾸짖자, 기가 팔팔한 처사도 물러서지 않고 대들었다.
“아니 스님, 제가 이리 들어오건 말건 간에 스님이 무슨 간섭이세요?”
이렇게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마침 스님 한 분이 나타나서
“헌데 거사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거사, 다툴 때와는 달리 진지하고 공손하게 말했다.
“아, 네. 법정스님을 좀 뵈러 왔습니다. 훌륭한 글을 쓰시는 법정 스님을 좀 뵐 수 있을까 해서요. <무소유>를 읽고 느낀 바가 많아서요.”
…
법정스님 책을 읽고 좋은 말씀에 감동이 되어 찾아가는 길이 틀렸다. 언제 스님이 빨리 가려면 개구멍받이로 들어가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는가.… 그저 훌륭한 글을 읽을 뿐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공염불이다. 앎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훌륭한 글은 빛을 발한다. 앎이 바르면 삶이 바라지는 것. 행으로 나오지 않는 앎은 차디차게 죽은 소식일 뿐이다.”
<조계종 선원청규>가 발간됐다. 전국선원수좌회가 6년여 동안 작업한 결실이다. 11월 10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고불식을 올리고 부처님전에 이 책 봉정했다. 이로써 오늘의 조계종과 한국불교는 우리의 현실과 전망을 반영한 규율을 제정했다. 청규는 수행과 포교, 의식, 일상을 바르게 이끄는 지도와 같은 것이다. 승풍이 흐트러졌다는 탄식이 오래된 터인지라 청규의 발간은 더욱 반갑다.
그동안의 난맥상이 청규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손으로, 제방의 뜻을 모아 청규를 제정함으로써 일대 쇄신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전통을 잇되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생명 나눔’을 한 장으로 설치해 생명윤리, 장기기증, 시신기증 등 보살행의 실천을 강조하고, ‘불교 생명윤리를 학습하고 인지한다’ ‘사형제 폐지운동에 동참한다’ ‘장기기증 운동에 동참한다’ ‘생명의 터전인 농촌 살리기 운동에 동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차량 사용과 관련해 <선원청규>에서는 “시대의 대세를 역류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편리한 것이 행복이라는 도식화된 현대인의 의식에 무분별하게 따라가서는 결코 안 된다. 소임에 관계되는 용무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전자용품 역시 공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면서 ‘차량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과 차종을 제한하여 업무용과 사중용으로만 사용토록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고급승용차와 외제승용차의 사용을 금하고 수행자의 격에 맞는 차량을 사용한다’ 등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선원청규>의 적용은 선원에 한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타의 분야에 대해서도 이 청규의 정신이 당연히 적용된다. 그렇다면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법전 종정예하께서는 법어를 내려 청규의 철저한 실행을 당부했다. “… 청규는 청정대해중(淸淨大海衆)의 규구준승(規矩準繩)이니/백장선사가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을 외치며/고청규(古淸規)를 완성한 이래 그 정신은 면면부절(綿綿不絶)하여/오늘에 이르렀도다// … <선원청규>는 서래의(西來意)의 당간(幢竿)을 영원토록 펄럭이게 할 지남(指南)이 될지니 수행대중은 이에 수순(隨順)하며 위법망구(爲法忘軀)할지어다.”
승가교육 개혁은 종단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이번에는 개혁이 제방의 동의를 얻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직 정착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한국불교 1600년 이래 가장 획기적인 일로 의미를 부여해도 지나치지 않을 대작불사이다.
승가교육 개혁은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승가교육진흥위원장을 겸임해 종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자승스님은 11월 22일 ‘지속적인 승가교육진흥불사 추진으로 불교중흥을 이룩합시다’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해 교육개혁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자승스님은 담화문에서 “저는 이 땅의 한국사회와 역사에서 깨달음과 자비를 구현하는 일이 바로 불교중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중흥을 위해서는 비상한 노력이 요구되는데 그 노력은 승가교육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승가교육의 방향과 의미를 설명했다.
승가교육 개혁은 크게 네 가닥으로 진행된다. 먼저 교과과정 개편이다. 한문교재 강독을 벗어나 한글화하고 현대의 입장에서 경전과 어록을 보자는 것이다. 응용불교, 윤리 등 현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내용이 교과목으로 편입된다. 두 번째는 기존의 학림을 심화하고 체계화해 승가대학원으로 개설한다. 선학, 율학, 초기불교, 한문불전 등을 심화한다. 2년제 영어전문교육기관인 국제불교학교도 개설하는데, 내년 3월 경기도 용인에 있는 화운사에 들어선다. 셋째는 전법의 현장에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지속교육을 위해 각종 연수과정을 연중 운영한다. 넷째는 교육자 양성과 불교전문가 양성을 위한 장학 지원이다. 국내외 석․박사과정에 있는 스님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는 한편 기존 교역자에게는 교육과 연구를 담당토록 해 우대한다는 방침이다.
오늘은 내일의 거름이다. 2010년은 내일을 위한 디딤돌이다. 법정스님은 올곧은 ‘비구 법정’의 모습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선원청규>로써 규율을 얻었다. 승가교육은 새로워지고 있다. 이만하면 조계종의 2010년은 풍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