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아자生我者는 부모父母요 성아자成我者는 붕우朋友’ 즉, 나를 낳아주는 이는 부모지만 나를 완성시키는 이는 친구, 도반이라는 말이다. 도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내가 도반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 출가의 뜻을 세울 때 나의 심금을 울린 말은 ‘부처행을 하는 자가 곧 부처다’ 이다.
예전에 다니던 절에서 스님께 들은 법문이다. 참 쉽게 말할 수 있는 말이지만, 행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 나의 수행의, 가치관의 중심이 되는 글귀로 삼고 있다. 그런데 요즘 또 다른 글귀가 머리에서 맴돌고 있다. 바로 위의 글귀이다.
나는 해인사에서 두 번을 출가했다. 처음 해인사에 출가한 것은 2008년 5월, 사월초파일을 나흘 앞두고 였다. 처음 뜻을 세우고 의욕을 앞세워 나름 열심히 뛰어다니며 할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 의욕이 강했던 것인지, 성격이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행자도반까지 너무 힘들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석 달 정도의 행자생활 중 속가에 문제가 있어서 행자실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두 달 후 속가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해인사를 찾았다.
솔직히 해인사를 다시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나 때문에 힘들어 했던 행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보복이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를 길들일 수 있는 곳은 해인사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다. 내가 행자실에 들어서자 나로 인해 힘들어 했던 벼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인 것을…
나는 어떤 대가도 달게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도반들이 나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고 대방식구로 받아 주기로 한 것이다. 나는 대중 참회를 했다. 그리고 도반들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참 고마웠다.
그렇게 석 달이 흘렀다. 나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던 행자들은 스님이 되기 위해 계를 받으러 갔고, 나는 37기를 이끌고 갈 행자가 되었다. ‘같은 실수는 다시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나의 업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또 나름의 열정으로 도반들을 다그쳤고 도반들의 원망을 샀다. 하지만 당시에는 몰랐다.
행자 6개월의 생활이 끝나갈 무렵 나는 행자도반에게 물었다. 다른 행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나에게 있어 문제가 무엇인지를… 그 도반은 정말 냉철했고 아픈 곳을 찔렀다.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화도 났다. 도반들로부터 버림받은 듯해서 외로웠다. ‘이건 아닌데…’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도대체 다른 사람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차이를 알고 싶었다.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했다. 그렇게 남은 행자생활을 마치고 행자교육원을 갔다. 모두들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나도 많이 힘들었다. 참회를 했다. 아니 저절로 참회가 되는 듯 했다. 지금까지의 나의 생활과 주위를 되돌아보았다. 부끄러웠다.
특히 해인사에서의 행자생활이 맘에 걸렸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 혼자 참회만 하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자신에게 냉정해져야 하는데 필요이상의 합리화, 관대함이 나를 망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도반이 필요 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도반의 중요성을 또다시 느끼게 되었다.
6개월이 흘러 해인사 강원에 입학했다. 6개월 정도 말사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다 보니 몸에 긴장감도, 체력도, 신심도, 초심도 많이 잃은 것 같았다. 대중생활이 시작되자 힘들어졌다. 다른게 힘든게 아니라 나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고, 떨어진 신심을 고취시키고, 나태해진 몸을 다스리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또 다시 도반들이 도와줬다. 내가 잘못하고 부족한 점, 다혈질적이 성격 등을 지적해 주었다. 참 고마웠다. 때로 받아들이기 싫었고 화도 났지만,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너무 고마웠던 것이다.
1학년 수업시간 치문을 배우는데 많은 좋은 글귀가 있지만, 내 머리를 맴도는 글귀는 역시 ‘생아자는 부모요 성아자는 붕우’였다. 지금 내가 도반의 중요성을, 고마움을 너무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옳은 도반이 나의 평생 스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처행을 하는 자가 바로 부처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알아야 나의 잘못된 점을 부처님과 같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모습을 바르게 알려 줄 도반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지금 나와 같이 생활하는 치문반 스님들, 아직 대중생활이 몸에 익질 않아서 다소 불편하고 서로 불평불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불편이 우리 각자의 머트러움으로 비롯되었음을 깊이 자각하고 서로 탁마하는 진정한 도반으로 성장하길 발원하다.